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작가 손민석, 장편 소설 ‘들개의 숲’ 발간

제주 작가 손민석은 최근 장편 소설 ‘들개의 숲’(한그루)을 발간했다.

이 책은 인간에 의해 버려진 개, 일명 들개를 주인공으로 한다. 주인공 격인 ‘밭’은 노루 사냥으로 무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는 숲이 내어준 만큼,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 그에 대항하는 ‘곰’의 무리는 다소 폭력적이고 욕망에 물들어 있다. 인간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은 모든 들개에게 마찬가지인 듯하지만, 이들은 반감을 넘어서 복수를, 전복을 꾀한다. 어느 날, 소중한 가족을 잃게 된 ‘밭’은 분노에 찬 채 인간의 공간으로 들어가 “우리에게 왜 그런 거냐!”고 묻는다. 

출판사는 “사람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사연 많고 상처 많은 개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이 ‘생명’과 ‘자연’이라는 세계 안에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고 소개했다.

며칠 뒤 아버지는 맞아 죽었다. 대문을 나와 마을 어귀에 다다르기 전에 큰 팽나무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거기에 거꾸로 매달려 동네 남자들에게 매질을 당했다. 사실 아버지가 죽고 매를 맞은 것인지 매를 맞아 죽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차이가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동네 남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참 동안 그 거대한 몸뚱이를 쳐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벌건 해가 돌담 끝에 걸릴 때쯤, 아버지는 온몸이 녹아서 집에 돌아왔다. 너무 더운 날이라서 나는 마루 아래 깊숙이 들어앉아 조각조각 파편이 된 아버지가 자기 얼굴보다 더 검은 솥 안에 들어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 ‘들개의 숲’ 14쪽에서


복수라는 단어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개들이 어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한 인간이야 우리 개들보다 약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무리를 지어 산다. 그것도 우리보다 훨씬 큰 무리를 이루고 있다. 나는 곰이 듣기 좋은 구실로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했다. 허풍과 거짓은 구체화하기 어려우므로 나는 녀석의 계획을 묻기로 했다. 
“어떻게 복수를 한다는 거지? 계획이 있나?” 
“물론이지. 일단 흩어져 있는 개들을 모두 모아서 큰 무리를 이룰 거다. 그리고 산 아래로 내려가서 인간들의 우두머리를 찾아 결판을 낼 참이다. 그런 다음 잡혀간 개들이 있는 곳을 습격해서 그들을 해방하고 힘을 합쳐서 이 땅에서 인간들을 모두 몰아내고 개들의 세상을 여는 것이다.” 
- ‘들개의 숲’ 206쪽에서

저자는 스스로를 ‘제주에서 아내와 함께 백구를 데리고 산다. 걷고 글 쓰고 밥하고 이것저것 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키우는 9살 애완견 말리가 소설의 계기가 됐다고 소개하면서, “인간들이 버린 개들이 들개가 돼 한라산이라는 경계 끝에 몰려드는 중이다. 75년 전, 곶자왈 구덩이에서 포개진 채로 있었던 사람들도 결국 인간들에게 쫓겨갔던 것처럼 말이다. 경계에 내몰린 존재들을 통해 산과 섬이 품은 비극을 기억해 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들개의 숲’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발간됐다.

271쪽, 한그루,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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