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진의 제주 돌챙이] ⑨ 돌 벌르는(와리꾼) 장인 김상하(1961년생, 제주시 이도2동 거주)

‘돌(石)’은 제주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손꼽힌다. 그 돌을 일상에 맞게 다듬는 존재가 바로 제주 돌챙이다. 제주도, 제주도문화원연합회 도움을 받아 조환진 대표(돌빛나예술학교)가 제주 돌챙이 12명을 인터뷰해 책으로 묶었다. 바로 ‘제주 돌챙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제주의 근현대사를 헤친 돌챙이들의 철학과 인생을 생생한 제주어로 정리했다. [제주의소리]는 조환진 대표와 함께 ‘제주 돌챙이’에 소개된 12명을 차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김상하(1961년생, 제주시 이도2동 거주) / 이하 사진=조환진<br>
김상하(1961년생, 제주시 이도2동 거주) / 이하 사진=조환진

돌 벌르는 일은 큰 기술은 아니고
눈썰미만 있으면 배워서 독립할 수 있어

Q. 돌 벌르는 사람을 뭐랜 부릅니까?

돌 쌓는 일하러 가서는 돌챙이, 석공이라고 들어 봤는데…. 아, 와리꾼이라고 하더라고요. 돌 벌르는 일을 와리라고 하니까, 농사꾼 하듯이 와리꾼 그렇게 불렸어요.

Q. 돌 벌르는 일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나는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서 38살에 제주에 왔어요. 처남들이 여기서 돌일을 하니까 여기 와서 이 일 해봐라. 서울에 있어도 일이 별로 없으니까 와서 해보라고 해서 오게 되었어요.

처남들이 돌 벌르는 일을 한 게 아니고 처남들은 운반. 영업 쪽으로. 운반도 하고 배달해주면서 주문받고 배달을 해줬어요. 그 당시에는 돌 벌르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처음에 와서 여럿이서 같이 했죠. 처남 거래처에 같이 돌 벌르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같이 배우다가 독립해서 하게 된 거죠.

Q. 몇 년 정도 배웠습니까?

한 1년 정도. 큰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눈썰미가 있으면 독립할 수 있거든예. 내가 일을 배울 그 당시에는 일 주문이 상당히 바빴죠. 돌의 용도는 여러 가지인데 석축용 있고, 산담용 있고, 울타리용 정석이라고 해서 그런 걸 만들기 시작했고 대부분이 다 그 용도였죠. 울타리용 돌, 산담용 돌.

견치석은 다 한가지죠. 산담도 하고 도로변에 절개지에 축 쌓는 거. 그런 용도예요. 외담은 사각으로 정석이라는 돌을 쓰고, 산담 같은 겹담은 앞면은 사각이고 뒤가 삼각형인 돌을 써요. 그래야 사람들이 하갠노로 다듬어서 망치질하기 좋으니까. 겹담은 한 면만 보기 때문에 그 용도에 맞게 써요.

그때는 쉴 새 없이 돌을 벌럿어요.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 들어가고 그때는 바쁠 때니까. 왜냐하면 도로에 쌓는 축담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서. 물론 내 벌이도 하는 거고, 주문도 맞춰줘야 되니까.

주문 많으면 늦게까지 작업해야 했습니다. 어두우면 못하니까 저녁 때가지. 여름에는 새벽 일찍 날 밝으면 시작했다가 낮에는 쉬고, 저녁에 좀 하다가 들어가고, 여름에는 많이 못하죠.

북촌리 전문 석산에서 중석으로 사서
가공하고 만들었죠

Q. 어디서 돌일을 하셨습니까?

함덕. 지금 광명 샤인빌 들어서 있는 곳에서 작업했었어요. 돌은 북촌 전문 석산에서 사다가. 지금은 상호개발이라고 거기서 전문 석산을 하니까. 거기서 중석을 사서 가공하고 만들었죠. 제가 왔을 때는 1999년도였죠. 그때 처음으로 시작했으니까. 석산에서 계속 돌을 사다가 했었습니다.

Q. 당시에 돌일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그전에는 손으로 망치질을 해서 야 구멍을 뚫었었다고 하는데 내가 왔을 때는 기계로 에어 콤프래샤로 구멍 뚫고. 망치로 깨고 그랬었죠. 다르 게 없죠. 맨 그대로.

장인이 돌 깰 때 쓰는 도구.
장인이 돌 깰 때 쓰는 도구.

내가 처음에 왔을 때는 돌 가격이 개당 천원씩 했었어요. 1999년도에는. 사각돌 정석은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데 1500원선 했을 거예요. 지금은 견치석이 개당 4000원. 정석이 개당 8000원. 중석 값을 친다면 그때 처음에는 15톤 한 차에 4만5000원을 했었고, 지금은 23만원. 가격을 치면 그때 값어치가 있었지 않나 해요. 지금은 아무래도 마진이 적죠. 지금은 중석 값이 오른다고 해서 막 올릴 수도 없고 조금 덜 벌고 조금씩 값 올리고 하는 거죠.

Q. 지금까지 이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나요?

지금은 없죠. 지금은 고령되시고 돌아기신 분들도 계시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좀 없고. 이런 돌이 옛날에 비해 소비가 덜 되다 보니까 할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많이 찾아줘야 할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소비가 줄어서. 

소비가 줄어든 거 공사비 때문에 그런대요. 공사비가 많이 들어서 공사업자들도 돈 벌자고 마진을 보고 하니까. 자연석이나 잡석이나 전석 위주로 많이 돌아가는 거죠. 그 비용으로 견치석을 쌓으면 별로 남는 게 없대요. 건설업체에서는 공사비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그 돈으로 할 엄두가 안 나는 거라. 이 사람들은 돌값만 비싸다 하지만 우리도 그거 안 받고는 또 할 수가 없거든요. 발주하는 데서 공사비가 너무 적게 책정되는 것 같아요.

Q. 돌 벌르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망치질, 뚫는 방법, 재단하는 방법도 다 다르죠. 개개인이 다 다르죠. 같은 돌을 10개나 100개를 깬다고 해도 그냥 대충 깨는 사람이 있고, 쌓기 좋게 다듬기 좋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쌓기 좋게 벌르는 사람이 실력자라고 할 수 있죠. 모양이 좋게 나오면 아무래도 돌 쌓는 사람들 망치질 덜하고 능률도 오르고. 그런 차이가 있다 봐야죠.

좀 오래 일한 사람은 돌을 보면 알아요
내가 수작업 할 수 있는 돌인지 아닌지

Q. 벌르기 좋은 돌이 있고 벌르기 좋지 않은 돌이 있나요?

물론 있죠. 돌질이라는 게 있는데 면이 똑바로 나가는 돌이 있고, 돌이 약간 꼬이다 시피한 거는 면이 깨끗지가 못합니다. 그런 돌은 석공들이 다듬으려면 힘들고. 실력이 있다고 해도 돌질에 따라서 차이가 많이 나죠. 우선 중석의 질이 좋아야 합니다.

그건 좀 오래 한 사람은 다 알아요. 아, 이 돌은 내가 수작업으로 만들 수 있는 돌이다, 아니다. 거의 99%는 알아지죠. 중석을 보면은 아, 이 돌은 내가 작업할 수 있는 돌이다, 아니다 판단 나오죠.

곰보가 있는 돌과 없는 돌. 음. 곰보는 우리가 벌르는 데는 가다이보다도 좀 덜하죠. 곰보는 아무래도 오함마 망치로 치면은 좀 덜 나가는 편이고, 가다이는 잘 깨지는 편이고. 하지만 그게 돌을 쌓았을 때 곰보는 자연미가 나고 표시가 덜 나고 약간 잘못 쌓았어도 표시가 덜 나고 가다이는 표시가 많이 나요. 가다이는 곰보가 없는 거.

우리가 쓰는 단어로 가다이라 하는 거죠. 석공들이 일하기는 좋죠. 망치로 때리면은 잘 나가주니까. 석축 쌓아 놓으면은 곰보가 있는 게 조금 더 멋은 있죠. 빨리 자연석으로 색이 변할 수 있으니까. 가다이는 좀 자연석으로 변하기에는 색깔이 별로 안 좋아요 일하기는 좋아도. 곰보가 없는 건 ‘가다이’라고 하고, 곰보가 있는 건 우리가 부르기로는 ‘곰보돌’이라고 해요. 나도 선배들한테 그렇게 배워 왔으니까.

Q. 돌을 어떻게 벌릅니까?

일단 엔진과 콤프레셔가 있어야 되고, 포크레인 장비로 돌을 펼쳐야 만이 우리가 작업할 수가 있어요. 돌무더기 상태에서는 돌이 굴러올 수도 있고 위험해서 할 수가 없으니까 포크레인으로 돌을 펴주고 기계를 튼 다음에 콤프레샤 에어로 수작업으로 구멍을 뚫고 정을 박아서 큰 망치(메)로 치고 합니다.

장인의 작업 모습.&nbsp;
장인의 작업 모습. 
장인의 작업 모습.&nbsp;<br>
장인의 작업 모습. 

구멍을 낼 때는 정해진 간격은 없고 자기가 해온 노하우대로 하면 돼요. 아, 요 돌은 이렇게 하면 나갈 수 있다. 돌을 먼저 파악하고 돌에 따라 구멍을 여러 개 뚫으는 돌이 있고, 적게 뚫어서 나갈 돌이 있고. 아, 이 돌은 똑바로 나가게 하려면 길잡이 식으로 하나 더 뚫어줄 돌이 있고. 곰보는 아무래도 구멍을 더 뚫어줍니다. 덜 나가니까. 가다이는 덜 뚫어져도 잘 나가니까.

구멍에 박는 야는. 보통 야가 절반 정도…. 그것도 곰보는 좀 더 깊이 뚫어주고, 가다이는 잘 나가니까 조금 덜 뚫어주고, 그런 식으로.

구멍을 뚫고 그 다음에는 구멍에 철판 두 개를 넣고 철판 가운데  야를 박습니다. 한 개짜리 구멍에는 헌옷 넣고 때리고 여러 개 뚫었을 대는 야가 자꾸 튕교 나오니까 철판을 양쪽에 넣고 야를 박아야 야가 안 튕겨 나와요.

‘튕겨 나온다’는 말은 옆에 야가 튕겨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맞은 놈이 빠져 나와요. 헌 옷을 넣고 때렸을 때는 그 충격에 튕겨 나와요. 맞은 놈이 튀어나오는 거죠. 철판으로 쐐기를 박았을 때는 철판이 물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때려도 나오질 않아요. 물론 간혹 나올 수도 있지마는.

처음엔 일반 철판을 썼는데 일반 철은 얼마 못써. 물러 가지고 금방 닳아서 칼날 같이 되니까 맨날 그거 줏으러 다니니 바빠요. 스텐으로 쓰니까 오래 써. 화북 공업단지에 주방제품 만드는 곳에서 가서 만들어다 썼어요.

야가 튕겨 나오지 말고 잘 파고들라고 
진흙물 바르는 거

Q. 진흙물을 바르시던데요?

아, 그건 야가 튕겨 나오지 말고 잘 파고들라고 진흙물을 야에 바르는 겁니다. 진흙물을 바르면 좀 빠져나오지 않는다 봐야죠. 헌옷들은 해보면 야가 자꾸 튕겨 나오거든요. 좀 파고 들어가는 것이 있어야 되는데 마른 상태에서 하니까 자꾸 튀어나와 가지고….

헌옷도 청바지라든가 면 종류가 야를 잘 물고 있어요, 일을 하면서 옷을 물에 적시고 야를 박아 보니까 아무래도 야가 빨리 파고 들어간단 말이에요. 마른 옷은 팅하고 튕겨 나와 버리고 야에 옷이 많이 붙어요. 옷에 물을 적셨을 경우는 안 붙고.

작업에 사용하는 진흙물.
작업에 사용하는 진흙물.
장인이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
장인이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

야를 박고 메로 때리는데 만약에 야를 5개 박았다, 그러면 때리는 순서는 물론 처음에는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 톡 톡톡, 여러 개 야를 쳐주고, 야를 때려 보면은 어느 야를 먼저 때려야 돌이 빨리 나갈 수 있는지 5개라고 골고루 때리는 것도 아니고. 아, 이걸 때리고 나면 앞에 걸 때려야겠다, 아니면 뒤엣걸 때려야 되겠다, 한 번 때려보면 그 느낌이 있거든요.

손에 느낌이 옵니다. 어떤 걸 때려야 돌이 빨리 나갈 수 있다. 돌의 모양에 따라서 어떤 것은 살~짝 쳐주고 어느 거는 세게 쳐야 할 야가 있거든요. 톡 치고 톡톡 치다가도 어떤 걸 세게 치면 나갈 것이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를 세게 치죠. 그러면 틀림없이 나가요.

때려보면 망치 자루에서 전해오는 느낌이 다릅니다. 팅팅하다가 푹하고 들어가는 맛이 나요. 아, 이건 때리면 빨리 나갈 것이다. 느낌이 오죠. 무조건 다 세게 때리는 것이 아니라 이건 좀 세게 때리고, 저건 좀 약하게 때리고. 돌이 약하면 돌이 부서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건 길잡이식으로 톡, 쳐주고 세게 때려도 깨지지 않게끔 자리 잡은 야는 제대로 때려주죠. 그러면 잘 나가죠.

장인의 작업 모습.&nbsp;<br>
장인의 작업 모습. 

돌이 쪼개지면 돌을 눕혀 놓고
다시 구멍을 뚫고 그런식으로 반복

Q. 돌을 벌른 다음은 뭐합니까?

돌이 쪼개지면 다음 과정을 위해서 돌을 펼쳐야죠. 돌이 서 있으면 지렛대를 이용해서 눕혀 놓고 다시 구멍을 뚫고 그런 식으로 계속 반복을 하다가 보면 견치석이 하나씩 나옵니다. 

견치석은 보통 앞면이 30~35전 정도 선으로 보고 합니다. 자로 재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일정하지는 않고 일정하려면 다 똑같이 일정해야지 석공들이 돌을 쌓다보면은 작은 것도 필요하고 큰 것도 필요하고 중간 것도 필요하지요.

이건 수작업이라 일정하게 나올 수는 없으니까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요. 모양도 어떤 때는 삼각이 필요할 때가 있고. 중간에는 삼각이 거의 안 들어가는데 기초하고 마무리할 때 삼각이 필요하죠.

장인의 작업 모습.&nbsp;<br>
장인의 작업 모습. 

정석으로 자를 때는 두께는 23~25전. 그 정도 두께고 모양은 직사각형이고 길이는 28~35전까지 나옵니다. 가로 폭도 25~30전 정도 나와요. 더 크게 나올 수도 있는데 그 이하는 안 되고 그 이상으로 나와야죠.

정석으로 자른 돌들은 집 울타리라든가 산담 외담으로 쌓을 때, 거의 외담용으로 많이 씁니다. 양면보기용이기 때문에. 견치석은 한 면 보기용이고. 집 지을 때 꺾이는 모서리나 창틀 끝나는 부분에 긴 돌이 필요합니다. 끝나는 부분을 우리는 ‘어귀논다’ 하는데, 대부분 보면 직사각형 돌을 많이 쓰는데 다른 돌보다는 조금 더 길어야죠. 높이를 60전으로 쌓는다고 하면 30전 까지 두 개 놓아도 되는데 20전 짜리 40전 짜리로 두 개 놓을 수도 있고 해서 크기는 조금씩 달라요.

Q. 돌 벌르는 일은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중석 말고 대석은 벌르다가 위험할 수도 있어요. 많이 해본 사람은 어디로 넘어질 것이다 알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서 돌을 때리는 거죠. 자기가 벌른 돌에 자기가 깔릴 수도 있는데 오래 한 사람은 알기 때문에 저는 아직까지는 돌에 깔려 본 적은 없어요.

넘어질려고 하니까 도망간 적은 있어요. 돌이 넘어갈 방향을 보고 때리기 때문에 다칠 확률은 희박하죠. 초보자들에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옛날에는 벌르는 일만 하다가 지금은 쌓는 일도 합니다. 옛날보다 소비가 안 되니까 나가서 석공 일도 하고 농사도 쬐끔하고 하면서 보내고 있어요.

돌 쌓는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 꾀가 난다고 할 수는 없고. 벌르는 일은 오래 하다보니까. 20년 넘게 했으니까 그건 좀 꾀가 난다고 봐야죠. 사람이 뭐든지 지속적으로 하다보면은 질리잖아요. 나가서 석공일 하다가 여기 와서 이 일 할려다 보면 좀 실퍼요. 힘드니까. 혼자 해야 하는 거잖아요?

일을 혼자 하니까 사람이 벙어리 되듯이 재미가 없어요. 물론 일을 재미로만 하는 건 아니지만 여럿이 있으면 힘들어도 농담하면서 말로써 풀잖아요. 아침에 혼자 일하러 나오면 무슨 말을 합니까. 그런데 석공일을 나가보니까 여럿이 하니까 농담도 하고 쉴 때는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소리도 지르고 농담이라도 한 번 하면은 그 순간에도 약간 힘이 덜드는 것 같아서 나가서 일하면 저는 농담도 많이 해요.

물 만난 고기랄까 진짜 산속에서 혼자 하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 일하다가 집에 가면 먹고 자고 아침에 나오면 대화할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이 있어야 술도 한 잔 할 텐데 나가 보니까 사람 만나니까 얘기하고 농담하고 일은 힘들지만 그래도 재밌어요. 그건 아직 꾀가 안 나는 거죠.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팔이야!
그런 소리 나오죠

Q. 돌 벌를 때 기합이라든가, 뭐 소리하는 게 있었나요?

나는 없는데…, 그 전에 처음에 왔을 때 옆에서 같이 벌르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는 나보다 한참 위지마는 그 사람은 꼭 망치질할 때마다 ‘쒝! 쒝!’ 하더라고요. 저 사람은 왜 저런 소리 낼까? 자동으로 나오는 걸까? 그런 소리 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망치 때리는 순간에 힘을 가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겠죠. 나는 때려서 그런 소리는 없습니다.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팔이야!” 하는 소리는 나오죠.

돌일하면서 뭐 따로 노랠 부르는 것은 없고 라디오 틀어도 소음 때문에 안 들려요. 경운기 엔진소리에, 지핑 소리에, 망치 소리에 들리는 게 없어요. 전에 라디오 틀어놓고 해봤는데 한 3프로나 들릴까? 야나 박을 때 잠시 듣는 거지 안 되겠더라고요.

Q. 돌 벌르는 일을 얼마나 하신 겁니까?

햇수로 23년째 했어요. 해가 짧은 겨울에는 하루에 100개 정도 벌렀습니다. 여름에는 해가 길지만 오히려 30~50개 정도 벌릅니다. 새벽하고 저녁에만 일하고 낮에는 더워서 못합니다. 돌을 쳐다봐도 땀이 아는데 깰 수가 없죠.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가죠. 사실 돌이란 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요령과 힘으로 하기 때문에 힘이 있어야 요령도 부리지, 힘없이 요령만으로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다보면 당연히 몸에 무리가 오죠. 팔, 어깨, 허리, 엎드려서 많이 작업을 하니까. 소음도 상당히 셉니다. 귀도 무리가 와요. 이명 소리도 나고. 이 일 오래 계속하다 보면 사람 골병듭니다. 완전 중노동이죠.

눈에 들어간 파편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거울.
눈에 들어간 파편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거울.

또, 지핑 기계로 구멍을 파다보면 눈에 잔 돌조각들이 많이 들어가요. 먼지야 이루 말할 것 없이 많이 먹고. 먼지가 얼굴 쪽으로 올라오니까. 작은 파편들이 눈에 자주 들어가거든요. 물론 보안경 쓰고 해야 하는데 습기 차고 땀 떨어지고 하기 때문에 더울 때는 힘들어요. 작업하다 보면 하루에도 눈에 몇 번씩 들어가요. 그러면 휴지 말아서 혼자서 거울 보면서 돌 빼고 그래요. 그러니 아무래도 눈에 상처가 많이 나죠. 좀 시력이 떨어져요. 원래 시력이 좋았는데 지금은 시력이 안 좋은 편이예요.

일을 오래 하다보니까 이두박근도 나갔어요

검사는 안 받아서 모르겠지만 돌가루 마셔서 폐가 안 좋을 수도 있겠죠. 밥을 먹어야지 돌가루 먹어서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돌을 사러 오시는 분들이 마스크를 끼고 하라고 하지만 마스크를 끼면 처음은 괜찮지만 습기가 차고 먼지가 끼면 숨쉬기가 불편해서 작업을 못해요. 답답해서 끼지도 못해요. 자주 갈아 낄 수도 없는 거고.

남들은 “보안경 껴라”, “귀 막고 해라” 하는데 그게 작업하는 데는 상당히 걸림돌이예요. 몸을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되는데 내가 우선 불편하고 작업하기가 힘드니까 모두 생략하고 하는 거죠 뭐.

인대가 끊어진 장인의 팔.
인대가 끊어진 장인의 팔.
인대가 끊어진 장인의 팔.<br>
인대가 끊어진 장인의 팔.

일을 오래 하다 보니까 이두박근도 나갔어요. 인대가 끊어졌어요. 이쪽 팔은 톡 삐져나와서 모양이 이상한데 이게 이두박근이 끊어져서 그래요. 이게 끊어지지 전에는 그 당시 일을 할 때 팔이 많이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참고 해야지 하는데 도저히 팔을 올리질 못하겠더라고.

이 밑에서는 괜찮은데 너무 아파서 올리질 못해. 한마음병원에 갔더니만 인대가 완전히 끊어지진 않았는데 파열됐다고 하면서 아직은 끊어지지 않았으니까 힘쓰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그 당시 주문 받아 논 게 많아서 바빴어요. 에이 뭐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다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팔이 이상하게 뽈룩 튀어나왔더라고. 아이고 왜 이러나, 하고 놀래서 병원에 갔더니만 이두박근 나갔다고 말하길래,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수술은 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끊어지고 나서는 팔을 마음대로 올릴 수가 있고 내 맘대로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더라고요. 불편한 점이 없더라고.

끊어진 게 어찌 보면 고통이 없으니까 잘 됐다 싶고 활동하기 좋으니까 오히려 편해. 힘도 상관없어요. 인대가 3개인가 있다고 하더라고. 자기도 인대 끊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인데 하나 끊어진 건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고. 생활하는데 아무런 이상은 없어요.

공사비용이 많이 들어서 타산이 맞지 않으니
견치석 쌓는 일이 아무래도 없어져 가죠

Q. 요즘도 돌을 찾는 사람이 있는 편인가요?

돌을 벌러 돈을 안 벌었다면 거짓말이고. 애들 교육시키고, 먹고, 살고 그냥 먹고 살 정도 한 거죠. 많은 돈 아니라도 조금 저축도 했죠 뭐. 애들 교육시키고 먹고 산 것이 번 거죠. 

요즘은 견치석 주문이 가끔 들어오긴 하는데 예전 같지가 않아요. 공사비용이 많이 들어서 견치석 쌓는 일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공사비는 적게 책정되고 견치석을 쓸라니까 비용이 많이 들고 하니 누가 할라고 합니까. 시내 구간은 공간이 좁으니까 그런 데나 조금씩 들어가고 외곽지는 전석으로 많이 하더라고요. 그전 같으면 다 견치석 써야 할 현장인데 이제는 돌 쌓을 곳이 깊다 싶으면 다 전석으로 쌓아버려. 그게 공사비가 많이 줄어드니까.

장인이 쪼개 놓은 돌.&nbsp;
장인이 쪼개 놓은 돌. 

관(官)에서 발주할 때 설계상으로는 견치석으로 많이 나온대요. 전화 와서 돌값이 얼마냐고 물어보고 다 계산해보니까 타산이 안 맞으니까 전석 쌓기나 잡석 쌓기로 설계 변경시켜버리는 거여. 예를 들어 500만원에 공사하라는데 실제로는 1000만원 든다면 누가 합니까.

물가가 오르는데 옛날 가격대로 공사 발주하지 말고 가격을 알아보고 견적을 올려서 발주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내 돌 팔자고만 하는 것도 아니고 물가 계산도 생각해야죠.

Q. 가족도 같이 일하십니까?

예전에는 아내도 같이 했습니다. 참 여자의 몸으로 망치질도 하고…. 남자들도 들었다 놨다 하기 힘든 망치로 돌을 벌르기도 했고 구멍 뚫는 지핑질도 해보고. 남자도 힘든 일을 사실은 했어요. 

지금은 그때 후유증이랄까. 몸이 안 좋죠. 지금은 후회하죠. 젊었을 때 왜 그 일을 시켰을까. 후회스럽죠. 한다고 해도 말릴 걸. 말려나 볼 걸. 내가 일하니까 옆에서 보다가 어 망치 들을만하네. 돌도 뚫을만하네. 젊었으니까. 시작이 그렇게 된 거죠.

망치 뚫는 것도 마찬가지. 한번 뚫어봐 하다 보니까 몇 년 간 같이했죠. 그러다보니 몸이 안 좋죠. 지금 와서 나이 먹고 보니까. 나 역시도 여기 아파, 저기 아파 하는 것도 있고.

아들은 한다고 해도 내가 말리고 싶어요. 너무 힘든 일이고 예전같이 돌 소비가 안 되서 판로가 없어요. 지금도 매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 들어오면 가끔씩 해요. 저도 언제 그만 둘지 몰라요. 중석 구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고 견치석을 찾는 곳도 별로 없으니까.


# 조환진

1974년 한림읍 태생
2002년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서양화 전공)
2019년 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석사 (석사 논문 - 제주도 지역별 돌담의 특징과 축조 방식)
2021년 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박사과정 수료
2021년 석공예기능사, 문화재수리기능자
2023년 제주도 농어업유산위원회 위원

제주도 안에서 돌챙이로 살아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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