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100년 내다보면서 곶자왈 차등 없이 모두 보전해야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오늘날 제주 사람치고 ‘곶자왈’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곶자왈’은 울창한 숲을 뜻하는 ‘곶’과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어이다. 한때 ‘곶자왈’은 ‘자왈’과 마찬가지로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어수선하게 된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개발 광풍이 불던 시기에 곶자왈은 골프장, 관광시설, 택지개발 등으로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곶자왈의 생태적, 지질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알려지면서 보전과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곶자왈은 빗물을 고스란히 받아서 제주섬의 청정 지하수를 만들어내는 공장이고,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의 공존지대로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명의 숲이며, 제주사람들이 나무를 하고 숯을 굽고 약용식물을 캐고 꿀벌을 치며 살아왔고, 4.3과 같은 위난의 시기에는 피신처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역사문화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여 제주특별자치도에는 곶자왈 지역의 자연 환경적 자원과 역사 문화적 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를 두고 있다. 조례에 따르면, 멸종위기야생동식물, 천연기념물, 보호야생식물, 희귀식물, 특산식물 등의 군락지와 서식지, 자연림과 고밀수림 등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 동굴, 숨골, 용암함몰지, 용암도랑, 튜뮬러스, 습지 등 ‘지질적으로 중요한 지역’, 농경유적, 수렵유적, 생활유적, 신앙유적 등 ‘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지역’ 등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곶자왈 지역을 세 등급으로 나눈다면, 보호지역만 보호하면 되고, 나머지 지역은 소홀 내지는 방치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곶자왈 보전과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곶자왈 지역을 세 등급으로 나눈다면, 보호지역만 보호하면 되고, 나머지 지역은 소홀 내지는 방치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곶자왈 보전과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곶자왈에 대한 연구는 지질 분야에서 시작되었지만, 추후 생태와 역사문화 분야에서도 연구가 이어지면서 곶자왈은 제주섬의 보물임이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곶자왈’은 울창한 숲인 ‘곶’과 중복된다는 점에서 인문분야와 공동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곶자왈이 뭐고,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곶자왈이라 할 것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곶자왈에 대한 정의와 경계를 정하는 것은 지질 분야만이 아니라, 생태, 역사, 문화, 인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학제적 연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올해 5월 제주특별자치도는 곶자왈을 재정의하고 경계를 설정하기 위해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을 제주도의회에 제출하였고, 이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도정과 도의회 간에 다소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쟁점들에 대한 논쟁은 좀더 진전된 조례 개정을 위해서는 다행스런 일이라 본다.

개정조례안에서 가장 큰 쟁점은 곶자왈의 정의 부분인 듯하다. 개정조례안 제2조(정의)에 따르면, ‘곶자왈’이란 ‘제주특별자치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으로서 곶자왈의 생성기원에 근거한 화산분화구에서 발원하여 연장성을 가진 암괴우세용암류와 이를 포함한 동일기원의 용암류 지역’을 말하며, 식생보전의 가치와 식생상태에 따라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보호지역, 보호지역에 준하는 지역으로서 앞으로 보전 가치가 있는 관리지역, 경작과 개발 등 인위적인 행위가 이루어진 원형훼손지역으로 나누고 있다.

하지만 도의원들은 심사과정에서 ‘곶자왈 보호지역을 보호지역, 관리지역, 원형훼손지역 등 3개로 세분화하는 법령 근거가 없고, 지역별 지정 기준이 구체적이고 명확하지 않아서 상위법과 충돌되며, 곶자왈 보호지역 설정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없어서 논란 끝에 상정 보류’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도정에서는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상태’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결론이 날 것이다.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은 지난 1월 입법예고 되어, 의견 수렴을 거친 바 있지만 여전히 곶자왈의 정의와 경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선 곶자왈의 정의는 상위법인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354조에 ‘제주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이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도 그 정의를 따르고 있다. 곶자왈의 정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개정조례안에서는 위의 정의에 ‘~으로서 곶자왈의 생성기원에 근거한 화산분화구에서 발원하여 연장성을 가진 암괴우세용암류와 이를 포함한 동일기원의 용암류 지역’이라는 부분을 추가하고 있다. 곶자왈 정의를 하면서 지질적 측면만 강조하다보니 일반인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되고 말았다. 이는 곶자왈의 생태적, 역사문화적 부분을 도외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곶자왈의 범위를 축소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곶자왈의 정의는 신중해야 한다. 예전에 곶자왈을 아아용암(곶자왈용암) 지대로 국한시킴으로써 파호이호이용암(빌레용암) 지대인 선흘곶자왈(동백동산)은 곶자왈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던 적도 있다. 그 후 곶자왈을 용암 종류에 상관없이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 정의하였고, 그에 따라 곶자왈 면적은 제주섬 전체의 6%(113.2㎢)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개정조례안처럼 곶자왈을 재정의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곶자왈 범위가 축소됨으로써 곶자왈의 보전과 관리 정책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곶자왈 보호지역을 보호지역, 관리지역, 원형훼손지역 등 3개로 차등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한다. 곶자왈 지역을 세 등급으로 나눈다면, 보호지역만 보호하면 되고, 나머지 지역은 소홀 내지는 방치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곶자왈 보전과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곶자왈은 차등을 두지 말고 모두 보전해야 한다. 다만 원형훼손지역, 즉 곶자왈 지역 가운데 기개발 사업지, 취락지, 경작지, 목초지 등은 지하수 오염 등에 민감한 지역이므로 특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30년, 100년을 내다보면서 제주의 숲을 관리해야 한다. 소유주들의 반발로 곶자왈 범위를 더 늘리는 것은 어렵지만, 좁히는 것은 쉽다. 당장 재정이 어렵다고 현재 받아들여지던 곶자왈의 범위를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개정조례안의 새로운 곶자왈 정의에 따를 경우,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운영하는 지리정보시스템(GIS)상 곶자왈 분포지역 가운데도 상당 부분이 곶자왈에서 제외된다.

우리가 조례를 개정해야 하는 이유는 제주의 대표 숲 지대인 곶자왈을 더욱 잘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 곶자왈은 토지이용 측면에서 활용 가치가 떨어지지만, 식생의 다양성과 지하수 함양 기능이 뛰어나고, 제주인의 삶 속에서 문화 역사적으로 인문학적 가치들이 있으며,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곶자왈의 새로운 가치들이 발견되고 있어서 잘 보전해야 한다.

예로부터 제주섬은 비 피해, 가뭄 피해, 바람 피해가 심한 삼재(三災)의 땅이었다. 곶자왈은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넘치지 않고,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삼재에서 벗어난 땅이었다. 살아있는 자연인 곶자왈(Gotjawal)은 신이 우리 제주인에게 준 보물(God jewel)이다. 제주도정과 도의회에 행정편의나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으로 제주섬의 자연과 곶자왈을 잘 보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좀더 진전된 개정조례안을 마련해주길 당부드린다. / 윤용택 논설위원, 제주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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