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윤용택 철학과 교수 ‘제주섬에서 만난 환경철학’ 발간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보유한 제주도. 그러나 각종 난개발로 인해 가치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환경 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며 제주가 보다 나은 생태사회로 변모하길 바라며, 제주대학교 철학과 윤용택 교수가 새 책을 펴냈다. ‘제주섬에서 만난 환경철학’(제주대학교출판부)이다.

이 책은 ▲환경문제의 철학적 접근 ▲환경철학에서 보는 제주섬 ▲생태적 합리주의를 기대하며 ▲생태사회를 향하여 등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있다.

환경철학에 대한 기초 개념부터 시작해 제주의 한라산, 오름, 곶자왈, 벵듸, 생태문화 등에 담긴 가치를 상세히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생태적 합리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풀어내고, 제주가 생태사회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 조언을 더한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들은 제한된 공간과 유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와 유사하다. 그래서 섬들의 과거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좋은 모델이다. 제주섬의 전통문화는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제주인들이 어려운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생태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제주섬의 전통문화는 생태문화였고, 전통사회는 생태사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인들은 산천초목과 인간 이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믿음(민간신앙)을 가지고 자연을 잘 보전했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세시풍속(신구간)을 지키면서, 각종 폐기물을 자원으로 순환하는 시스템(돗통시)을 통해서 자원고갈과 폐기물을 최소화했으며,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에 잘 맞는 옷(갈옷)과 먹거리를 창안했다. 그리고 적은 자원과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동체(수눌음) 내지는 결사체(계)를 조직했고,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가족제도(분가제도)를 두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협력할 수 있는 공동체 문화(궨당문화)를 마련해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왔다.

- 138쪽 중에서


생태적 합리주의는 지배적 합리주의가 도외시했던 ‘없음, 비움, 느림, 쉼’ 등의 가치를 중시하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저 그대로의 자연’을 소중히 여긴다. ‘있음, 채움, 빠름, 일’ 등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경제를 ‘채움경제’라 한다면, ‘없음, 비움, 느림, 쉼’ 등의 효용성을 중시하는 경제를 ‘비움경제’라 할 수 있다. … 인위적 시설이 넘쳐나는 데 반해 야생의 자연은 사라지고 있고, 일(노동)보다는 놀이(여가)가 중시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앞으로 지배적 합리주의를 이끌어온 ‘채움경제’ 못지 않게 생태적 합리주의가 선도할 ‘비움경제’가 새로운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 222쪽 중에서 

저자는 생태적 합리주의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정책으로 지역통화시스템과 생태박물관을 제시한다. 지역통화시스템은 국가통화 없이 재화와 서비스를 주고받는 거래 시스템이다. “지역통화는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재화와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개인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생태박물관은 “지역의 자연환경, 전통문화, 생활방식 등을 보존 계승하면서 일반인에게 알리고, 지역주민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고, 방문자가 다양한 체험에 참여하는 박물관”이라고 제안했다.

저자는 이 책이 그동안 학술지에 발표했던 글과 두 편의 보고서를 다듬었다고 소개한다. “이 책이 제주환경과 지구를 지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생소한 환경철학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탐라문화연구소 연구원, 제주환경운동연합, 책 표지 그림을 제공한 홍진숙 미술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윤용택 교수
윤용택 교수

윤용택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우다가 물질을 탐구하는 과학과 정신을 탐구하는 인문학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역사학자 토인비의 글을 읽고 철학도가 됐다. 동국대학교 철학과에서 ‘마리오 붕게(M. Bunge)의 인과론’(1995)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1994년 계간 ‘과학사상’ 편집주간을 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2000년부터 제주대학교에서 환경철학을 강의하면서 인간중심주의, 생명중심주의, 생태중심주의의 입장과 한계를 들여다보게 됐고, 2005년 제주환경운동연합과 인연을 맺으면서 환경과 생태계를 어떻게 보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환경갈등 현장을 오가며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론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확장된 공리주의, 확정된 인간중심주의, 생태적 합리주의 등의 환경이념을 도출했다. 

한국과학철학회 부회장,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장, (사)제주학회장, 제주환경운동연합 대표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과학철학입문(번역, 1993) ▲제주도 신구간 풍속 연구(2008) ▲인과와 자유(2014) ▲한국의 르네상스인 석주명(2018) ▲제주학의 선구자 석주명(공저, 2021) ▲물을 품은 제주섬을 말하다(공저, 2022) 등이 있다.

320쪽, 제주대학교출판부,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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