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채식문화원 고용석 공동대표

내면의 양심과 공동선 그리고 루소의 일반의지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용어 중 하나는 ‘일반의지’다.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사회공동체를 구성한 다음에는 개인 의지의 집합체인 공동체 전체의 의지, 즉 일반의지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일반의지는 흔히 ‘주권’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정부는 일반의지를 수행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문제는 서로에게서 일반의지를 어떻게 발견하고 알 수 있는가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인간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한국채식연합과 칭하이무상사 국제협회 등 각계 각층의 비건채식 단체 및 활동가들 500여명이 11월 1일 '세계 비건의 날'을 맞아 채식을 촉구하는 '비건기후행진'을 펼쳤다. (사진=한국 채식문화원 제공)
한국채식연합과 칭하이무상사 국제협회 등 각계 각층의 비건채식 단체 및 활동가들 500여명이 11월 1일 '세계 비건의 날'을 맞아 채식을 촉구하는 '비건기후행진'을 펼쳤다. (사진=한국 채식문화원 제공)

첫째. 루소의 일반의지는 공동선이자 동시에 우리가 공유하는 내면의 양심이다. 정부는 양심을 대변해야 하고 이 양심은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때론 저항권의 근원이 된다. <시민 불복종>과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정부를 노래한다. 정부는 국민이 자신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식에 지나지 않지만, 국민이 그것을 통해 행동하기 전에 정부 자체가 남용되거나 악용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먼저 양심적인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이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양심에 따른 행동과 책임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는 흑인 노예를 계속 용납하는 데다 영토확장을 위해 멕시코 전쟁까지 일으키는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그것으로 인해 수감된다.

둘째. 기후와 생물 다양성 등 지구 시스템의 안정은 지구상 다양한 생명체를 포함한 지구공동체의 공동선이다. 그런데 이 공동선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문명 전체에 대해 전 지구적 질문을 던지고 공동선을 되살리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은 기후 위기를 통해 존재의 모든 순간과 일상에서 매일 하는 모든 일들이 타인의 삶과 다른 생명체, 생태계와 지구의 영역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배우고 있다. 깨어난 아이들의 양심은 자신들이 멸종될지 모르는 지구공동체의 일원이자 원인 제공자임을 인식하고 있다. 공동선은 법이 정당화되는 근거다. 만약 현대의 법체계가 이러한 지구공동체의 공동선이란 목적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법의 부패이고 주권 국가로서의 정부가 남용되고 악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는 양심이 살아있는 인간과 지구 생명체들의 멸종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인류 사회와 각 나라는 연대와 협력을 통해 늦지 않게 인간 법체계를 ‘지구 중심적’으로 전환하고 ‘지구 공동체의 한 구성 종으로서 인류’의 존속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 즉 지구관리 체제와 소위 ‘지구 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지구 법의 세계 각 나라 사례들

다행히도 공동선에 근거해 동물권에서 나아가 지구공동체도 인간의 법률에 통합돼야 하는 근본적 권리가 있다는 개념이 빠르게 뿌리내리고 있다. 2008년 지구 생명권을 새로운 헌법에 통합시킨 에콰도르를 비롯해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한 독일 등 많은 나라들이 그 예다. 유엔 하모니 위드 네이처(Harmony with Nature)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34개 이상의 국가에서 자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2019년 3월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아마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앵무새의 권리를 인정했다. 같은 해 멕시코 대법원은 닭싸움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리며 ‘동물 학대와 불필요한 고통을 수반하는 어떤 관행도 헌법이 보호하는 문화적 관행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명시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기업에 법인격을 주듯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제도를 도입해 멸종위기종인 제주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조례 제정도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기후 위기 대응과도 맞물려 있다.

보신각에서 비건기후행진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생명존중과 탄소중립을 실천을 위해 정부의 식품 생산과 유통을 지원하는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
보신각에서 비건기후행진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생명존중과 탄소중립을 실천을 위해 정부의 식품 생산과 유통을 지원하는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한국 채식문화원 제공)

세계 과학자들의 기후 해법에서 비건 채식의 중요성

1979년과 2019년에 이어 3번째로 2021년 전 세계 153개국 1만3800명의 과학자들이 지구 시스템에 중요한 요소들이 임계점에 다다랐거나 이미 한계를 넘었다고 진단하고 그에 따른 긴급한 행동을 촉구했다. 세계 과학자들의 집단행동은 역사상 전례가 없고 그만큼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탄소 감축 예산을 고려하면 205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낮추려는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17%에 불과하기에 단기성 온실가스 감축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지구적 식습관 전환은 중요한 연결 고리다. 메탄의 주 배출원은 축산업이다. 비건 채식을 연결 고리로 메탄을 감축하면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 전환에 의미 있는 시간을 벌 뿐 아니라 토지·숲·바다의 온실가스 흡수원 재생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세계의 과학자들도 사실상 지속가능성의 선순환에 지구적 식습관 전환의 결정적 역할을 시사하고 있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생물종 멸종은 자연과 인간을 별개로 생각하는 우리의 세계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연을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도구와 자원으로만 여겨온 현대 문명이 인간과 자연의 근본적 연결을 끊어버리고 그 결과 자연은 물론 인간 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생활 방식만이 아니라 믿음 체계 전체를 바꿔야 한다.

지속가능성과 총체적 문화적 곤경의 ‘숨은 원인’

이제 더 이상 인간을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려놓고 자연과 생명을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도구와 자원으로만 여기는 인간중심의 세계관과 소비주의 문화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지속 가능하지도 못하고 인간 본성과 조화롭지도 않으며 인간 본성을 잘 표현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인간 본연의 연민과 인식을 억제하고 마비시키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든 세계관이다. 인간 본연의 연민과 인식에 대한 억압과 마비의 원천에 인간을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 놓는 현대의 육식 문화가 자리한다.

동물성 음식을 온전한 정신으로 바라보면 필연적으로 고통, 잔인함, 착취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길 거부한다. 우리가 매일 겪는 밥상에서 발생하는 회피와 부정의 관습은 인간 본연의 연민과 인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억압과 함께 우리의 사적 공적 영역에 광범위하게 스며든다. 그리고 사회의 암묵적 지원하에 지속적으로 강화돼 무의식적 그림자 및 집단적 죄의식을 형성한다. 동물을 식용으로 삼아 학대하는 행위는 단연코 우리 문화 최대의 그림자다. 이 그림자는 인간 동물 사회 등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 간의 유의미한 관계를 찾아내는 우리의 능력을 원천적으로 훼손하며 자연 세계에 생명을 주는 성스러운 힘을 향한 새로운 통찰도 불가능하게 한다. 점차 자신도 모르게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 황폐해진 생태계, 후손에 끼치는 고통과 단절하는 데도 익숙하게 된다.

더 심각한 것은 그림자의 투사다. 억압된 그림자는 언젠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알아채기 어려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우리가 먹는’ 폭력을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생태계 파괴, 소비지상주의, 여성 억압, 인종차별, 약물중독 등 적극적으로 투사를 통해 폭력을 행사하도록 조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배적 육식 문화로 인한 내적 억압과 마비야말로 오늘날 지속 불가능한 세계관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총체적 문화적 곤경의 배후이자 근본 원인인 셈이다. 아무도 이러한 숨은 인과관계를 알아차리거나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혹자는 얘기하면 코웃음 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을 구하기 위해 자연·생명과 우리의 원초적 연결을 의식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때다. 이러한 연결을 위해 영적 건강과 사회와의 조화를 위한 식사법은 필수이다. 비건 채식의 실천은 지구 평화와 지속 가능한 사회 그리고 우리의 인간성 회복과 자유를 위해 꼭 선행돼야 할 조건이다. 그것이 11월 1일 세계 비건의 날이 갖는 의미이다.


# 고용석
1994년, 환경·시민·종교단체가 총망라된 국내 최초의 국제 채식 심포지엄 ‘채식이 지구를 살립니다’와 미래진단 세미나 '퓨쳐비젼'을 비롯하여 3차례 세계를 연결하는 지구온난화 글로벌 컨퍼런스 등 창의적이고 선구적인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왔다. 세계 NGO대회와 유엔 사막화와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총회 등에 참여하며 방한 종교 및 환경 지도자들의 통역 일과 컬럼리스트와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채식관련 자문위원과 부산 식생활교육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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