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96) 노동자 공동휴게시설 설치 필요

화북공업지역 노동자들의 제대로 된 휴게시설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 사진=픽사베이
화북공업지역 노동자들의 제대로 된 휴게시설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 사진=픽사베이

일하는 중간에 맞이하는 휴게시간은 새참과 같은 꿀맛이다. 

과거 종이봉투를 만드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구내식당으로 달려가 5~10분 만에 밥을 우겨넣고 돌아와선 내가 보조하는 프레스기 옆에 큰 박스를 몇 장 깔고 천장을 바라보고 눕는다. 50분 가량 남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면 그렇게 몸이 개운하고 꿀맛일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종이가루가 날리고 기름때가 진득한 공간에서 맞는 휴식이 건강한 휴식이었겠냐만은 당시에는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휴게시간의 보장만큼 중요한 것은 적정한 휴게시설의 보장이다. 

10여 년 전 국내 유명 대학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실상이 공개되면서 청소노동자의 제대로 된 휴게시설 설치 요구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화장실 청소도구함 한쪽에서 숨죽이듯 도시락을 먹고 환기도 되지 않는 지하 계단실을 휴게공간으로 활용하는 실태가 드러나면서 노동자의 휴게시설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그러나 청소노동자의 휴게시설이 빠르게 개선되지는 못했다. 2019년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휴식을 취하다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휴게시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회적 논의의 연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2022년 8월 18일부터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 되었다. 

1년 전 모든 사업장에 대해 휴게시설 설치의무가 제도화됐지만 20인 미만 사업장은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작은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한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휴게시설 설치에 필요한 준비기간을 고려하여 1년간 과태료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유예기간을 두었다. 따라서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야 사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가 현실화 되었고, 2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미 설치시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휴게시설 설치의무 제도화가 각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결과로 나타나길 바래본다. 

올해 초 부산도시공사에서 원룸형의 주거시설을 분양하면서 입주민과 동일한 방 2개를 각각 경비․청소 노동자의 휴게실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별도의 컨테이너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입주민과 동일한 주거 조건을 휴게시설로 제공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 있어 보인다. 당분간 시범 사업으로 운영한다고 하니 입주민과 동일한 시설에서의 휴게시설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우리 지역의 상황으로 돌아오면 노후화된 제조공장이 모여 있는 화북공업지역의 경우 2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다 보니, 제대로 된 휴게시설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점심시간에 화북공단을 지나다보면 과거 종이봉투 공장에서 일했던 시절의 풍경처럼 공장 안 그늘 한쪽에 박스를 깔고 누워있는 노동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022년 민주노총제주본부에서 진행한 공단 휴게시설 설치와 관련된 설문조사에서 ‘공단 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게실이 있으면 이용하겠다’는 다수의 응답이 제출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의무화 법안 통과 이후 단독 휴게시설 설치가 어려운 50인 미만 사업장이 공동으로 휴게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산업단지 또는 지식산업센터 등의 제한이 있어 산업단지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화북공업지역에 접목시키기엔 다소 거리감이 있다. 

화북공업지역 노동자들의 제대로 된 휴게시설을 보장하기 위해서 기존의 열악한 휴게시설을 개선하는 사업과 휴게시설이 없는 경우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지자체 차원으로 마련하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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