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46) 학교에서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 2

글을 쓰다 보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그런데 가끔 꺼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이번 글을 고민하면서 그랬다. 위험한 노동, 힘든 노동, 차별받는 노동…. 너무 많은 불합리한 조건들 가운데 무엇부터 풀어내야 할지 순서를 잡기 힘들었지만, 우선 변덕스러운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2023년은 기후위기를 세계 모든 나라 시민들이 체감하기 시작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길고 무더운 여름이 이어지더니 느닷없이 한파가 몰아치는 한국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위로를 해야 할 정도로 지구촌 곳곳에서 들리는 기후 재난 소식들은 처참하다. 올해 한국에서는 폭염, 폭우, 가뭄, 한파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이 이어지면서 농민들의 한숨은 늘어만 간다. 얼마 전 구좌에서 만난 한 농민은 뜨거운 날씨 탓에 올해 당근 농사를 망쳤다며 푸념을 했다. 그래도 먹어보라며 휘어진 당근을 건네주는데 미안하고 고마웠다. 

극단으로 치 닿는 날씨에 더욱 힘들어지는 노동들이 있다. 건설 현장에서 야외 작업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부터 폭염과 폭우, 추위를 뚫고도 배달해야 하는 택배기사나 라이더 노동자들, 물론 농민들과 어민들도 빠지지 않는다. 학교 급식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정도로 힘든 노동 환경에 놓여있다. 뜨거운 날씨에도 에어컨 없이 불 앞에서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뜨거운 스팀이 나오는 식기 세척기와 제대로 환기되지 않는 공간에서 시간에 쫓기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 

학교 급식실에서부터 성 평등 교육이 이뤄지고 노동 현실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희생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당연시하며 우리 사회를 굴러가게 할 수는 없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학교 급식실에서부터 성 평등 교육이 이뤄지고 노동 현실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희생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당연시하며 우리 사회를 굴러가게 할 수는 없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무겁고 무섭고 위험하고 힘든 노동 환경에 엄격한 위생 규칙까지 더해져 스트레스 강도는 높아진다. 힘든 노동에 비하면 보수는 형편없다. 그나마 무기계약직이라는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장점도 학생들의 방학에는 강제로 쉬어야 한다. 학교에서 일하면 기다려지는 방학이 이들에게만은 힘든 시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청 누리집에선 수시로 올라오는 급식노동자 구인 공고를 보게 된다. 정해진 조리사와 조리실무사 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이유는 무기계약직, 교육공무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옷이기 때문일 것이다. 급식노동자의 폐암 발병이 산재로 인정되면서 환기 시설이나 조리 시설에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손가락 절단 사고로 음식물 처리기가 바뀌고 있지만, 수백에서 수천 명의 밥을 하는 일은 그대로이고, 근골격계 질환은 심각한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이들의 노동에는 법이라는 허들까지 더해져 있다. 이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조항은 찾아볼 수 없는 학교급식법에는 지켜야 할 규정이 너무 많다. 학교급식법의 수십 가지나 되는 위생·안전위생관리기준 가운데 한 가지만 살펴보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급식시설에서 조리한 식품은 조리 후 2시간 이내에 배식을 마쳐야 한다.”

2시간 이내에 조리한 식품만 배식하려면 급식 인원이 많은 경우 배식과 급식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셈이다. 힘든 노동에 열악한 임금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지만, 내년 예산이 줄었다는 이유로 이들의 임금은 거의 동결수준이다. 주변 음식점의 구인광고를 보면 월 300만원이 기본이지만, 조리실무사들은 2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왜 이렇게 열악할까?

돌봄은 역사적으로 ‘여성성’과 연관되어 평가절하 되었고, 가정이라는 영역과 재생산이라는 여성의 중심적 역할과 묶여 여성의 일로 여겨졌다. 가족의 공간과 가사를 생산이 아닌 재생산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 돌봄 노동이 시장에 의해 더욱 쉽게 착취당하게 하는 요인이다. 

‘돌봄노동’(니케북스)에서 지적한 대로 마치 여성에게 적합한 노동으로 ‘합리적 노동분업’인 것처럼 규정해버린 돌봄 노동은 무급 노동으로 여겨진다. 맞벌이로 함께 일해도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성들은 ‘이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학교급식 덕분에 밥하는 노동에서 가정의 여성 노동은 줄어들었지만, 학교현장으로 옮겨간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노동이고 차별받아도 되는 노동이 된다. 저임금 돌봄 노동이든 여성의 무임금 가사노동에 계속 의존하는 것이든 착취는 마찬가지다. 

다시 학교 급식노동에 대해 고민해보자.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 쉐프들은 남성이고, 이들의 노동은 예술적인 작업처럼 비춰지는 반면, 조리실무사(대부분 여성)들이 학교에서 하는 요리는 가사노동의 연장에 불과하다. 왜 조리실무사들은 쉐프로 불리지 못하고, 학교에서 진로 탐색을 할 때도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K-급식’이라며 칭송하는 한국의 학교급식 정착은 저임금 고강도 여성 노동 덕분이다. 

학교현장에서 드러나지 않는 이들을 통해 아이들은 세상을 본다. 성별 분업이라는 말로 차별은 정당화될 수 없다. 힘든 노동은 힘센 사람이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학교 급식실에서부터 성 평등 교육이 이뤄지고 노동 현실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희생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당연시하며 우리 사회를 굴러가게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학교에서 차별을 당연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학교급식 노동자의 노동조건 현실화는 성 평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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