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구조적 문제에 교사 빠뜨리고 리더십 상실한 흡사 참호전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이겨야만 생존하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비극적 참호 안에서의 생존이 아닌, 서로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회복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사진=픽사베이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이겨야만 생존하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비극적 참호 안에서의 생존이 아닌, 서로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회복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사진=픽사베이

얼마 전 제주에서도 한 선생님이 생을 내려 놓으셨다. 전쟁 같은 교육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선생님께 깊은 조의를 표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으로 불리는 전쟁이다. 이 참호전이 참혹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참호 안 상황이 최악이었다. 빗발치는 총탄을 피하기 위한 참호 안은 비만 오면 물이 차고, 질퍽거리는 진창이 되기 일쑤였고, 온갖 전염병과 벌레와 쥐들이 득시글득시글했다. 그런 곳에서 인간이 수개월씩 버티다 목숨을 잃어 갔다. 적군 참호로 돌격하다 사망한 병사보다 참호 안에서 죽어간 병사들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둘째는 국가, 전쟁 지휘관들의 구시대적 전술과 리더십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 탱크와 같은 첨단 무기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무대였다. 하지만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관들의 생각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똑같았다. 돌격해서 상대방의 진영을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새로운 무기의 대량 살상 능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1차 세계대전 참호전은 4년을 끌었고 1000만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허약한 국제 동맹의 관계와 제국주의적 탐욕에 가득 찬 국가 리더십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필자는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교육계의 비극적 상황을 보면서 참호전이 연상되었다. 선생님 자신들이 일으키는 문제라기보다 최악의 구조적 상황에 선생님들을 빠뜨려놓고 그 상황을 해결할 해법도 리더십도 보여주는 않는 지도자들의 모습이 그 최악의 상황과 빼닮았다. 

‘행동이 아주 독한 학부모들의 악마적인 요구가 있고, 그 상황에 교사들이 일방적인 피해를 입고, 좌절감과 무력감이 교사들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비극이 발생했다’고 보는 현재 교육당국의 상황 인식은 너무 안일하다. 일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학부모들의 행위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일부 학부모들의 행동이 전국의 선생님들의 일반적인 분노를 자아냈다는 말인가? 각각의 개별적 상황일지 모르지만 비슷한 상황이 일반적으로 발생하기에 전국적인 분노가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현 교육부장관 이주호는 지난 2013년 학생생활기록부에 학폭 조치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징계하고, 교육청을 고발했던 사람이다. 대체로 그 사건이 교육 현장 사법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학생생활기록부는 학생의 진학 문제에 있어서 핵심적인 준거이다. 경쟁 교육이 심화하는 상황과 진학 문제에 대한 민감성을 고려할 때, 학생생활기록부의 기재 내용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인생을 좌우할 문제로 인식된다. 대부분의 학생은 행동에 조심하겠지만, 만약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위가 발생한다면 학부모와 학생은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당연히 학부모와 학생은 학폭 내용의 기록 저지 또는 기록 내용의 경감을 위해 노력하지 않겠는가? 당시에 마침 학교폭력 대책 과정은 그들에게 법적 반론 장치를 제공한다. 그렇게 학교 현장은 자신의 인생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처절하면서도 끈질긴 법적 싸움의 장으로 변질됐다.

또 선생님들은 강제로 주어진 학생생활기록부의 기록 권한으로 인해, 가르침에 대한 사회적 책무보다는 법적 변호에 더 집중해야 하면서 법정으로 끌려 나와야 했다. 학폭을 줄이고자 강제한 학생생활기록부의 학폭 기재였지만, 결과적으로 학폭 건수는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으며, 교육의 세 주체는 법정 전쟁의 가해자, 피해자가 돼 혈투를 벌이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 

선생님들의 절망은 그런 상황 속에서 더 심화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 문제는 매우 다양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학생 본인의 감정 문제부터 친구들과 관계의 문제, 개인적인 경제·사회적 환경의 문제, 가정의 문제 그리고 선생님의 가르침과 배움의 문제 등 매우 다양한 맥락이 숨어 있다. 하지만 현재 학폭 문제의 해결 또는 판정은 전부 사법부의 권한으로 넘어가 버렸다. 더 심각한 것은 가르침을 자신의 책무로 받아들인 스승님들은 즉각적인 신고자가 되어야 했으며, 법적 결과를 수용할 수 없는 학부모로부터는 온갖 원망의 대상자가 되고 있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여러 가지 교육적 방식으로 중재하고, 화해시키거나 훈육하면서 예비 사회적 존재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훈련시키는 스승님의 역할과 권위는 삭제됐다. 왜냐하면 스승님이 아닌 판사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법 기술로 인해 스승님들은 더더욱 법적 가해자로 변하기 일쑤였다. 평생의 책무로 스승의 길을 걷고자 하는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망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을 만큼 절박해져 버렸다. 

과거 경험에 얽매인 구시대적 사고와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는 참호 안으로만 교사들을 집어넣고 있다. 각종 신무기와 보급품을 밀어 넣고 있지만, 결국 그들을 법적 싸움의 장, 참호에서 벗어나게 할 해법과 리더십은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교육의 사법화를 만들어 낸 구시대적 인물들은 퇴장하고, 사법적 판결보다 교육적 대안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이제 교육의 모든 주체들이 화해를 하며 교육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교사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육주체들의 다양한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모든 주체들의 상호 존중과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상호 존중과 신뢰는 바로 인권의 기본 가치이다. 학교 현장에서 인권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고려되고, 인권의 가치로부터 해결 방안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이겨야만 생존하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비극적 참호 안에서의 생존이 아닌, 서로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회복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심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현장이 사법 싸움의 현장이 아니라 배움의 현장이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아니 요구한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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