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책과 그대 꽃처럼 필 무렵

“2001년 7월 14일 장맛비로 세상이 무겁게 젖은 날,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를 했다.”
- ‘제주를 품은 창’ 중에서

제주 화가 김품창이 22년 간의 제주 생활을 솔직하게 에세이 책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 자전 에세이 ‘제주를 품은 창’(책과 그대 꽃처럼 필 무렵)에서, 김품창은 복잡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던 22년 전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부터 어엿한 작가로 자리 잡은 오늘날까지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담백하게 이야기 한다.

김품창은 친척이나 지인이 아무도 살지 않았던 제주에서 멀미가 날 만큼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 그림을 그렸지만, 작은 미술강사 일조차 들어오지 않아 이내 붓을 꺾기도 했다. 

낯선 섬 문화·기후에 적응하려 애를 먹었고, 때로는 한 끼 식사조차 버거울 만큼 곤경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가정을 지켜준 동화작가 아내, 그리고 곳곳에서 나타난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화가로서 이어갈 수 있었다. 가족과 인연들에 대한 고마움은 책 전체에 걸쳐 고루고루 담겨 있다.


제주에 온 지 1년 6개월 정도 지나 제주 생활이 익숙해져 갈 때쯤 서서히 경제적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 속이 점점 타들어 갔지만 곧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서울에서 아동 미술 과외를 했던 나는 초등학교 방과 후 미술 강사를 하려고 이력서를 내기도 하고 노동 현장을 알아보기도 했다. 연락도 오지 않고 받아 주는 곳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막대기로 장롱 밑 동전을 끄집어내는 내 모습에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과 극심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새 붓을 모두 부러뜨리고 그림을 찢어 버렸다. 그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와 쓰디쓴 눈물을 흘렸다.   

- ‘제주를 품은 창’ 중에서


우리가 제주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은 우리를 제주 땅이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제주 사람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제주를 배타적 지역이라고 느끼는 것은 제주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계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함께하는 긴 시간과 올바름만이 그 경계의 벽을 넘어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제주를 품은 창’ 중에서


한겨울 태양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바다를 통해 찬란한 은빛 보석 세계로 끌려가기도 하고 한여름 에메랄드빛 바다에 손을 담그면 내 손이 보석으로 변한 것 같은 착각도 든다. 태풍이 불면 성난 용이 온몸을 사납게 꿈틀거리듯 바다도 거칠게 다가오고 제주의 숲에 들어가면 동화 속 요정이 나올 것같이 신비스럽다. 은빛 가루가 뿌려진 밤하늘은 별빛 속 끝없는 우주 공간으로 나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다. 

제주의 자연은 사람의 몸과 영혼을 환상세계로 끌어들인다. 나는 그림을 통해 천혜의 자연, 제주의 바다와 숲 그리고 하늘에 내재된 환상세계를 보여 주고자 한다. 그림에서만큼은 현실을 떠나 인간과 자연의 여러 생명체가 같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세계를 그리고 싶다.

- ‘제주를 품은 창’ 중에서


김품창은 책머리에서 “강원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는 험한 길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자주 넘어져 무릎이 늘 상처투성이였다. 넘어질 때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어린 마음에 잘 넘어지지 않는 어른들이 너무 신기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니 그 어른들도 어렸을 때는 수없이 넘어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사람은 누구나 기어다니던 시절을 거쳐 일어나 두 발로 서기 시작하면서 수없이 넘어지며 걸음마를 배운다. 이처럼 어떤 목표가 있는 사람은 반복되는 실패의 과정과 수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나와 그림도 그런 과정을 통해 그려진다. 그림과 내가 하나가 될 때를 꿈꾼다”고 밝혔다.

에세이 책은 가감 없이 풀어낸 글 내용과 함께, 따뜻하고 포근한 저자의 그림 40여점이 수록돼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김품창은 1966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경북 영주에서 성장했다.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도심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2001년 가족과 함께 제주로 이주해 서귀포에 정착했다. 

한국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MBC미술대전, 구상전에서 수상했다. KBS, SBS, MBC의 뉴스, KBS 문화산책, EBS 한국기행 등의 방송 프로그램과 라디오, 잡지 등 다수의 매체에 소개되었다. 

꾸준한 창작활동을 하며 개인전을 18회 열었고 국내외 다수의 초대전과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귀포 예술의전당에서 대규모 개인전도 열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위원을 역임했고, ADAGP와 한국미술협회 회원, 동연회 명예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88쪽, 책과 그대 꽃처럼 필 무렵,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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