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Happy+ 공모 슬기로운 단주생활
서귀포시사랑원, 알코올중독 치유 지원

​​# “커피 한 잔을 두고 두 시간 이상 떠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서귀포시사랑원에 입소한 지 20년도 더 된 고도원씨(가명)는 간병인 근로를 다니며 두세 달에 한 번씩 사랑원에 귀원했다. 그는 폭음을 반복하고 간병 근로로 벌어들인 수익을 짧은 시간 내 탕진하고 또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는 등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원만하지 못한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인생 2막을 열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단주(斷酒) 모임을 통해 심리상담을 시도하거나 자조 모임에 함께하며 알코올중독을 스스로 이겨내고 있다. 술을 마셔야만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커피를 마시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한 그였다. 일 년 가까이 단주 모임을 이어온 도원씨는 지난 11월 자립에 성공했다.

# “살면서 이렇게 오래 술을 안 마셔본 건 처음이에요. 언제 또 마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생활이 마냥 좋고 건강도 좋아진 느낌이 들어요. 일단 이 모임이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도 모임을 지속하고 싶어요.”

구성찬씨(가명)는 사랑원 입소 8년 차로, 식사 때와 장기 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주로 생활실에 누워 하루를 보냈다. 거칠고 투박한 언어를 사용하며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있으면 폭력을 행사하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그였다. 하지만, 모임을 통해 함께 책을 읽고 동영상을 보면서 의견을 나누거나 일상을 되돌아보는 시간에 차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집단상담 프로그램, 치료공동체 탐방 시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등 점차 적극적인 자세로 변해갔다. 하루 이틀씩 외박을 하며 술 마시는 것을 낙으로 삼던 성찬씨였지만, 지난 7월부터 꾸준히 단주를 실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서귀포시사랑원은 제주사회복지협의회,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주개발공사의 ‘삼다수 Happy+’ 공모사업으로 노숙인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교육·상담 프로그램 ‘슬기로운 단주생활’을 올 한 해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서귀포시사랑원은 제주사회복지협의회,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주개발공사의 ‘삼다수 Happy+’ 공모사업으로 노숙인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교육·상담 프로그램 ‘슬기로운 단주생활’을 올 한 해 진행했다.

알코올중독은 다양한 내과 질환뿐 아니라 우울, 불안, 불면, 인지장애 등을 동반하고 무기력에 빠져 평범한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는 여러 문제를 야기하지만 중독의 기준이 모호하고 병식이 낮아 치유가 어렵다. 실제 사랑원 이용자 가운데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가족과의 단절, 일상 붕괴를 경험한 비율은 전체 32%에 달했다.

이에 사랑원은 스스로 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슬기로운 단주생활’을 기획했다.

슬기로운 단주생활은 단주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으나 그 의지가 높지 않아 다시 술에 의지하는 이용자에게 심리상담, 단주 릴레이, 단주 자조 모임 결성, 치료공동체 탐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사랑원은 격월로 1회씩 정신과의원 전문의를 초빙해 알코올의존증을 교육하고, 심리상담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각 20회기에 걸쳐 상담을 진행했다.

자조 모임은 총 25회기로, 원내·외에서 보내는 일상을 공유하고 단주 관련 서적을 읽고 마음에 드는 단상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마지막 회기를 앞두고 8명의 참여자 가운데 단주 200일 성공자가 4명, 100일 성공자가 1명에 이르는 등 기대 이상의 결과가 도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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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사랑원은 제주사회복지협의회,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주개발공사의 ‘삼다수 Happy+’ 공모사업으로 노숙인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교육·상담 프로그램 ‘슬기로운 단주생활’을 올 한 해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무엇보다 자조 모임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사랑원 관계자의 권유에 마지못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회기를 거듭할수록 인원이 늘어 초심자 그룹과 안정자 그룹으로 나눠 진행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참여자 모두 스스로 알코올중독자임을 인정한 점, 함께하는 이들의 단주 성공일을 늘려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이야기 들으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점, 평소 멀리하던 책을 가까이하는 점 등이 놀라운 변화로 평가됐다.

물론, 잠시 흔들렸던 이도 있었다. 김태일씨(가명)는 단주 100일에 성공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병을 들었다. 태일씨는 이전부터 수중에 돈이 생기면 모두 술 마시는 데 사용했던 이로, 초반 단주에 대한 의지와 동기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심리상담과 치료공동체 탐방과 자조 모임에 매회 참석하는 열의를 보이며 성실하게 참여해 왔으나 슬기로운 단주생활이 마무리돼 가는 시점에 또다시 술의 유혹에 빠지게 됐다.

서귀포시사랑원의 슬기로운 단주생활 자조 모임 참가자. ⓒ제주의소리
서귀포시사랑원의 슬기로운 단주생활 자조 모임 참가자. ⓒ제주의소리

하지만 아직 포기는 이르다. 태일씨는 스스로 실수를 깨닫고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그는 “나를 시험해 보려 밖으로 나갔는데 결국 술병을 다시 들었다. 슬기로운 단주생활 참여 전에는 돈만 생기면 술을 마셨고, 마시고 와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믿어줬던 사람들을 배신한 느낌도 있고 허망한 생각이 들어 다시 힘을 내보려 한다”고 힘줘 말했다.

한 해동안 슬기로운 단주생활을 기획하고 운영한 사랑원 관계자는 “단주는 정해진 기간에 완수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만큼 참여자들이 지속해서 단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원사업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꾸준한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상호 지지, 위로하며 공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외부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자원이나 여가 선용 방법을 제시해 참여자들의 일상회복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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