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85) 아리스토텔레스(박문재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현대지성, 2022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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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마다 돌아오는 북세통 책 소개가 반갑지만, 원고를 쓰는 과정은 괴롭다. 책 내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글을 어떻게 구성할지, 원고를 제출할 때가 되면 좌불안석이다. 게다가 윤리나 실천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경우에는 ‘자격지심’에 쓰는 게 주저주저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꼭 그런 책이었다.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책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자고 생각됐다. ‘행복, 미덕, 중용, 정의, 우정’은 책의 흐름에 따른 연결고리에 해당한다.  

번역본이 여러 권 있다. 그 중에서 철저하게 독파한 책은 없지만 최근에 읽은 책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같은 책인데도 번역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박문재 역은 어려운 책 내용을 최대한 쉽게 번역한 느낌이 든다.

행복과 미덕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을 ‘좋음’으로 규정한 다음,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에 따르면, 궁극적인 목적이 되기 위해서는 “완전하고 자족적이어야” 하는데, ‘행복’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한다. 행복은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고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지 않는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다음 문장에서 우리는 불행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나쁜 쪽으로 큰일이 많이 생기면, 고통을 초래하고 많은 활동을 방해해 행복을 억누르고 망친다. 하지만 그럴 때도 고통에 무감각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혼의 고귀함과 위대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불운을 묵묵히 견뎌낸다면, 그 고귀함은 빛을 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완전한 미덕에 따른 혼의 활동”으로 보았다. ‘미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aretē는 ‘어떤 것의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탁월함’, ‘훌륭함’으로도 번역되는데, 사람의 성품과 관련해선 주로 ‘덕(德)’으로 번역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탁월함’, ‘훌륭함’으로 번역할 수 있다.   

미덕에는 지적 미덕과 도덕적 미덕이 있다. 지적 미덕은 경험과 시간이 동반된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도덕적 미덕은 올바른 습관의 형성을 통해 자라난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의 역할을 강조했다. 습관은 아주 큰 차이를 낳는다. 에우에노스의 말을 인용한다. “친구여, 오랜 시간에 걸쳐 행해온 것, 그것이 결국에는 사람의 본성이 되는 것이라네.”  

미덕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미덕을 실천해야 한다. 행복은 미덕에 따른 활동을 통해 얻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론’은 그의 윤리관, 행복론이다. 

미덕과 중용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중용’을 제시한다. 중용에 해당하는 미덕은 두 악덕, 즉 지나침에 따른 악덕과 모자람에 따른 악덕 사이에 있다. 예컨대 절제와 용기는 지나침과 모자람에 의해 훼손되고 중용에 의해 지켜진다. 

미덕은 지나침과 모자람의 중간을 찾아 행하는 것이며, 지나친 것과 모자란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선택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기에, 실천적인 조언으로 중간과 크게 대립되는 것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권면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원칙을 각각의 개별적인 미덕에 적용했다. 무모함과 비겁함의 중간에 ‘용기’라는 미덕이 있다. 무절제와 무감각함 사이에 ‘절제’라는 미덕이 있다. 낭비와 인색함 사이에는 ‘후함’이라는 중용이 있다. 

‘통이 큰 것’과 ‘포부가 큰 것’도 중용의 원칙을 적용한 미덕이다. 허풍과 자기 비하 사이에는 ‘진실함’이라는 미덕이 있다. ‘온화함’도 중용의 미덕에 속한다.   

미덕과 정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권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장에 해당한다)은 ‘정의장(正義章)’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정의’ 기준을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미덕’으로 설명한 뒤에, 교환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자연적 정의와 법적 정의를 간략하게 다룬다. 뿐만 아니라 자발성과 관련해 ‘부정의’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구체적 사건에서의 정의’인 형평도 다룬다. 

5권 내용을 쓰는 것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제일 어렵다는 걸 이내 알겠다. 여기서 간략하게 언급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여기선 한 가지 점을 부각하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5권을 ‘미덕으로서의 정의’로 시작했다. 5권 전체에서 작은 분량이만, 앞서 다룬 미덕과 정의가 바로 연결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미덕의 일부이고, 가장 완벽한 미덕이라고 설명한다. 정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탁월성”(이창우, 김재홍, 강상진 역), “타인을 위한 좋음으로 간주되는 유일한 미덕”(천병희 역)이다. 정의는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것”이며, 미덕 중에서 정의만이 유일하게 ‘타인에게 좋은 것’, ‘남에게 유익한 것’이 된다. 

정의를 내세우는 것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기에 어느 때는 매정할 정도로 차갑다고 느껴진다. ‘타인을 위한 유일한 미덕으로서의 정의’는 차가운 정의에 따뜻함을 부여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책 ‘정치학’에서 여성과 노예를 다룬 부분은 그런 따뜻함이 전혀 없다. 여성과 노예를 불행하게 하는 부정의한 주장이 버젓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상가의 사상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 예컨대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이 좋다고, 그가 식민지 정책을 후견적 입장에서 정당화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정과 사랑  

아리스토텔레스는 제8권과 제9권에서는 ‘우정과 사랑‘을 사람의 덕으로 다루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더불어 삶아가는 관계 속에서 중요한 것으로 ’필리아(philia)‘를 고찰했다. 필리아는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바람이 쌍방적이면서도 그러한 상태를 쌍방이 인지하고 있는 품성상태'를 말한다(NAVER 백과사전 활용). 우정과 사랑은 좋은 삶으로 이어지며,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하기 위해선 신체와 관련된 좋은 것, 외적으로 좋은 것과 행운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며, 우리가 익히 받아들이는 바다. 미덕의 실천 외에 외적인 좋음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나뉜다. 확실한 것은 ‘미덕으로서의 행복’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점이다.

나가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에 따른 실천을 강조하면서도, ‘관조적인 삶’을 가장 행복한 삶으로 보고 도덕적 활동은 그 다음으로 두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선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철학자지만, 그의 사상은 후대 사상가에 의해 도전받았다.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신기관’에서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책 초반과 마지막 부분에서 미덕에 대한 교육과 입법, 미덕을 강조하는 정치체제가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그의 다른 책 ‘정치학’으로 이끌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미덕을 통한 행복’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 차원에서 시민을 양성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덕을 뒷받침하는 정치체제가 오늘날 어느 정도나 가능한지, 교육에 의한 시민 양성이 가능한지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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