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42) 제주4.3 공간에서 꾼 제주도민들의 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왔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여전히 일각에서 냉전의 시대를 강요하는 근거가 더욱 궁금해졌다. 

“북한에서는 별똥별을 매일 볼 수 있대!”
“정말?”
“응!”
“그럼, 매일 소원 하나씩 빌 수 있겠다.”
“아마 북한사람들은 탈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걸.”
“그래! 누가 북한에 살고 싶겠냐.”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북한과 남한의 체제 경쟁은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체제가 최선이라는 맹목적 믿음이 자리 잡았을까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이념논쟁(체제논쟁)을 통해 한국사회를 신 냉전 질서로 밀어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곳곳에 종북세력과 좌익세력이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앞장서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신원식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언론이 전하는 새로운 장관 임명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심증에 확신이 생긴다. 심지어 삼권분립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법원장 후보자의 경우에는 청문회를 통해 ‘법알못’(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판사])이라는 별칭까지 얻고 뉴라이트 사관으로 비판을 받았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일제 강점기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반공 대통령으로 내세운다. 이들에게 여전히 반공은 살아있는 이념으로 반공과 용공은 역사 인물과 현재 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들은 시대적 상황에 개의치 않고 공산주의자는 언제든 처단의 대상이 된다. 공산주의자 혹은 빨갱이라는 낙인은 독재 정권이 자신의 정적과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 사용했다고 지난 역사는 말하고 있다.

여전히 이승만의 유령이 떠돌고 있는 제주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가 ‘제주4.3 정명 관련 도민 인식조사’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름 없는 제주4.3을 상징하는 백비는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이름을 얻고 일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이름을 얻는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씨마스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249페이지에 ‘제주4.3사건, 제주도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주제로 제주4.3평화기념관에 전시된 ‘백비’ 사진이 첨부돼 4.3이 소개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씨마스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249페이지에 ‘제주4.3사건, 제주도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주제로 제주4.3평화기념관에 전시된 ‘백비’ 사진이 첨부돼 4.3이 소개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희생자 선별에 대해 우선 고민해보자.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는 제4차 전체회의에서 제주4.3사건 발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와 군경의 진압에 주도적, 적극적으로 대항한 무장대 수괴급 등을 희생자의 대상에서 제외토록 했다. 이에 따라 민간인을 학살한 군인과 경찰, 서북청년단과 산사람이라고 불렸던 무장대는 다른 평가를 받게 된다.

전자는 쫓는 자의 입장으로 다수를 차지했고 4.3 희생자의 80% 가량이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후자는 도망자로 소수였고 상대적으로 폭력의 빈도가 낮았다. 전자는 미군의 보호를 받았고 후자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전자는 일찌감치 희생자로 인정되었고 충혼묘지에 안장되었다. 후자는 희생자에서 제외되었고 묘지를 확인할 수도 없다. 전자는 제주4.3 직후부터 유공자로 후자는 지워진 이름으로 남아 있다. 전자는 대다수가 육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고 후자는 대다수가 제주도민이었다. 

전자와 후자를 구별짓는 경계는 반공이다. 여전히 희생자는 반공이라는 기준으로 선별하고 있다. 제주4.3이 지금까지 내세운 화해와 상생의 구호가 누군가를 배제한 화해와 상생이라면 그것을 화해와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이념의 잣대로 가해자를 다시 구분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복잡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아무리 체제 우월성이 입증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4.3 당시 무장대라 정의한 산사람들 중 대부분은 죽임을 피해 도망간 사람들이었고 단정반대와 통일정부를 외쳤던 그들이 원했던 사회도 지금의 북한은 아니었다. 백번 양보해 체제경쟁으로 사상과 이념의 자유를 빼앗겼던 시대를 지금의 잣대로 나누어서 그들을 재단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들이 남긴 생각의 흔적들을 주워 당시 산사람들이 꿈꾸었던 제주와 토벌대가 꿈꾸었던 제주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이제는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낡은 이념의 렌즈를 벗고 온전히 그 시간을 이야기해보면 제주4.3의 미래도 그려지지 않을까. 

지난주 제주도교육청에서는 ‘2022 개정교육과정 역사 교과서 4.3 기술 명시를 위한 평화·인권교육 발전 방안 포럼’이 열렸다. 시중에 출판된 9종의 한국사 교과서 중 8종에서 제주4.3을 단독정부 수립 반대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미 교과서에서는 제주4.3이 한 걸음 더 나가 있는데 교과서 밖은 시계가 멈춰있다.

반공의 국부 이승만은 통일정부 수립을 외쳤던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고 마구 죽이고 반공 정권 수립의 제물로 삼았지만 결국 그는 시민들의 손에 의해 쫓겨났다. 하지만 그의 유령은 여전히 제주를 배회하고 있고, 그가 남긴 특권의식은 한국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아이들의 교과서를 꺼내 제주4.3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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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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