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로컬푸드로 희망 찾은 공동체 올바른농부영농조합법인

제주 농부들이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

“조금씩 생산하는 친환경 농산물을 효과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 고민을 하던 올바른농부영농조합법인의 농부들은 2018년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에서 진행한 로컬푸드 교육에서 처음 만났다. 로컬푸드에 대한 열망이 컸던 17팀이 모여 아라동 옛 목석원 자리 앞에서 2주에 한 번 직거래 장터를 열기 시작했다. ‘친환경 농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처음엔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찾는 소비자가 적었고, 가져온 농산물들은 다 팔지 못하고 남기 일쑤였다. 참가 농부들은 남은 농산물을 나누면서 서로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어떤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과정은 그들을 더욱 끈끈하게 연결시켰다. 더 건강한 농업을 추구했기에 연구회를 결성해 더 좋은 방법들을 논의하기도 했다.

지난 23일 달진밧에서 열린 올바른농부장. 이날 장터는 제주밀연구회와 협업으로 '우리밀 제주밀 로컬밀'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제주밀로 만든 건강한 베이커리 등 먹거리가 신선한 제철 채소, 과일과 함께 방문객을 맞이했다. ⓒ제주의소리
지난 23일 달진밧에서 열린 올바른농부장. 이날 장터는 제주밀연구회와 협업으로 '우리밀 제주밀 로컬밀'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제주밀로 만든 건강한 베이커리 등 먹거리가 신선한 제철 채소, 과일과 함께 방문객을 맞이했다. ⓒ제주의소리

1년에 10번을 하다보니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태풍이 불어도 찾아와주는 손님들이 생겼다. 그러나 이 곳에서 장터를 열기 어려워졌고 이용가능한 장소를 찾아 이곳저곳으로 장터를 옮겨다녔다. 건물 한 곳을 임차해 마련했지만 1년 만에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어려움에 처했다.

그 때 이들에게 다가온 사람이 제주밀연구회의 장창언 대표. 자신의 2000평 땅을 올바른농부들에게 1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해주기로 한 것이다. 제주밀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오며 고군분투해온 장 대표의 눈에도 농부들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제주시 도련일동에 위치한 ‘달진밧(제주어로 기름지고 넓은 밭)’은 그렇게 탄생했다. 

제주시 도련일동에 있는 달진밧과 오등동에 있는 카페 피커스 제주에서는 2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올바른농부장이 열린다. 싱싱한 제철 채소와 과일, 청정 농작물들로 만든 건강한 메뉴들을 만날 수 있는 직거래장터다. 셀러 하나하나마다 특색과 개성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농업인들과 친환경 재배에 관심이 많은 50여명이 꾸린 올바른농부영농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장터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도련일동에 있는 달진밧과 오등동에 있는 카페 피커스 제주에서는 2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올바른농부장이 열린다. 싱싱한 제철 채소와 과일, 청정 농작물들로 만든 건강한 메뉴들을 만날 수 있는 직거래장터다. 셀러 하나하나마다 특색과 개성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농업인들과 친환경 재배에 관심이 많은 50여명이 꾸린 올바른농부영농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장터다. ⓒ제주의소리

농부와 소비자 사이 길을 잇다

문희선 올바른농부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농부학교를 처음 시작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비자들에게 농업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직접 작은 땅에 농사를 지어보고 경험해보는 과정입니다. ‘농산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지 알고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올바른 농부학교의 주제가 ‘내농내먹’이예요. ‘내가 농사지은 것을 내가 먹는다’는 뜻이죠.”

식탁위에 오르는 농산물이 어떻게 키워졌는지, 농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느끼면 소비자들이 농업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현재 달진밧 한 켠에는 25가족이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들은 친환경농업의 과정을 직접 체험하며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제주 농업이 한 가지 농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날씨가 안 좋으면 다 갈아엎거나, 병해충이 생기면 엄청나게 많은 비료와 농약을 뿌려야 해요. 농업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이산화탄소, 메탄가스가 생각보다 많아요. 이런 산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친환경농업이라고 봐요. 그리고 친환경농업도 대량으로 하면 버려지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다품종 소량생산에 더 매진해야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소농들이 살아남을 수 있고, 이 소농들의 생태농업이 땅과 물을 더 건강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어요.”

문희선 올바른농부영농조합법인 대표. 문 대표는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000평의 감귤밭을 맡게 됐는데 유기농법으로 친환경 감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여러 작물을 다품종 소량 생산하며 건강한 작물을 생산하면서 소농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들을 찾아왔고, 올바른농부영농조합을 통해 동료들을 만나면서 큰 힘을 얻었다. ⓒ제주의소리
문희선 올바른농부영농조합법인 대표. 문 대표는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000평의 감귤밭을 맡게 됐는데 유기농법으로 친환경 감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여러 작물을 소량 생산하며 소농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들을 찾아왔고, 올바른농부영농조합을 통해 동료들을 만나면서 큰 힘을 얻었다. ⓒ제주의소리

다품종소량생산은 문 대표가 추구하는 제주농업의 새로운 길이다. 2022 제주시소통협력센터 제주생활실험 프로젝트를 통해 다품종 소량 생산 농가의 농산물을 레스토랑에 꾸러미 형태로 납품해 판로를 개척했다.

지금도 이 셰프들은 농장을 직접 방문해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농부들과 대화를 나눈다. 제주에서 다양한 농작물을 키우며 실험하던 농부들에게도, 재료를 도외나 해외에서 구입해야했던 레스토랑 셰프들에게도 기쁜 일이다.

아쉬움은 제주가 로컬푸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와 관심이 빈약하다는 점. ‘제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제주도민들이 마음껏 누리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는 게 올바른농부들의 생각이다.

“농부들이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랑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그리고 제주의 농산물들 중 육지로 올라갔다가 다시 포장이 돼서 제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불필요한 유통과정이에요. 이 과정에서 탄소 발자국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고요.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우리 제주도민이 소비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게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제주도에 그런 것을 더 많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달진밧에서 진행되는 농부학교. 참가자들은 친환경 농작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씨앗 심기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 ⓒ제주의소리
달진밧에서 진행되는 농부학교. 참가자들은 친환경 농작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씨앗 심기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 ⓒ제주의소리

앞으로는 농장에서 기른 채소를 식탁에서 바로 먹는 팜투테이블(Farm-to-Table)도 열린다. 갓 수확한 농산물을 셰프의 레시피로 조리해 자연 속에서 바로 먹는 경험이 가능하다.

장터를 주기적으로 열고, 축제를 하고, 농부학교를 운영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일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여정이다. 하나하나 느리지만 조금씩, 정직하게 그들의 방식대로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그 끝에는 ‘농민이 행복한 제주’, ‘청년농들이 희망을 갖고 땅을 일구는 제주’를 향한 염원이 있다.

“청년농부들이 지금 자리잡기가 정말 어렵잖아요? 저희는 농부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많은 농부들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농부들이 농사의 재미를 느끼고 행복한 마음으로 농사를 잘 지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필요해요. 소비자로 인해 생산자들이 힘을 많이 얻거든요.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농업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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