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52) 내 땅 까마귀는 검어도 아깝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고향이 그리우니 검은 까마귀도 아까울 수밖에. 정겨우니까 그런다. / 사진=픽사베이
고향이 그리우니 검은 까마귀도 아까울 수밖에. 정겨우니까 그런다. / 사진=픽사베이

까마귀는 날짐승 가운데 그 빛이 유난히도 검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기 일쑤다. 온몸을 덮고 있는 깃털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로부터 부리(주둥이), 눈, 다리며 발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새까맣다. 숯덩이 같다.

흰 점이 있거나 고운 무늬 같은 게 전혀 없는 완벽한 검정빛 일색이다.

현란한 색을 뽐내는 팔색조가 아니더라도, 공원에서 사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지내는 비둘기만 해도 몸 전체에 은은한 빛깔이 감돌고 알록달록한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니 다른 새들에 비하면 까마귀는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흉물이나 다름없는 한낱 날짐승에 지나지 않다.

그런데도 그 까마귀가 고향에서 날아온 것이라 하면 사정이 싹 달라진다. ‘고향 까마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말 속의 까마귀는 고향 사람이거나 고향 풍물의 비유다. 타향에서 향수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어 마음이 고향에 가 있다. 어머니처럼 그리운 것이 고향 아닌가.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몇 번 보던 고향 사람을 먼발치에서 보이기만 해도 긴가민가하다가 “그 아랫동네 사는 김 형 아니오?”하고 한걸음에 달려가 껴안는다. 

‘내 땅 까마귀’라서 그런다.

‘내 땅 까마귄 검어도 아깝나’

타향에 사는 시람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착 속에 산다. 고향이 그리우니 검은 까마귀도 아까울 수밖에. 정겨우니까 그런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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