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다라 칼럼] ‘제주대 한림원’ 출범에 즈음하여 / 김수종 

지방대학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세 속에 수도권 대학 진학 집중화가 가중되면서 지방대학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역대 정부와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방대학 육성 정책들은 계속 발표되고 있으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거점 국립대학교인 제주대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역 인재가 지역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대학과 지자체가 함께 지역상생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기도 하다. [제주의소리]는 지방 및 지방대학이 처한 현실과 위기 대응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지방대학을 살리는 길이 곧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는 인식 아래 핵심 주체인 제주대학교와 지혜를 모아보는 공간을 마련했다. 제주대학교 정책자문기구인 ‘한림원’ 소속 9명의 명사가 대학과 지역사회에 전하는 칼럼을 릴레이로 싣는다. 학령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대전환 등 급변하는 고등교육 생태계 변화에 대처하고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 혁신 방안과 정책을 제언하게 된다. 엄숙하고 날카로운 고담준론(高談峻論)의 칼럼을 월 1회 만난다. 이름하여 [인다라 칼럼]이다. ‘인다라’는 제주대학교가 자리한 ‘아라동’의 옛 지명에서 따왔다. / 편집자 주


‘벚꽃엔딩’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뜻으로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대학의 소멸 위기를 상징하는 말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많은 지방대학이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존폐 위기에 몰리고 있다. 지방의 대학이 소멸하면 그 지역의 공동체도 쇠퇴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벚꽃이 피는 제주도내 대학의 사정은 어떨까. 도내에는 제주대, 국제대, 제주한라대, 제주관광대 등 4개 대학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023년 수시 및 정시 모집에서 입학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해 추가모집을 하는 등 학생모집이 여의치 않았다. 그중엔 존폐 위기의 대학도 있다.  

국립대학으로서 제주도의 대표 고등교육기관인 제주대의 경우 일부 학과에서 추가모집을 해야 할 정도로 신입생 확보가 예사롭지 않지만, 일반인들의 눈에는 당장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추세와 통계를 바라보며 학사행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대학 당국이나 해당 학과 교수진은 위기감이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지난 6월 초 제주대 아라 캠퍼스 본관 회의실에서 아주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김일환 총장의 주재로 열린 이 날 모임의 명칭은 ‘제주대학교 한림원 제1회 정례회의’였다. 밀려오는 대학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주대학의 경쟁력 향상과 더불어 지역사회 공동체와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입각해서 캠퍼스 바깥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조언을 구하기 위해 만든 총장 자문 기구가 바로 한림원이다.   

한림원은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총장이 학내 인사로서 위원장을 맡았지만, 나머지 9명은 외부 인사들이다. 학계뿐 아니라 재계, 비영리사회단체, 언론계, 공연기획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분야 사람들이다. 

위원들은 이날 학교 보직 교수 및 관련 교직원들의 안내와 설명을 통해 제주대학의 현재 상황을 듣고 또 교내 투어도 했다. 도서관을 비롯하여 학교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나서 위원들은 캠퍼스의 방대함과 다양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다수 위원이 제주지역 연고가 없는 사람들인데도 제주도 및 제주대에 관한 관심이 아주 높은 것을 보며 최근 제주도가 소위 핫플레이스(Hot-place)로 떠오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림원의 설립 목적을 보면 제주대학 당국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제주대는 한림원의 설립 목적을 두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학령인구 감소 등 급변하는 대학 교육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여 제주대를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거점 국립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지자체와 대학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발전의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사회와 네트워크를 잘하는 것은 비단 제주대학만의 꿈은 아니다. 모든 지방대학이 소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은 그럴듯하지만 대체로 대학은 변화가 쉽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제주대학이 이런 목표를 달성해야 할 당위성과 함께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제주대가 자리 잡고 있는 제주도에 큰 변화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지금처럼 국내는 물론 해외로부터 관심과 조명을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역사상 이렇게 제주도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쏟아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환경의 변화에 관광이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에만 해도 제주도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위기가 팽배했다. 수입자유화로 제주경제를 지탱하는 감귤농업이 몰락할 것이라고, 해외여행 자유화로 관광객을 뺏겨 제주의 관광산업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야단이었다. 사실 그 여파는 컸다. 대학나무라 일컬어졌던 노지 밀감농업은 쇠퇴했고, 신혼여행 관광객은 사라졌다. 

그러나 중국과 동남아 지역의 경제발전으로 제주도는 중국과 아시아 관광객이 찾아오고 한국의 선진국 진입으로 제주도를 찾는 국내 관광객들의 관광행태도 변했다. 노지 감귤농업은 쇠퇴했지만, 온실 등 과학적인 시설과 인프라를 통해 다양한 과일과 야채를 생산하는 농가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대도시 주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제주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주도가 2박3일 단순 관광지가 아니라 한 달 살기 열풍을 불러올 정도로 외부의 시선이 변했다. 제주도의 깨끗한 자연환경을 숨 쉬며 온라인을 통해 서울이나 외국과 통신하며 일을 하고 싶다는 젊은 지식노동자들이 생기고 있다. 소위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동시에 하며 살겠다는 워케이션(workation) 라이프스타일 개념이다. 서울-제주간 항공노선은 세계에서 최고로 붐비는 하늘길이 되었다. 이제 교통이나 라이프스타일로 보면 제주도는 수도권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제주대학의 학생 구성에서도 이런 영향이 있을 것이다. 

21세기 초 제주도 인구는 50만 명이 약간 넘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제주 상주인구는 70만 명으로 30% 이상 늘었다. 대부분 지방이 인구감소로 고민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인구의 증가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제주도의 대학 발전에 호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대학이야말로 거점 국립대로서 이런 변화의 맥락을 잘 파악해서 변신하고 혁신한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학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주대학의 질적 향상을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지방대학 같지 않은 소위 ‘인서울(In Seoul) 대학’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대학이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려면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학제개편 및 커리큘럼의 변화와 함께 이런 변화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교수들이 필요하다. 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가야 한다. 최근 4차 산업혁명 등 시대변화는 학문의 융합을 요구하고 있는데, 제주대학의 최근 이공계 단과대학 통합 시도는 그 귀추가 주목되는 실험이다. 대학의 소프트웨어는 연구와 가르침을 동시에 담당하는 교수의 두뇌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주대 교수들의 연구 실적이 언론에 간혹 보도되고 세간의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 제주대의 희망을 보게 된다. 

일전에 유럽에서 경영학 학부를 마친 제주대 여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전공은 원예였다. 왜 제주대를 택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뒤늦게 꽃 재배에 관한 관심이 생겼고 ‘제주도는 식물의 보고’인데다 교수가 좋은 것 같아 제주대학을 찾아왔다”고 답변했다. 이런 학생이 제주대가 주목해야 할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 유행하는데, 종합대학이지만 제주대 하면 젊은이들 사이에 떠올리는 학과나 교수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얼마 전 제주의 언론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주대학에 ‘제주학’이란 커리큘럼이 없는 것을 한탄하는 얘기를 했다. 사실 제주학 필요성은 수없이 나왔던 진부한 얘기이다. 그 성격이나 제주대 교수들의 인식에 비춰 볼 때 독자적 학문 분야로서 존립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제주도가 21세기 들어 지정학적으로나 자연 및 사회 환경적으로 조명을 받는 현재 제주대학이 ‘제주학’ 실험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주학은 제주의 역사는 물론 자연과 인문환경 등을 융합한 분야가 될 것이므로 제주의 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건 제주대와 지방정부가 같이 해야할 과제다. 제주대학은 연구 목적으로, 또 제주 지방정부는 제주를 알리는 홍보의 목적으로 유연한 협력을 한다면 ‘제주학’은 실체를 가진 분야로 떠오를 수 있다.  

대학은 지역사회와 호흡을 같이 해야 생동감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스탠퍼드대학과 버클리 대학의 에너지를 받으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엔진 노릇을 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학은 미국 동부의 정관계와 지식인 사회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200년이나 해왔다. 

마찬가지로 제주대학도 제주 지역사회의 중심으로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금처럼 제주도가 국내외의 관심과 조명을 받을 때 대학과 지역사회가 상호 협력하면 서로 얻을 수 있는 과실이 많아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제주대학은 특성화된 면모가 나타날 것이다. 

그동안의 추세를 보면 지방정부는 공직사회의 경직성에 의해, 제주대학 역시 국립대학 조직의 현실 안주의 특성에 의해 유연한 상호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게 어려웠다. 말로는 변화와 혁신을 말하고 제주도의 비전을 말하면서도 실천은 못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제주대학 총장이 제주의 미래를 생각하며 대화하고 고심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대단히 클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환경변화에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있다. 제주도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젊은이들에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제주 지방정부와 제주대학은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제주도민의 지적성장과 지적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 중심역할을 제주대학이 해줄 수 있다. 제주대 교수와 직원들은 싫어하겠지만 제주대 캠퍼스는 지급보다는 훨씬 개방되어야 한다. 밤에도 강의실에 불이 훤히 켜져 있고 도서관도 제주도민의 지적성장을 위해 활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전제조건은 지방정부의 구체적인 관심과 지원이 따라야 한다. 

또 하나 제주대학이 염두에 둘 만한 관심거리는 외연의 확장이다. 첫째는 워케이션의 측면에서 서울이나 타 지역의 공직자들이나 회사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면서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 한 달 살기나 워케이션의 개념을 제주대학이 평생교육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학제를 보다 유연하게 운영해서 전국의 좋은 강사진들이 단기간 수강자들과 어울리며 제주를 호흡하게 한다면 제주대학이나 제주도의 이미지는 고양될 것이다. 

김수종 언론인·전 한국일보 주필
김수종 언론인·전 한국일보 주필

둘째는 동남아 등 해외유학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일이다. K-팝 등의 확산으로 세계의 청년들이 한국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제주대학이 이런 곳에 눈을 조금 돌린다면 힘겹게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 정책에도 부합하고 제주대학의 이미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주대학은 600여 명의 박사가 모여 있는 무서운 두뇌집단이다. 약 1만2000명의 청년들이 미래를 꿈꾸며 공부하고 방황한다. 제주대학의 활성화는 제주도의 생동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역사회가 살아날 것이다. 

제주도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은데 벚꽃엔딩은 제주도에 맞지 않는다. 해마다 벚꽃 철이 되면 더욱 인기가 좋아지는 제주대학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가만히 기다려선 안 된다. 제주대 구성원과 제주 지방정부가 엔진이 되고 배터리가 되어야 한다. / 김수종 언론인·전 한국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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