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음악협회 창작 오페라 ‘홍윤애’

제주음악협회 창작 오페라 '홍윤애' 무대 인사 장면. / 사진=제주도
제주음악협회 창작 오페라 '홍윤애' 무대 인사 장면. / 사진=제주도

한국음악협회 제주도지회(이하 제주음악협회)가 21일 공연한 창작오페라 ‘홍윤애’는 극본, 음악, 연출, 무대, 연기 등 작품을 완성하는 요소들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작품이었다.

오페라 ‘홍윤애’는 조선 후기 정조 임금 재임 당시 실존했던 제주 여인 홍윤애와 유배인 조정철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역모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제주로 유배 온 대역죄인 선비 조정철. 그의 아버지 역시 제주 유배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돌봐준 인연이 계기가 돼 젊은 처녀 홍윤애가 조정철을 돌본다. 서로 낯선 두 사람은 점차 감정을 나누고 사랑의 결실까지 맺는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목사 김시구는 조정철과 다른 정파이기에 어떻게든 그를 잡아넣으려고 한다. 김시구는 조정철을 노리고 홍윤애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지만, 홍윤애는 억울한 고난을 오롯이 감당한 끝에 사망한다. 조정철은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리고, 김시구는 파견된 안핵어사에 의해 낙마한다. 31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홍윤애의 사랑과 의리가 제주 사람들에 의해 전해지고, 제주목사로 부임한 조정철은 꿈속에서 홍윤애와 조우하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오페라 ‘홍윤애’에서 홍윤애 역의 소프라노 정혜민을 비롯해 주·조연들은 인물에게 주어진 상황과 감정을 무난히 소화했다. 주인공이자 홍일점인 홍윤애를 연기한 정혜민은 수줍은 처녀에서 절개를 지키는 강인한 여인까지 소화했다. 조정철과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듣는 장면에서는, 가사 없는 창법으로 15마디 가량 부르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오페라 ‘홍윤애’는 50명에 달하는 코러스를 투입하며, 무대의 빈 공간을 채웠다. 어린아이들부터 기성 성악가를 아우르는 코러스는 홍윤애의 장례 장면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코러스를 더 많이 활용하면 어땠을까 하는 사족과 함께, 가사 없는 연주는 보다 감정이 더 많이 모아지는 홍윤애의 최후 장면 전후에 활용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사는 비유를 더한 문학적 표현으로 맛을 살렸다. 홍윤애의 가족들이 홍윤애를 바다에 빗댄 장면에서는 지난 추억과 현재, 미래까지 가사에 녹여내며 관객을 집중시키는데 한몫 했다. 음악은 전반적으로 강렬함 보다는 잔잔하게 작품에 녹아든다는 인상이었다.

무대는 양쪽 끝 돌무더기를 표현한 게 사실상 전부일 정도로 조촐하나, 코러스와 함께 특히 영상이 공백을 적절히 채웠다. 영상은 바다와 하늘, 암석 등 정도만 사용했는데, 흐름을 해치지 않는 깔끔함이 돋보였다. 김시구의 선전포고에서는 붉은 색을, 홍윤애·조정철의 해후에서는 노란 색을 입히는 연출은 단순하지만 과하지 않게 큰 효과를 가져왔다. 

제작진은 이번 ‘홍윤애’를 통해 강인한 제주 여인상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죽음 앞에서도 사랑과 의리를 지킨 홍윤애를 통해 제작진의 의도는 잘 드러났다. 다만, 홍윤애라는 소재가 2023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을 이야기인지는 고민해볼 문제다. 

예를 들어,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남긴 작품들은 주제는 남긴 채 시대 배경, 인물 등에 있어 변화를 주면서 관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2023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한 ‘틴에이지 딕’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를 작품 배경을 고등학교로, 주인공을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각색을 더해 호평을 받았다. 

본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은, (이야기가 지닌 가치와는 별개로) 콘텐츠가 범람하는 오늘 날 문화 향유에 비춰볼 때 크게 주목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홍윤애 이야기는 지난 2002년 제주시와 제주시립예술단이 같은 장르인 오페라 '백록담'으로 제작한 바 있으며, 2019~2020년에는 제주연극협회가 연극으로 공연했었다. 홍윤애 이야기를 다룬다면, 다양하게 변주하는 접근이 앞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번 공연은 최근 세상을 떠난 제주의 원로작가 고훈식의 희곡을 제주음악협회가 존경의 의미를 담아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소재 활용이 재현에 가까웠지만, 지역에서 활동해온 선배 창작자들을 존중하며 작품으로서 소통하는 자세는 무척 바람직하며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야구에서 쓰이는 ‘5툴 플레이어’라는 개념이 있다. 야수를 평가하는 항목 5가지를 놓고 모두 높은 능력치를 보이는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오페라 ‘홍윤애’를 보며 5툴 플레이어를 떠올렸다. 극본, 음악, 연출, 무대, 연기 등에 있어 무난한 완성도를 보이면서다. 물론 더 많은 예산과 자원이 투입된다면 각각의 능력치는 높아질 수 있겠다. 

올해 제주음악제 예산을 과감히 오페라 제작에 투입하는 시도를 통해, 제주 음악인들을 포함한 협력의 힘으로 어디 하나 크게 빠지지 않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주음악협회 도전은 성공이라고 본다. 더 큰 기회가 주어져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다는 인상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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