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제주 교육 공간과 젠더 폭력

제주도내 모 고등학교에서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여성에 대한 불법적인 촬영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성 교사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촬영한 사건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는 수십 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학교는 여교사를 가해 학생 집으로 보내는 등 2차 피해에 대해 무심한 대응을 자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2학년 여학생들은 남은 학창 시절을 그 공간 그대로, 그 트라우마를 가지고 지내야 하는 등 거의 방치되어있다.

올 12월 첫날에 제주인권포럼에서 제주여성인권연대가 ‘공간불평등과 젠더폭력’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사회적 공간과 사적 공간 등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젠더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국 내에서 특별히 ‘강인한 여성’의 상징으로 종종 차용되는 제주가 오히려 성별 고정관념으로 채워지고 젠더화된 현장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2023년 사회 안전지수에 따르면 범죄 발생율을 다루는 생활안전 분야의 경우 제주시 51.97점, 서귀포시 45.42점으로 경제활동, 주거환경 등의 다른 지표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제주라는 공간은 젠더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약자에게 안전한 공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토론회는 묻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고 시민과 함께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리고 N번방 텔레그램 성착취와 코로나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가 익명성 뒤에 숨어 현실의 공간에서 소비되고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범법자들과 이를 묵과하는 세력이 무엇이 문제이고 이들과 싸움에 어떤 전략으로 마주해야 할까?”

위의 모 고등학교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보면서, 그리고 여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여성인권연대의 질문이 매우 적확했음을 깨닫는다. 성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촬영물들이 사회적으로 소비되는 형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되었을까? 해당 학교는 사건이 발생하자 여교사들을 가해 학생이 있는 가정으로 방문을 보냈다고 한다.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을지도 모르는 여교사들을 가해자와 상담하라고 보낸 셈이다. 심각한 2차 피해를 학교가 만들어낸 것이다. 

또 학교는 사건 발생 이후 바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을 진행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성교육인지 이해할 수 없다. 성폭력과 관련해 행위에 대해 경고하는 교육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 성폭력에 잘 대응하라는 교육이었을까? 이번 사건 관련 피해자는 학생만 가려가면서 피해를 주지 않았다. 여교사도 피해를 입었다. 그렇다면 남교사 또는 남성 직원들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일까?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은 어찌 보면 학생들에게 우리 교사와 학교에겐 책임이 없어! 이건 너희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니 너희들이 교육받아야 해, 너희들이 알아서 스스로 잘 방어해! 라고 말하는 꼴이다. 한 교육 공간에서 여성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었지만, 학교 당국은 학생들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

해당 학교와 제주교육당국은 피해교사들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턱없이 형편없는 수준이다. 피해를 입은 여교사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학교에 출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학교와 교육당국의 안이한 인식과 대처로 공무상 병가도 사용 못하고 치료비도 사비로 부담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학생들에 대한 지원대책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대책을 요구한 뒤에야 겨우 상담지원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형식적 대응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여교사보다 훨씬 많은 여학생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는데도,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동료교사들과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생회를 개최하였다. 그 학생회의 회의기록을 살펴보면서 학생들의 심경을 간접적으로나 느낄 수 있었다.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도 느껴지지만, 피해 학생이 누구인지 몰랐으면 한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피해자로 특정되는 순간 주변에 알려지든 말든 간에 자신이 겪어야 할 트라우마의 크기가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다. 여성으로서 피해를 입었지만, 결코 피해자임을 자임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와 우리 교육의 공간이 된 것이다. 여성들의 슬픈 현실을 참담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런 피해자의 현실을 교육당국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 해당학교에서 개최된 경찰의 사건 브리핑에서, 경찰은 조사 경과를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알리면서 조사를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학교에서 정보를 충실히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생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 조사지를 작성하는 과정에 학부모의 입장이 반영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교육당국의 책임회피성 질의내용이라든지, 조사당국의 배려없는 질의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에 대한 학부모의 감시나 의견 제시 과정이 없다. 또 학교의 지도 권한이 강하게 작동하는 학교 공간에서 학생들이 정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면서 도대체 학교와 제주도교육청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늘 일어나는 학교 내 하나의 사건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교육당국의 안이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제주여성인권연대의 ‘젠더 폭력의 가해 또는 소비·옹호·방조하는 세력은 누구이고, 이를 묵과하는 세력은 누구이며, 우리는 이들과 어떻게 싸워나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한 제주도교육 당국의 응답은 필자가 보기에 없다. 젠더 인식 자체의 부재가 너무 진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김광수 교육감은 이러한 엄중한 상황임에도 그 흔한 상황인식에 대한 설명의 자리도 없고 사과 한마디조차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제주교육기관의 수장으로서 너무나 안이하고 무책임한 모습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정당하며, 당연히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피해자에 대한 사려 깊은 보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피해자들의 상황을 공감하고 그에 맞는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 여성에게는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고발하는데 겪는 어려움을 덜어줄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학생들에게는 학교 당국의 지도 권한에 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저 단순한 한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고, 교육 공간에서 발생한 사회의 구조적 젠더 폭력이고, 그 피해자라고 인식해야 한다. 피해자들을 공감할 때, 우리 사회는 모든 공간에서 젠더 폭력 없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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