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학부모아카데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양신영 책임연구원 초청 강연
“학교가 한글 책임, 선행학습은 잠재력 훼손, 부모와 잘 지내야 공부 잘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성적이 뒤처지지 않을까요?”
“5세부터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효과적이라고 광고 하던데요?”
“주변에서는 학원에 학습지에 스마트기기에 난리인데 괜찮을까요? 불안해요.”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 마련이다. 예비 초등학생 학부모의 현명한 선택을 위한 강연이 제주에서 열렸다. “초등학생 입학 앞둔 자녀에게 필요한 건 선행학습이 아니라 상호 교감하며 소통하는 부모”라는 조언이다.

제주도교육청 민간위탁 사업으로 [제주의소리]가 주관한 ‘2023 학부모아카데미’가 23일 오전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열렸다. 예비 초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강연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양신영 책임연구원을 초청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국내 최초 사교육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2008년 출범한 시민단체다. 

양신영 연구원은 현 시점을 기준으로 누리과정(어린이집·유치원)과 초등교육과정을 비교하면서 초등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또한 선행학습의 위험성, 자기주도학습의 조건 그리고 꼭 필요한 초등 입학 준비를 소개했다.

 [제주의소리]가 주관한 ‘2023 학부모아카데미’가 23일 오전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열렸다. 예비 초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강연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양신영 책임연구원을 초청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가 주관한 ‘2023 학부모아카데미’가 23일 오전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열렸다. 예비 초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강연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양신영 책임연구원을 초청했다.  ⓒ제주의소리

먼저 학교 보낸 옆집 말을 100% 믿어선 안되는 합리적 근거

일단 양신영 연구원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간의 관계에 대해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치원을 초등학교의 하위 단계, 준비 단계로 여기기보다는 ‘교육의 연속선상’으로 바라보는 게 합당하는 것.

이런 주장은 누리과정과 초등교육과정에서 과목마다 설정한 목표를 봐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리과정에서 의사소통 영역을 배울 때는 ▲관심있게 듣는다 ▲적절한 단어를 사용 ▲바른 태도로 듣고 말한다 ▲고운말을 사용 등으로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초등1·2학년 국어 과목을 보면 ▲집중하며 듣는다 ▲상황에 어울리는 ▲바른 자세로 자신있게 말한다 ▲바르고 고운말을 사용 등의 ‘성취기준’을 제시한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내용과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이 사실상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양신영 연구원은 “교육계에서 성취기준이란 학습의 결과로서 학습 후 학생들이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다. 부모는 자녀가 조금 느리더라도 반드시 성취기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장을 지켜봐야 한다. 학교에서는 90%의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성취기준을 달성한다. 10%는 경계성 지능이거나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같은 특별한 경우”라면서 지나치게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불안감을 덜어도 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교육부는 2017년부터 ‘한글책임교육’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한글을 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정규 수업 과정 안에서 한글을 책임지겠다는 정책이다.

한글책임교육이 도입되면서 초등학교 한글 교육 수업시간은 27시간에서 68시간으로 늘어났으며, 내년(2024년)부터 도입되는 2022 교육과정에서는 34시간이 더 늘어난다. 초등학교 오기 전에 한글을 떼야 한다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자녀가 다른 교육과정으로 배운 주변 엄마들의 조언을 100% 신뢰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초 다른 교과서, 다른 교육과정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양신영 책임연구원. ⓒ제주의소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양신영 책임연구원. ⓒ제주의소리

“초등학교는 앞질러가기 보다 제 시기에 배우는 것 충실히”

양신영 연구원은 2009년 교육과정으로 만든 교과서, 그 다음 단계인 2015년 교육과정으로 만든 교과서를 직접 비교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국어, 수학, 영어 등 주요 과목 교과서는 문장이 줄어들고 그림과 기호가 대폭 늘어났다. 학교에서 한글 기초를 배우는 만큼, 다른 과목 역시 그에 발맞추는 ‘학생 친화적’으로 바뀐 셈이다.

양신영 연구원은 국어 과목에 대해 “지금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는 바르게 쓰는 자세, 연필 잡는 자세부터 차근차근 배운다. 한글을 떼지 않아도 된다”면서 “나중에 학교에서 보내는 과제 연습지를 통해 글씨 쓰는 연습으로 악력을 키우고 더 예쁘게 써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수학 과목은 “곱셈 같은 경우, 성취기준 시기가 2학년 2학기다. 그 말은 2학년 2학기가 끝날 때 학생들이 알 수 있게 진행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2년, 3년 전에 미리 해야 한다고 부담 느낄 필요 없다. 가정에서 붙여 놓은 곱셈 설명판도 불필요하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학교과서, 수학익힘책, 복습, 필요하다면 부담스럽지 않은 문제집만 해도 정말 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놀이로 자연스럽게 익혀보자. 예를 들어 붕어빵 장사를 하며 주고 받고, 퍼즐을 맞추는 식으로 수, 연산, 도형 개념을 익히는 셈이다. 물론, 모든 일상에서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질려버리니 주의하자”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배움 시기는 앞질러가기 보다는 제 시기에 배울 수 있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어 과목은 사교육 시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결정적 시기’가 설득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신영 연구원은 “결정적 시기 가설을 연구할 때 대상자는 대부분 미국 이민자였다. 우리나라는 일상에서 거의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조건이기에, 몇 살 때 영어를 처음 배웠는지가 영어 능력을 결정 짓지 않는다. 영어에 노출되는 질적 환경과 절대적인 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정적 시기 대신 민감한 시기가 있고 그것도 여러 번이 있다고 봐야 한다. 20대 이후에 영어를 배워도 잘 할 수 있다는 가설이 더 힘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어 유치원에 대해서는 ▲학습 노동 수준인 수업시간 ▲정서 발달 저해, 학습 거부 등 부작용 ▲지나치게 높은 수업료 ▲강사 허위경력 문제 등의 문제를 들었다.  

조기교육의 부작용에 대한 통계 자료. ⓒ제주의소리
조기교육의 부작용에 대한 통계 자료. ⓒ제주의소리

자녀가 공부 잘하고 싶다고? 부모와의 관계부터 돌아봐야

양신영 연구원은 많은 부모들이 시도하는 선행학습의 위험성을 신신당부했다. 비고츠키 근접발달영역 이론을 예로 들면서 “선행학습은 자기주도적으로 스스로 동기를 느끼는 활동이 아닌, 타인주도적이면서 바깥 동기에 의한 인위적인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선행학습은 발달되지 않은 두뇌기능을 억지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오랜 시간 진행한 추적 연구에서도 적기에 배운 아이가 학교 생활을 더 재미있게 하면서 성적도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다고 결코 방치가 아니다.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고 경고했다.

“어릴 때부터 물을 따르면 더 빨리 물이 차서 수능 볼 때면 물이 가득차 대학입시에 성공한다”는 일각의 논리에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양신영 연구원은 “물이 차는 속도가 쭉 변함없다면 그 가설은 맞다. 하지만 물을 채우다가 공부가 질리거나 부모 사이가 틀어지면 정말 중요한 시기에 물을 채우지 않기도 한다”면서 “자녀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선행학습이 아니다. 내재적 학습 동기가 높고 공부를 즐겁게 하는 아이들이 잠재력이 높다. 그 바탕은 바로 부모와의 관계다. 자녀가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받으려면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밑바탕은 가정과 부모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조기교육에 대한 통계 조사 자료. ⓒ제주의소리
조기교육에 대한 통계 조사 자료. ⓒ제주의소리

선행학습이 아닌 ‘진짜’ 초등학교 입학 준비는?

양신영 연구원은 현장 교사들에게 검증받은 초등학교 입학 준비를 소개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저학년 때는 학업보다는 생활 습관’이다.

▲제 시간에 기상해 등교하기 ▲가방 제 자리 놓기 ▲내 물건을 얼마나 잘 챙기는 지 ▲연필 잡는 자세 ▲편식하지 않기 ▲숟가락, 젓가락 치우기 ▲화장실 사용법 ▲자기 의견 말로 표현하기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부터 신경쓰라고 조언했다.

특히 “자신이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할 일을 정해주자. 알림장 직접 꺼내기, 가방 싸기, 일기·독서장 쓰기 같은 매일 해야할 것들을 루틴하게 연습시키자. 부모가 해주기보다는 자녀가 더 많은 기회를 가지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고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앉아서 집중하기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학년 때는 30분, 2학년 때는 1시간을 배정하는 식으로 30분 단위로 늘리면서 혼자서 책상에 앉아 ‘엉덩이 근육’을 기르라는 것. 다만, 갑자기 앉아 있게 할 순 없으니 1학년 때부터 연습을 하라고 조언했다.

양신영 연구원은 “1학년 때 30분이면 알림장 확인하고 일기장 쓰면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다. 시간을 딱 정해두기 보다는 혼자서 자기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양만큼만 하면서 시간을 서서히 늘려가는게 핵심이다. 고학년 되서 갑자기 책상에 앉으라고 하면 어렵다. 저학년 때부터 혼자 주도하는 시간을 꾸준히 연습하자”고 강조했다.

양신영 연구원은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얻으려면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 이것은 부모가 대신 가르쳐 줄 수 없다. 전적으로 아이 스스로 해야 한다. 그것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며 “아이는 엄마-아빠 이름, 내 이름, 신발장에 적힌 친구 이름을 보면서 통 글자로도, 낱 글자로도 한글을 익힌다. 이렇게 수년간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 아는 글자가 늘어나고 머리 속에서 글자를 조합하면서 한글을 깨우치는 것이다. 한글 떼기를 학습지나 방송이 아닌 스스로 해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1문 1답 식으로 학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정보들도 조언했다.

‘선행과 예습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1년 이상 예습은 선행이라고 본다. 공부는 흥미 유발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내용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예습은 약 2주 정도로 적당히 기억할 수 있을 정도면 알맞다”고 조언했다.

‘학습지 업체에서 제공하는 디지털기기는 괜찮냐’는 질문에는 “일단 디지털기기가 아이에게 적절한지 묻고 싶다. 아이들은 놀이, 체험 등을 통해서 배운다. 손에 자극을 줘서 뇌가 발달하고 동시에 소근육도 발달한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작동하는 태블릿PC 같은 디지털기기는 발달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디지털기기 학습지 상당수는 게임 기반으로 보상을 주는 구조다. 아이들에게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매운 맛에 길들이면 다른 맛은 심심하게 느껴지듯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길게 하려면 자극적인 학습에 익숙해지면 좋지 않다. ‘디지털기기를 미리 숙달해야 하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다. 심심한 활동이 잘 학습돼 있다면 나중에도 디지털기기를 잘 다루고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먼저 디지털기기에 익숙해지면 안된다. 순서가 바뀌면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 준비물에 대한 질문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으로 정리했으니 참고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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