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결성 15주년 사우스카니발 리더 강경환
“내년에 갈고 닦은 새 앨범 들고 일본으로 진출”

15일 [제주의소리]와 만난 사우스카니발의 리더 강경환.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15일 [제주의소리]와 만난 사우스카니발의 리더 강경환.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서울도, 부산도 아닌 ‘제주’에서 하나의 이름을 달고 15년 간 활동해온 흔치 않은 밴드가 있다. 제주 밴드 ‘사우스카니발’이 올해로 결성 15주년을 맞는다. 2008년 서귀포 소극장 ‘기오타’에서 도원결의를 맺은 당찬 청년들은 어느새 제법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40대가 됐다. 

15일 [제주의소리]와 만난 사우스카니발의 리더 강경환(43)은 밴드가 15년 간 이어오면서 탈퇴한 멤버만 26명에 달한다며, 녹록치 않은 과정임을 강조했다. 특히 자신에 대한 “나쁜 형 이미지”를 인정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진지하면서 솔직한 자존심만큼은 타협하지 않고 지켜왔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30일 발매한 따끈따끈한 새 싱글 앨범 ‘이어도 사나’는 제주의 옛 노동요를 소재 삼아 제주 전통악기와 아프로비트(Afrobeat)를 접목시킨 노래다. 강경환은 “소리부터 의상까지 1970년대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흥미로운 과정을 들려줬다.

덕분에 ‘이어도 사나’는 동영상 SNS 플랫폼인 인스타그램 릴스(Reels)에서 총 조회수 100만회를 기록하는 등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경환은 “코로나19 유행하는 2년여 동안 소리를 연구하면서 만든 작품이 바로 이번 앨범”이라면서 “내년 일본으로 진출해 세계를 목표 삼아 활동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무엇보다 “쿠바 사람들이 ‘우리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있다’고 자랑하듯이, 제주 사람들이 ‘우리는 사우스카니발이 있다’고 자랑할 수 있게 40년 동안 활동하겠다”는 당찬 소감을 전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2008년 서귀포에서 결성해 올해로 밴드 활동 15주년을 맞는다. 제주 대중음악계로 봐도 그 이상으로 봐도 대단한 저력이다. 우여곡절도 많았을 텐데 하나의 이름으로 15년간 이어온 비결은 뭐라고 보나? 

A. 밴드 결성 후 4년간 정산을 하지 않고, 악기와 공간에 모두 재투자했다. 15년 동안 교체한 멤버 숫자를 세보니 26명이다. 멤버가 교체된 이유는 각자의 사정도 있지만 내가 강단 있게 밀어붙이면서 생기는 불만도 솔직히 있었다. 단체를 유지하기 위한 내 나름의 철학과 기준은 ‘리더가 아닌 보스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힘들 수도 있지만, 15년이 아닌 40년 이상을 바라보며 쉬지 않고 활동하는 밴드가 되려면 이게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턱 없이 부족한 금액에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공연 날에 일정이 되냐 안되냐, 금액이 적은데 해야 되느냐 말아야 하느냐 보통은 멤버들과 상의를 하겠지만, 이런 판단을 저는 혼자 밀어붙인다. 내가 공연을 하는 기준은 의미, 재미, 페이(Pay) 가운데 하나라도 있으면 한다. 그래서 제주도 음악 판에서 내가 ‘센 형, 나쁜 형’ 이미지가 있다. 월급이 나오지 않는 민간 음악 단체를 끌고 오려면 그런 강단이 있어야 했고 또 생기기더라. 어쩌면 독재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Q. 그렇게 비춰질 수 있음에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인맥 뮤지션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이렇게 다양한 대중음악 장르를 가진 지역은 서울 다음이 제주다. 젠 얼론, 바나나문 등 잘하는 팀들이 많다. 그런데 왜 잘 안됐을지, 이유를 고민해보니 서로 얽혀있어서 비판하지 못한다. 작품이 좋지 않아도 서로 서로 좋아요 해주는데, 이게 과연 서로에게 진짜 도움이 될까 싶었다. 친할수록 우리끼리는 더 지적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처받고 떠나더라. 나는 이게 소신이다. 가까울수록 질책할 수 있어야 한다. 칭찬도 인색, 질책도 인색, 서로 계산하듯 대하는게 아니라 예술인끼리 진심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Q. 2012년 첫 앨범을 보면 ‘스카밴드’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왔다. 사우스카니발의 음악은 어떤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스카 장르에 제주 소재-이야기를 접목한 이유가 있다면?

A. 20대 시절에 5년간 록 밴드를 했는데 잘 안됐다. 페이가 있는 행사를 5년 간 딱 한 번 했다. 앨범도 당연히 잘 안됐다. 왜 안됐을까 객관적으로 고민해봤는데,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록은 저항의 음악이었는데, 난 솔직히 생활에 큰 불만이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웃음) 록은 나에게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 제주라는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인 점을 고려할 때 지배했던 지역의 음악보다는 지배당했던 지역의 음악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남미 음악을 알게 됐다. 쿠바, 자메이카 등이다.

유럽 강대국에 지배당했고, 노예로 온 사람들이 음악적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특유의 아프리카 리듬감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핍박 속에 흥을 간직한 문화. 여러모로 제주와 겹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주 아이들도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나가면 그 안에서 눈치 보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경쟁하지 않나. 온화하고 따뜻한 날씨와 기후가 반영된 성격, 탐라국과 4.3이라는 역사. 여러 모로 중남미와 비슷하다고 느꼈고 살펴보니 정서 역시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현란하면서 정박자가 아닌 느긋한 음악. 힘들지만 서로 위로해주면서 나름 소소하게 만족도 하고. 그렇게 나의 음악적 방향은 장르가 아닌 피지배 민족 음악으로 정했다.

사우스카니발의 최신 싱글 앨범 '이어도 사나' / 사진=바이브
사우스카니발의 최신 싱글 앨범 '이어도 사나' / 사진=바이브

Q. 지난 5월 싱글 ‘업사이클’ 이후 5개월여 만에 선보이는 새 앨범이다. 제주다움이 어느 때 보다 물씬 풍기는데 SNS에서 반응이 상당히 뜨겁다. ‘이어도 사나’가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새 앨범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A. ‘업사이클’ 앨범 때는 우리 멤버들 모두 진심을 담아 제작하면서 기대를 많이 했다. 우리 멤버들은 바다를 모두 좋아해서 스쿠버다이빙 자격까지 받았다. 그때 느낀 점이 바다를 망가뜨리는 건 플라스틱 아닌 어업 폐기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폐기물을 철거하기 위해 비영리단체도 만들면서 그물, 닻을 제거하는 작업을 그대로 찍어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해양 오염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겠다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놀랍게도 관심이 없었다. 앨범 수익도 마찬가지. 생각과 다른 현실을 느끼고 이번에는 제주적인 것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이어도 사나’는 제주어 노래를 떠나서 ‘날 것의 사운드’, ‘제주적인 리듬’, ‘제주 전통 악기들의 자유로운 접목’ 등을 시도한 앨범이다. 신기하게도 앨범 출시 이후 인스타그램 릴스에 ‘이어도 사나’와 ‘고싸 고라시녜 설룬 애기야’ 두 곡의 조회수가 합쳐 100만회를 넘겼다. 제주도 인구보다 많다. 소속사도 놀랐다. 날 것, 어떠면 도태됐다고 평가하는 옛 사운드가 오히려 힙하다는 반응이 왔다. 사실 소속사는 이 앨범에 반대가 많았다. 이번에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으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는데, 소속사는 좋은 기회인만큼 보다 대중적인 다른 곡으로 촬영하자는 입장이었다. 첫 앨범의 ‘몬딱 도르락’처럼 아기자기하고 신나는 노래를 제안했다. 그런데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사업 ‘사운드브릿지’의 일환으로 일본 도쿄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이어도 사나’를 부르니 관객들 모두 떼창을 불렀다. 경험상, 도쿄 리스너(listener, 음악 애호가)들은 직접 듣고 좋다고 느껴야 반응을 한다. 일본에서 ‘이어도 사나’는 처음 소개했는데, 떼창 반응을 보고 놀라면서 ‘이 곡은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소속사 대표에게 우리의 색깔대로 가도 된다고 설득해서 뮤직비디오를 지금처럼 정했다. ‘이어도 사나’는 제작 과정도 옛날 방식을 사용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지원을 받아서 단독 콘서트를 포기하며 LP를 제작했고, 믹싱도 옛날 방식으로 디지털이 아니라 릴 테이프로 녹음했다. 디지털은 실수하면 얼마든지 재녹음이 가능하지만, 릴 테이프는 잘라야 한다. 그리고 미국 휴스턴에 있는 스튜디오로 곡을 보내 마스터링 작업도 진행했으며, 의상도 1970년대 느낌으로 새로 맞췄다. 비용도 상당히 들었다. 알고 보니 뮤직비디오 촬영 스탭이 지금 국내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미스터트롯 촬영팀이라고 하더라. 모든 부분에서 많은 도움이 있었고 잘 맞으면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정말 만족한다. 

내가 노를 저으면서 이어도 사나를 부른 세대가 아니기에 노래 ‘이어도 사나’에 대한 감정적인 확신은 많지 않다. 다만 ‘고싸 고라시녜 설룬 애기야’는 우리 주변, 제주 남자들 이야기다. 나를 포함해 서귀포 친구들, 15년 동안 손발을 맞춘 고부장 ‘고경현’ 같은 제주 남자들 대부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큰 걱정도 없고 열심히 살려고도 안한다. 어차피 귤밭 물려받으면 되고, 또 그대로 물려주면 되니까. 공장도 없고, 회사도 없으니 전투적으로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또 나름대로의 고충과 고민, 답답함도 가지고 있다. 이런 심정을 ‘고싸 고라시녜 설룬 애기야’에 담았다.

코로나19가 유행한 2년 반 동안 솔직히 다른 뮤지션들에게 질타를 좀 받았다. 우리는 음악을 안 해도 사지 멀쩡하니 괜찮지만, 동문시장에 나물 파는 할머니들이 더 어렵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행사 뛰기에 바빴지 작품에 전념하는 노력은 없었다는 반성과 함께, 코로나 터지고 나서 놀지말고 연구하면서 노래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번 앨범 ‘이어도 사나’를 만들었다.

사우스카니발의 노래 '이어도 사나'(맨 왼쪽)가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7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  / 사진=릴스 갈무리
사우스카니발의 노래 '이어도 사나'(맨 왼쪽)가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7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 / 사진=릴스 갈무리

Q. 최근 제주어가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면서 재조명 받고 있다. 사우스카니발은 일찌감치 15년 전부터 시작한 셈인데, 사우스카니발의 활동이 제주어 살리기에 나름 기여를 했다고 보는지?

A.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이 나는 들국화보단 크라잉넛을 더 리스펙(respect, 존경)한다. 들국화는 전성기 때 한참 활동하다가 멈추고 최근에 재결합했다. 그런데 크라잉넛은 거의 3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밑바닥부터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계속해서 소신을 가지고 활동했다. 크라잉넛이 올해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받는 소식을 듣고 뭔가 뭉클했다. 돈이 되느냐, 남는 게 있느냐 이런 것을 다 떠나서 아티스트라면 소신 있게 가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제주어 관련해서도 ‘몬딱 도르락’을 발표할 때 얻은 인기나 반응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제주어를 지키기 위해 뚜럼브라더스, 양정원 형님 같은 분들이 사우스카니발 이전부터 제주어로 노래를 만들고 활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에도 뭔가가 딱 맞아 떨어졌다. 제주도교육청 차원에서 모든 학교에 제주어 교육을 지시했는데, 2012년, 2013년 이때는 제주어 교육 자료가 마땅히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당황하면서 우리 뮤직비디오를 학교에서 틀기 시작했고 지역 사회에서 이슈가 됐다. 마치 지금 ‘이어도 사나’ 반응과 똑같았다. 2013년 앨범 발매에서 딱 10년이 지났는데, 똑같이 제주어 노래 콘텐츠로 화제가 되는 것을 보니, 저희가 잘했다기 보다는 제주어 콘텐츠가 그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제주 안에서 우리만 살리려고 보존하려고 했지 제주 밖으로 널리 알리기 위한 작업은 한계가 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2015년 쿠바를 방문했다. 이어도 사나, 오돌또기, 아리랑 등을 잔뜩 준비해서 공연했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전략을 바꿔서 그들의 음악을 하니까 거리가 꽉 찰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동양인이 어설프게 자기들의 음악을 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본 것 같다. 특히 그들에게 아리랑 같은 음악을 선곡했는데, 따라 부르고 연주도 즉석에서 함께 하면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때 느꼈다. 다른 문화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우리 문화를 알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모스크바, 하와이 등 다른 지역에서 공연을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로 느꼈다. 모든 지역, 국가는 우리 것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번 ‘이어도 사나’는 서양음악이 80%, 우리 제주 것을 20% 정도로 맞춰서 만들어봤다. 전 세계와 공감하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말테우리 음악을 꼭 만들고 싶다. 말테우리가 소리를 내자 말들이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은 흡사 주술과도 같았다. 소리의 힘을 느꼈다. 언젠가는 단순히 말장난 같은 제주어가 아닌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사우스카니발의 리더 강경환.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사우스카니발의 리더 강경환.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목표, 바람이 있다면?

A. 새 앨범은 일본에서도 발매한다. 2020년 공들여서 제작한 ‘Cloud9’ 앨범은 일본에서 싹 묻혔는데, 2021년 ‘가지맙서’는 현지에서 주목해야 할 케이팝 순위에도 오를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가지맙서’는 1990년대 R&B 그룹 ‘솔리드’ 감성을 담았는데, 일본에는 시티팝 장르의 향수가 있어서 잘 맞았던 것 같다. ‘이어도 사나’는 도쿄 공연을 통해서 반응을 확인한 만큼 앨범 발매와 함께 현지 활동도 해보려 한다. 2013년 전후로 앨범을 내겠다고 제주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을 찾아가 문의하고 요청해도 반응이 없다가 EBS 헬로루키에 선정되니 전화가 불이 났다. 도청에서도 재단에서도 연락 와서 ‘그동안 왜 찾아오지 않았냐’고 말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네 심방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속담은 지금도 그대로다. 제주에서 열린 큰 페스티벌에서 우리를 섭외하면서, 같은 소속사 밴드도 함께 섭외했는데 섭외비를 다르게 속여서 주더라. 제주 안에서 오히려 제주팀을 낮게 본다. 그러면 반대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방법이다.

사우스카니발의 앞으로 15년 목표는 미국 그래미 어워즈 월드뮤직에 노미네이트 되는 것이다. 일단 들어보시라. 우선 일본 시장에서 3년 동안 자비를 들여 클럽을 돌면서 활동한다. 고베, 오사카를 거쳐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인 후지락페스티벌에 선다. 그 다음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동남아, 터키,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갈 것이다. 물론 목표가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린 계속해서 달리기 위해 채찍질 할 것이다. 그렇게 쌓다보면 경험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겠나. 한번 빡 떴다가 없어지기 보다는 파고드는 돈키호테 같은 아티스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음원을 가장 많이 판 록스타가 아닌 쿠바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처럼, 자메이카의 스카탈라이츠(The Skatalites)처럼 40년 동안 활동할 것이다. 

쿠바 사람들은 ‘우리에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있다’는 문화적 자부심이 매우 높더라. 제주에는 무엇이 있을까. 감귤, 돌하르방 말고 문화적 자부심은 무엇이 있을까. 지금은 안 되겠지만, 제주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사우스카니발이 있다’고 말하게 만들고 싶다. 분명히 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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