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187) wanderlust

wanderlust [wάndǝrlʌ̀st] n. 방랑벽(癖)
이레저레 돌아뎅기는 살(煞)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살(煞)

/ 사진=픽사베이
이러한 역마살은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지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wanderlust는 wander “방랑하다(=to wind)”와 lust “욕망/갈망(=desire)”의 합성어(compound word)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desire for wandering)”을 뜻한다. 물질적 안정(material stability), 정서적 안정(emotional stability), 사회적 안정(social stability)을 바라는 게 일반적인 안정욕구라면, wanderlust는 그에 반하는 병적인(morbid) 욕구로 보았기에 ‘방랑욕’이 아니라 ‘방랑벽’이라 하는 듯하다. 

그런 방랑벽을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역마살(驛馬煞:itchy foot)’이라 하였다. 아시다시피. 옛날에는 지금과 같이 통신·교통시설이 발달하지 않아서 일정한 거리마다 역참(驛站: posting station)을 두고 거기서 말을 갈아타며 급한 볼일을 보러 다니곤 했다. 그런 역참마다 갖추어 둔 말이 ‘역마(驛馬:post horse)’였는데, 보통의 말들보다 훨씬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역마 뒤에 붙은 ‘살(煞)’은 사람이나 물건 등을 해치는 “독한 기운(strong energy)”을 뜻하였으니, ‘역마살이 낀 사람’이라 하면 ‘천성적으로 역마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좋지 않은 팔자(bad fate)를 지닌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반해, 중원대륙(central continent)의 유목민족(nomads)에게 그런 역마살은 좋은 팔자도 나쁜 팔자도 아니었다. 유목민들은 소와 양 같은 짐승 떼들을 기르면서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면 목초(grass)가 다시 자라날 수 없을 정도로 고갈(depletion)되기에 어쩔 수 없이 철따라 이주를 해야만 했다(be obliged to move according to the season). 그런 그들에게 역마살이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유목민이면 누구나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던 팔자(the fate one has to take in), 말 그대로 숙명적 팔자였다. 결국, 농경문화가 우리에게 ‘정착(settlement)’을 요구했다면 목축문화는 그들에게 ‘이동(mobility)’을 요구했던 셈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게 wanderlust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physical movement)만을 뜻하지 않았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challenge), 불확실성(uncertainty)을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receptive attitude)까지 망라하는 넓은 개념이었다. 거기에서 나오는 원동력으로 콜럼버스로 대표되는 탐험(exploration)과 발견(discovery)의 역사, 산업혁명으로 촉발되었던 변화(change)와 개혁(reform)의 역사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다만 그 당시 wanderlust가 지적 탐구를 향한 의지가 남달리 강한 (주로 상류층)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기운이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regardless of one’s will) 주어졌던 동양의 역마살과 구별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역마살은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지고 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라고 하지 않았던가? 과거에는 그런 구르는 돌이 되는 게 저마다 선택의 문제(matter of choice)였지만, 점점 평생직장(lifetime job)이 없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있는 지금은 아니다. 누구나 구르는 돌이 되어야만 하고 그 굴러감 속에서 역동적인 삶(dynamic life)을 살아야 하는 시대가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지 않은가. 구르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To roll or not to roll, that's the question).

# ‘한참’은 원래 역참(驛站)과 다음 역참 간의 거리(약 30리)를 지칭하는 한자어 표현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한참을 걷다’, ‘한참을 기다리다’ 등에서처럼 오랜 시간이나 먼 거리를 뜻하는 우리말 표현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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