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44) 학교에서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 1

초·중등교육법에서 정의하는 교직원은 교원과 행정직원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교원은 교장, 교감, 수석교사, 교사를, 행정직원은 교원 외에 학교운영에 필요한 직원을 말한다. 교사는 정교사(1급·2급), 준교사, 전문상담교사(1급·2급), 사서교사(1급·2급), 실기교사, 보건교사(1급·2급) 및 영양교사(1급·2급)로 나눈다. 여기까지가 그나마 법에서 정의하는 교직원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학교는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들은 법이 아니라 조례에 따라 정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경우 교육지원, 행정지원, 급식지원의 세 영역에 22개의 무기계약직종과 2116명의 정원을 두고 있다. 22개 직종은 돌봄전담사, 영양사, 교육복지사, 조리실무사, 조리사, 기숙사 사감, 청소원, 행정실무원, 교육업무 실무원, 특수교육실무원, 외국어교육실무원 등 생소한 이름의 직종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선생님이 아니라 실무사, 실무원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무기계약직종에 포함되지 못하는 기간제로 일하는 이들도 많다. 학교안전지킴이, 실습지원 보조강사, 운동부 지도자, 외부 강사, 방과 후 프로그램(학교) 위탁 강사 등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1년 이내로 근무한다. 

2023년은 사회적으로 교권 회복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제도가 마련되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현장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있고 교권 회복까지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갈 길이 먼 교권 논의에 다른 얘기를 붙이기가 조심스럽지만, 몇 가지 이야기들은 조심스럽게 꺼내야 할 것 같다. 학교를 교사, 특히 교과 교사 중심의 교육공간으로 상상하게 되지만, 위에 열거한 것처럼 너무나 많은 직종의 구성원들이 함께 꾸려가는 공간이다. 학교는 공동체라고 불리지만, 공동체 밖에 머무는 존재처럼 보이는-교사도 행정직원도 아닌 그들의 이야기 가운데 오늘은 급식지원과 관련된 업무의 문제점을 간략히 살펴보려고 한다.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한국에서 학교급식은 정부수립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 전쟁 후 1953년 유니세프에서 전쟁고아를 위한 물자를 지원받아 빵 급식을 시작한 것을 학교급식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학교급식은 무려 7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1960년대까지 해외 원조로 이뤄진 급식은 무상급식이었다. 1972년 해외 원조가 끝난 후에는 1973년부터 정부 예산으로 빵과 우유 급식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점차 축소되었다. 1981년 1월 학교급식법이 제정되면서 학교급식의 본격적인 근거가 마련되었고 1993년 시행규칙과 급식위생 관리지침까지 만들면서 학교별 위생적인 급식의 제도가 갖추어졌다. 학교급식을 실시하는 학교들의 학부모, 교직원, 학생들의 호응이 높아 1980년대에는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학교급식이 확대되었다. 1990년대 한국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학교급식은 도시락 싸는 부담을 덜어주는 등 사회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학교급식이 확대되면서 제도적 문제점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급식비 지원제도의 문제와 함께 1996년 위탁 학교급식이 제도적으로 허용되면서 가격 경쟁으로 인한 급식 질의 저하문제와 급식 비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2002년 11월부터 전국적으로 주민발의 급식조례 제정 운동이 펼쳐졌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학교에 급식비를 지원하고 지역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조례 제정 운동의 전국적 확대 속에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논란도 뜨거웠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은 2011년 당시 서울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 미달로 서울시장에서 물러나면서 무상급식 논란은 전국적으로 일단락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전국 모든 학교가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으며, 98% 정도의 학교가 직영급식을 하고 있다. 

한라중학교에서 학교 급식을 먹는 오영훈 제주지사와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라중학교에서 학교 급식을 먹는 오영훈 제주지사와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학교급식의 역사만 살펴보면 그간의 문제점을 극복하며 거듭 발전해온 것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희생 속에 정착한 제도임을 알 수 있다. 영양교사제도는 2006년 개정된 학교급식법에 따라 2007년 3월 1일자로 각 학교에 제1기 영양교사가 배치되었다. 학생들의 바른 식습관을 위한 체계적인 영양교육을 위해 영양교사를 배치하려는 것이 처음 의도였지만, 학교 급식 사고를 막기 위한 관리자로서의 기능이 강조되었다.(2006년 법 전면개정 이유 참고) 1981년 학교급식법이 생겨나면서부터 쭉 유지된 “제 6조(학교급식의 운영원칙 및 관리기준) 제1항 학교급식은 교육의 일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2006년 전면개정과정에서 사라지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학교 급식의 원칙에서 교육이 사라지면서 영양교사는 교육의 주체에서 급식의 주체로만 머무르게 된 것이다. 물론 학교 급식이 안정적으로 정착된 과정에는 학부모들의 급식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후에는 조리 실무사와 조리사들의 저임금과 극한 노동이라는 희생을 통해 정착되었다. 

영양교사는 교사로 분류되지만, 정규수업을 하진 않는다. 비교과 교사라서 그렇다. 그러면 학교급식 시간에 지도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짧은 시간에 적게는 백 명에서 많게는 천 명이 넘는 학생에게 배식을 하면서 교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행 급식지도는 안전한 급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예 채소를 먹지 않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기후위기 시대에 밥상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점점 중요한 지구적 과제가 되고 있지만, 희망 급식을 받아 아이들이 원하는 급식을 해야 그나마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희망 급식이란 게 요즘 유행하는 마라탕이나 탕후루, 소떡소떡, 짜장면 같은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K-급식이라는 칭송까지 받고 있지만, 실상은 아이들의 교육이나 건강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학교급식법이 개정되기 전이라도 교육청 차원에서 영양교사들의 교육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기를 바라는 이유다. 특히 제주도는 아동 비만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식습관 교육이 어느 지역보다 필요한 지역이다. 1년에 190번 가량의 급식을 하는 아이들을 책임지는 영양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기억되는 것이 그 출발이지 않을까. 

제주도교육청에서는 2020년부터 영양교육전문직원을 배치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교육청에서 학교급식을 총괄하는 장학사를 임기제로 선출하고 있다. 3년 임기에 1년 연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도의 맹점은 어렵게 행정 노하우를 취득한 장학사가 길어도 4년 뒤에는 무조건 그만둬야 한다는 점이다. 오직 제주도교육청에만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다. 그러면 2024년에 새로 선출되는 영양교육전문직원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 맡게 된다. 이런 이상한 구조가 영양장학사에게 적용되는 것은 교육청에서 학교 급식실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서울의 경우에는 임기가 없는 일반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영양전공 장학사를 임기제가 아닌, 일반 장학사로 선발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교육감의 의지라는 것이다. 임기제 장학사 제도의 부작용이 확인되면서 일선 교육청이 전체적으로 임기제 장학사 선발을 줄이는 와중에도 영양전공 등 비교과 임기제 장학사만큼은 계속 선발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청뿐만 아니라 각 교육지원청에도 전문직원을 둘 수 있다. 도내 196개 학교 8만여 명의 건강증진을 위해 급식을 총괄하던 장학사의 노하우가 내년 2월이 되면 사라지게 된다. 급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에서 건강과 환경을 위한 교육의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김광수 교육감 체제에서 영양교사가 교사로 제 이름을 찾을 수 있기를, 총괄하는 장학사의 전문성이 살아나길 기대해본다. 교육은 밥상머리에서부터가 아니던가. 


#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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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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