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뜬금없는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 / 김봉현 이사·논설주간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7월 15일(현지 시각) 키이우의 성소피아 성당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7월 15일(현지 시각) 키이우의 성소피아 성당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뜬금없다.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 말이다. 갑작스럽고도 생뚱맞다. 어려운 형편의 미래 세대에게 배움을 독려하겠다는 취지를 지적하는 게 아니다. 양국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장학금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뜬금포다. 

사회생활의 전부나 다름없는 시간을 월급쟁이 검사로 살아온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과 백척간두 위기에서 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양국 대통령이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을 만들겠다는 뜻이면 모를까. 주머니 사정을 모르긴 모르되 두 사람 다 그럴 형편은 아닐 테고. 

예고 없었던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에서 윤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110분간 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 언론발표를 통해 모두 9가지 지원책이 담긴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공개했다. 여기에 양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장학금 신설도 포함됐다. 

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 재정 당국이 이미 배정해 둔 1억 달러의 대외경제협력기금을 활용해 인프라 건설 등 양국 간 협력사업을 신속히 발굴‧추진해 나갈 것과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한 협력, 미래세대에 대한 지원을 위해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 신설 등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장학금 신설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학생들이 안심하고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고, 더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장학 프로그램을 확대해나가겠다고도 부연했다.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양국 대통령 이름을 붙인 장학금 제도를 만든다? 느닷없다. 이름을 붙이는 데는 다 뜻이 있기 마련이다. 장학금에 개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와 책임이 배경에 공존한다. 

우선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사재를 턴 기부자의 숭고한 ‘진정성’을 기리기 위함일 테고, 또 한 가지는 장학금의 액수보다 ‘지속성’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을 때 개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우리 기억엔 용두사미로 사라지는 이벤트가 너무 많다. 시작하기는 쉽고, 없애기는 더 쉽다. 정치보복이 난무하는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이름 지우기를 반복하는 정치문화를 탓하기도 전에,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은 숙고했다면 나았을 일이다. 굳이 개인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 유학생 지원 취지를 살린 더 유의미한 장학금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다. 단언컨대 머지않아 사라질 이름의 장학금이다. 그래서 아쉽다.

1971년 5월 2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박정희 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개막식에서 시축하는 박정희 대통령 모습 ⓒ e영상역사관
1971년 5월 2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박정희 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개막식에서 시축하는 박정희 대통령 모습 ⓒ e영상역사관
1971년 5월 2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박정희 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경기 장면 ⓒ e영상역사관
1971년 5월 2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박정희 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경기 장면 ⓒ e영상역사관

  사라진 ‘박정희 대통령 컵 축구대회’ 

반세기 전이다. 1971년 5월 2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 넥타이 정장 차림의 박정희 대통령이 구두를 신고 시축을 한다. 대통령의 시축에 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박정희는 관중을 향해 번쩍 손을 흔든다. ‘제1회 박정희 대통령 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개막식 광경이다. 흔히들 이 대회를 박스컵(Park’s Cup)으로 줄여서 불렀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1979년 박 대통령이 10‧26 사건으로 피살당한 후 대회 명칭에서 ‘박(박정희)’이 빠지고 ‘대통령 배 국제축구대회’로 바뀌었다. 이후엔 대통령 개인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런 대통령 배는 1993년 제20회 대회를 끝으로 영영 막을 내렸다. 

대통령 개인의 이름을 붙이는 사례는 과거 독재자들이 국가주의 사상을 이용한 데서 시작됐다. 시쳇말로 웃픈 기록이다. 박스컵이라고 불렸던 박정희 대통령컵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가 대표적이다. 왕조 시대도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나라의 정치가 후졌다는 ‘빼박’ 증거다. 다시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을 운운하고 싶지 않다. 

시럽급여와 샤넬 선글라스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못된 말이다. 지난 7월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나온 말이다. 실업급여(구직급여) 수급자를 게으른 ‘베짱이’에 빗대기도 했다.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 같은 명품을 산다며 여성·청년 실직자를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실업급여 수급자를 부정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잘못된 주장이다. 무엇보다 실업급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불순한 주장이다. 

“일해서 버는 돈보다 실업급여가 더 많다.”,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업급여를 폄훼하는 말이 난무했다. 이 발언이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등 공청회 관계자들이 내뱉은 발언이란 점에서 가벼이 볼 사안은 아니다. 실직한 노동자를 혐오하는 행위이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맞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실업급여 수급률은 21.3%에 그친다. 특히 임시직·일용직 등 불안정 노동자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5.8%에 불과하다. 게다가 30세 미만의 경우는 6.9%로 더욱 낮다. 이직이 잦거나 노동 시간 자체가 짧으면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임시직·일용직 중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이들의 86%는 바로 이 ‘실업급여 수급 조건’을 갖추지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이런데도 실업급여를 타는 이들을 ‘달콤한 시럽 맛을 보려고’ 직장을 그만두는 베짱이들이라니? 무지일까 몽니일까. ‘타의에 의해 잘린’ 혹은 ‘더는 회사에 다닐 수 없는’ 절박한 실업자가 대부분이다. 절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혐오적 주장이다. 

김봉현 제주의소리 이사·논설주간<br>
김봉현 제주의소리 이사·논설주간

이태원 참사 기록이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국민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수해가 충분히 예견된 상황에서 국민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느닷없이 우크라이나를 꼭 가야했을까.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 수해와 싸우는데 대통령 부인이 한가하게 방문국 명품 매장에서 쇼핑하겠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호객행위 때문에 가게됐다는 해명은 누구의 발상인지, 그 ‘뇌피셜’이 궁금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박스컵 축구대회, 윤석열 장학금, 해외순방, 실업급여…, 모두 피 같은 국민세금이 쓰였다. 예외없이 허투루 쓰여선 안 된다. / 김봉현 이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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