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창작오페라 ‘이중섭’

2023 오페라 '이중섭' 무대 인사 장면. / 이하 사진=서귀포시
2023 오페라 '이중섭' 무대 인사 장면. / 이하 사진=서귀포시

서귀포시 창작오페라 ‘이중섭’은 코로나19 여파로 쉬어간 2020년을 제외하고 7년 연속 공연을 이어왔다. 그러면서 제주지역 행정 주도 창작 공연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현재 진행형으로 지키고 있다. 

6일~7일 관객과 만난 올해 공연은 지난해에 이어 국내 오페라계의 베테랑 연출가인 장수동과 손잡고, 주역은 비교적 젊은 신진 성악가들을 섭외하는 등 안정과 변화를 나름 균형 있게 꾀했다.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이중섭의 삶, 그리고 인연들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 마사코(남덕)를 만나 결혼하고, 6.25전쟁으로 피난길에 올라 서귀포에서 짧은 행복을 맛본 뒤 가족과 헤어진 뒤, 서울에서 성공을 꿈꾸지만 끝내 실패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나는 일대기를 그리는 오페라의 줄거리는 2016년 초연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는 없다.

지난해는 서귀포 생활로 시작해 회상 속 혼인, 피난, 어머니와의 이별로 진행했다면, 올해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짧은 독백으로 시작해 혼인, 피난, 이별, 서귀포 생활 순으로 진행했다. 주민들을 연기한 코러스와 함께 떠들썩하게 막을 여는 시작도, 이중섭이 고독하게 홀로 서서 그리움을 읊는 시작도 각각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2막을 끝내는 역할 역시, 피난길에서 이중섭과 어머니의 가슴 절절한 2중창 혹은 번뇌 끝에 이별을 택하는 마사코의 독창 모두 누가 낫다고 따지는 영역이 아닌 선호도의 차이에 가깝다.

올해 ‘이중섭’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연출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중섭과 어머니가 함께 부르는 일명 ‘엄마 내음’ 2중창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이중섭의 기억 속에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불려왔는데, 올해는 피난길 장면에 배치했다. “우리 다시 만나요”라는 가사는 전쟁통 피난과 교차되면서 한결 간절하게 다가왔다. 수년 간 이어오며 자칫 익숙해질 수 있는 구성 안에서 색다른 감흥을 발굴하는 작지만 빛나는 연출로 꼽겠다.

오페라 ‘이중섭’은 그가 살아온 짧은 인생에서 중요한 인연들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아내 마사코와 구상·광림 같은 동료들은 극 안에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마사코는 서귀포 생활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부득이하게 일본으로 떠나야 하는 심정, 그리고 회상 장면에서 일본인 어머니와의 갈등까지 감수하며 남편에 대한 깊은 신뢰까지 보여준다. 동료들은 용기를 북돋는 서울 작업실, 개인전에서 이중섭의 작품 설명과 구상의 진심이 담긴 격려, 마지막 정신병동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내내 함께 한다.

2023 오페라 '이중섭'의 한 장면.
2023 오페라 '이중섭'의 한 장면.
2023 오페라 '이중섭'의 한 장면.
2023 오페라 '이중섭'의 한 장면.

이런 구성은 이중섭의 삶을 주변인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넓게 이해하게 만든다. 동시에 ‘예술가’로서 이중섭은 무엇이었는지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가 품었던 예술관, 작품에 대한 자세 등은 작업실 장면에서 “내 갈 길이 보인다”는 깨우침이 담긴 한 곡으로 사실상 요약된다. 그 마저 마사코와 만난 일본 유학 시절 회상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3막의 피날레를 동료들과 장식하면서 더욱 옅어진다. 이중섭은 병상에서 “다시 그때가 와도 그때처럼 살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술가로서 그때를 어떻게 살았는지, 작품은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 공연 피날레 곡에서 “뜨거운 예술혼”, “그 열정” 등이 가사로 등장하지만 다소 공허한 이유는 이런 배경에 근거한다.

인간 이중섭과 예술가 이중섭. 두 축 가운데 어느 쪽에 방점을 두냐는 오류나 잘못이라기보다는 작품의 개성으로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양쪽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작품도 좋지만, 창작의 의도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영역이다. 그렇기에 오페라 ‘이중섭’은 인간 이중섭에 비중을 둔 작품으로 다가온다. 만약 작품을 보강한다면 이런 부분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밖에 이중섭에게 가족 영정 그림을 받은 서귀포 주민 대사에 ‘4.3’이 빠진 점, 3막 초반 마사코를 긍정적인 의미로 언급하면서 ‘덕분’이 아닌 ‘때문’으로 적은 대사, 고증이 미흡한 경찰 복장 등도 기억에 남는 사족으로 덧붙인다.

어느새 홀로 우뚝 선 ‘이중섭’...새 창작의 동력으로

‘이중섭’이 오페레타로 첫 선을 보였던 2016년, 그 뒤로 지금까지 제주도·제주시가 주도해 만든 여러 창작 공연이 있었지만 명맥을 유지한 건 ‘이중섭’ 뿐이다. 빼어난 작곡 등 작품 자체의 매력과 서귀포를 기반으로 하는 양악 예술단, 그리고 이중섭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온 서귀포시의 관심과 노력이 어우러졌기에 가능한 성과다.

이 정도라면 서귀포시의 ‘새 오페라’ 창작도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제주도, 제주시도 가지지 못한 자체 창작 오페라 레퍼토리를 보유한 서귀포시를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오페라 ‘이중섭’을 이어온 서귀포시·서귀포예술단의 능력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고 기대하고 싶다.

2023 오페라 '이중섭'의 한 장면.
2023 오페라 '이중섭'의 한 장면.

또한 앞서 언급했듯, 오페라 ‘이중섭’이 이중섭이란 인물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은 한정적이기에, 오페라와 함께 이중섭을 알리는 뮤지컬, 연극 등 공연들을 묶어 소개하는 가칭 ‘이중섭 주간’ 등을 정책적으로 도입하는 건 어떨까 싶다. 현재도 이중섭 관련 예술 행사들을 특정 기간에 운영하지만 대중적인 체감은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다. 오페라 ‘이중섭’을 두고 배우, 연출, 극본 등에 있어서 폭넓은 변화를 시도하는 노력도 계속 필요하다.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상상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오페라 ‘이중섭’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린 덕분이라고 거듭 강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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