[안재홍의 교육春秋] (37) 안전한 통학로는 모두를 위한 길

제주도는 인구 50만이 넘는 전국 26개 도시 중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도시다. 반면 전국 시도 가운데 인구대비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가장 많은 도시다. 사진은 통학로에 설치하는 안전 시설인 옐로우 카펫.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는 인구 50만이 넘는 전국 26개 도시 중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도시다. 반면 전국 시도 가운데 인구대비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가장 많은 도시다. 사진은 통학로에 설치하는 안전 시설인 옐로우 카펫.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하루 24건. 전국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건수. 

시간당 1건꼴로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셈이다. 일명 ‘민식이법’ 통과 후 연간 사고 발생 건수가 1만건 이하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연간 8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지인의 딸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산의 초등학교 사서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퇴근길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사고 발생 후 2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날을 보내고 있을 그 가족에게 글로나마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제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내내 그 마음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딸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었을지 가늠할 수도 없다.

앞서 통계가 말하는 것처럼 매일 20여 건의 크고 작은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통학로 안전에 대한 의식은 희미하기만 하다. 부산의 사고 현장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있지만, 원활한 차량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꺼져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사고가 난 이후에도 여전히 횡단보도 신호등은 꺼져 있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보다 자동차가 우선인 세상을 살고 있다.

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지난 5월 금요일을 걸어서 등교하는 날로 정했다. 모든 아이들이 걸어서 등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매일 이렇게 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등굣길 안전을 위해 자동차가 다니는 조그만 골목마다 서 있는 학부모와 교사들을 보며 현실적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에 서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웅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통학로 안전을 위해 많은 법과 조례가 만들어져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위험천만하다. 다행히 제주에서는 ‘제주형 어린이 통학로 조성사업’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아이들이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그 길은 여전히 위험하다. 어느 특정 구간만 관리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쿠리치바(Curitiba)는 국내에도 자주 소개되는 교통체계의 혁신을 이룬 도시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사람 중심의 도시로 바꾼 중심인물이 있다.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다. 그는 쿠리치바 시장을 3번 역임하면서 세계인들이 꿈의 도시, 기적의 도시라 부르는 도시로 쿠리치바를 바꿨다. 수백만 명이 생활하는 대도시를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바꾼 그는 자동차를 악어에 비유했다. 도시의 자동차를 정글에서 아이들을 잡아먹는 악어와 같다고 한 그는 아이들이 안전한 도시를 설계했다. 그는 도시 전체를 바꿨다. 아이들이 안전한 도시는 모두가 안전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학교 앞 도로의 제한속도에 분통을 터트리는 분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시속 30km는 거의 기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보면 시속 30km의 자동차는 무서운 무기다.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그 가운데에서도 장애인, 어린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모두가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자전거 등교를 권장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사고위험 때문이다. 제주도는 인구 50만이 넘는 전국 26개 도시 중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도시다. 반면 전국 시도 가운데 인구대비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가장 많은 도시다. 한국이 OECD국가 중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중의 하나임을 고려한다면 제주도가 얼마나 자동차 중심의 사회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21년에만 걷다가 자동차에 치여 사망한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 지난 5년간 어린이 사망자도 100명이 넘는다. 딸 아이가 백상아리가 무서워 바다에 가기가 두렵다고 하지만 전 세계에서 상어에 물려 죽는 사람은 1년에 10명도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자동차는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와 백상아리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다.

제주도가 15분 도시를 내세우고 있다. 그 중심에 어린이, 장애인, 노인, 임산부들이 있기를 바라본다. 어느 때보다 교육감과 도지사가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아이들 통학로 안전을 중심에 두고 힘을 모으길 기대한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