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39) 다양성의 인정은 난민 인정으로부터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새만금 잼버리, 서이초등학교 추모집회, 서현역 인근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은 별개의 사건들처럼 보이지만 닮은 점이 있다. 자본이 절대선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가 빚어낸 참사라는 점에서 다른 듯 닮아있는 사건들을 살펴보면 희미하게 길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새만금에서 열린다고 할 때부터 우려는 많았다. 하지만, 6월에 새만금을 다녀온 분이 그곳에서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시작되면 많은 이들이 쓰러질 것이라며 한숨을 쉴 때까지도 실감하지 못했다. 국가가 나서서 준비하는 세계대회는 준비가 철저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그러한 우려를 기우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대회가 시작되고 나니 그곳은 야영지로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국가가 나서서 준비하는 세계대회는 준비가 철저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그러한 우려를 기우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 사진=대통령실
국가가 나서서 준비하는 세계대회는 준비가 철저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그러한 우려를 기우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 사진=대통령실

일어나기 전의 일을 문제 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준비하는 쪽에선 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해왔고 듣는 쪽에선 걱정이 비난으로 비칠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새만금은 만경강과 금강 하구의 넓은 갯벌을 방조제를 쌓아서 농토로 만드는 사업이었다. 1990년대에 농지가 부족하다며,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만든다고 할 때, 농촌에는 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었다. 국책사업으로 진행된 사업은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었다. 우도의 46배에 달하는 283㎢의 만들어진 땅은 지금까지 용도를 찾지 못한 채 방치돼 무엇도 될 수 있으나 아무것도 될 수 없는 곳으로 남아있었다. 이곳에서 대규모 국제행사를 개최해 개발의 동력으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새만금은 서해안의 갯벌생태계를 파괴해 셀 수 없는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만들어진 죽음의 땅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표현처럼 ‘식인자본주의’는 자신이 서 있는 토대조차 허물어버렸다. 

폭염으로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가 연일 울려대는 찜통더위에도 5만명이 넘는 전국의 교사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앞에서 서이초 교사 3차 추모집회를 열었다. 진상규명과 교육권을 확보하라는 요구를 담아 자발적으로 모인 교사의 규모는 3주 만에 5000명에서 5만명으로 10배를 넘어섰다. 교사들을 폭염에도 더 모이게 하는 힘은 미안함과 함께 교사들이 느끼는 현장의 고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나 과도한 업무가 표면적인 원인일 수 있겠지만 연일 보도되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 사례를 따라가 보면 서열화된 능력주의 문화가 보다 근원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카이스트 나온 부모라거나 변호사라는 말은 서열화된 교사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존경과 감사의 관계는 사라지고 갑과 을이라는 위계가 지배하는 교육현장의 슬픈 모습이다. 위계화된 서열관계와 폭력성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있다.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는 제주 교사들의 메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는 제주 교사들의 메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3일 경기도 서현역 인근에서 발생한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 범인의 신상이 공개되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중학교 3학년 시절 수학 올림피아드에 입상한 영재 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특목고 입학이 좌절되고 진학한 고등학교를 자퇴하며 3년 전에는 조현성 성격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공권력을 총동원해 묻지마 범죄를 막겠다고 하고, 대규모 검거 작전을 펼치고 있다. 좋은 고등학교에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면 우리 사회의 90%가 넘는 사람들은 이미 낙오자다. 극단적으로 서열화된 사회의 모습이 연일 뉴스와 드라마로 보여진다. 우리 사회는 상위 10% 아니, 상위 1%를 위한 사회처럼 보인다. 생명을 짓밟고 건설된 제국의 시민들은 다시 서로를 밟으며 올라서야 한다. 이 공간에 낙오자는 필요없다. 

올해 상반기 우리 정부가 난민심사를 마친 3347건의 사례 중 난민으로 인정된 사례는 43건으로 난민 인정률은 1.3%라고 한다. 100명이 신청하면 1명 정도를 겨우 받아들이는 정도다. 세계적으로 갈수록 난민은 증가하고 있다. 국제 난민 NGO단체인 자국내실향민감시센터(IDMC: Internal Displacement Monitoring Centre)에 따르면 2022년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난 난민의 수는 6100만명으로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고 한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자연재해로 난민이 된 기후난민은 전체 난민의 53%(약 3260만명)를 차지해 전쟁난민(약 2830만명)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일 정체성만을 고집하는 문화는 극단적인 서열화를 부르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일 정체성만을 고집하는 문화는 극단적인 서열화를 부르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난민이 폭등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한국은 난민에게 가장 인색한 국가다. 세계은행은 2050년까지 기후난민이 2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후난민은 기후위기를 불러온 나라들에 그 책임이 있다. 한국은 기후위기를 불러일으킨 책임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대표 국가가 기후난민은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사고는 냈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태도다.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일 정체성만을 고집하는 문화는 극단적인 서열화를 부르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건강 지표 중 하나가 난민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피부색, 인종, 외모, 성적지향, 출신 지역에 관계없이 모두를 존중하는 문화는 난민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큰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 큰 피해가 없이 지나가길 바란다. 기후위기는 가장 낮은 곳에 가장 힘없는 곳을 먼저 할퀴고 지나간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포용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사회 곳곳의 유보해둔 상처들은 어디서 덧날지 모른다. 부디 이번 여름 무사하기를 바라본다. 


#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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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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