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제주 곶자왈.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곶자왈.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갈 길은 아직 멀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로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음에 조급한 마음을 나타내는 비유로 자주 쓰인다.

다시 한 해를 보내는 곶자왈 보전을 바라는 마음이 꼭 그러하다.

곶자왈 보전을 위한 노력은 더디기만 하고 그사이 곶자왈 개발 소식은 또 들려온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15년 제주 곶자왈지대 실태조사 및 보전 관리방안 수립 용역과 함께 곶자왈 경계 설정 작업에 들어갔다. 또 제주특별자치도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 전면 개정 작업을 통해 곶자왈 보전제도를 강화한다고 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나도록 어느 것 하나 완성된 것은 없다. 지난 1월 발의와 함께 개정 절차에 들어간 곶자왈 보전 조례안은 부실한 내용으로 논란 속에 도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덩달아 곶자왈 경계 설정 고시 또한 다시 한 해를 넘기게 됐다.

그런 사이 곶자왈에 또다시 대규모 개발사업이 예고됐다. 

이번엔 동복리 곶자왈이다. 한국동서발전(주)이 최근 제주 청정에너지 복합발전 사업계획을 밝혔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산56-55 일원으로 개발면적은 203,368㎡에 이른다.

한국동서발전(주)은 사업부지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전관리지역과 생산관리지역, 발전시설로 기지정된 부지로 개발에 용이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제주특별법」 제357조에 따른 관리보전지역(생태계, 경관, 지하수자원 보전지구) 3~5등급으로 개발이 용이하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보면 이곳은 발전 사업 부지 최적지로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곶자왈 가운데서도 가장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선흘 동백동산이나 김녕곶자왈과 이어진 곶자왈 지대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새롭게 지정 고시하려는 곶자왈에도 포함되는 곳이다.

그럼에도 곶자왈에 대한 언급은 없이 개발 적지임만 강조하고 있다.

한국동서발전(주)은 사업부지 주변에 이미 폐기물매립장과 소각장, 풍력단지와 채석장 등이 들어서 있는 것도 개발 가능한 조건으로 들었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볼 때 이미 온갖 개발사업으로 곶자왈이 사라지고 있음을 말한다. 수백 년 전 역사 기록에도 남아있던 곶자왈이 지난 20년 사이 아름아름 개발로 옛 모습이 크게 훼손된 상태다. 개발사업이 더 진행된다면 이곳 곶자왈은 옛 모습을 잃을 뿐 아니라 생태적 기능마저 사라질 절체절명에 놓인 곳이다.

이미 개발이 진행된 곳이라 개발이 가능하다는 논리라면 제주도 곶자왈 가운데 보전해야 할 곳은 없다. 이미 모든 곶자왈에서 개발이 진행됐으며 개발면적이 34%에 이른다.

개발은 이미 과도하게 진행된 만큼 오히려 더 이상 개발로부터 곶자왈을 지켜야 하는 게 우리에게 놓인 과제다.

더욱이 이곳은 공유지에 해당된다. 사업부지 203,368㎡는 제주에너지공사 소유(195,743㎡)와 제주특별자치도 소유(7,625㎡) 땅이다.

사실상 제주도가 공유지 곶자왈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20년을 걸어온 곶자왈 보전이 뒷걸음질할 위기다.

이처럼 하루하루가 아쉬운데 곶자왈 보전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곶자왈 보호지역 지정 등을 담은 곶자왈 보전조례 개정과 곶자왈 경계 지정 작업은 올해도 결실을 못 본 채 해를 넘긴다.

늦어진 것도 아쉽지만 내용을 보면 더 걱정스럽다.

기대를 모았던 곶자왈 보전조례 개정안은 막상 내용을 보니 곶자왈 보전을 위한 대안이라 하기엔 한계가 많다.

곶자왈 보전을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유지 곶자왈과 생태계 보전지구 3등급 아래 곶자왈을 개발로부터 지켜내는 일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생태계 보전지구 3등급 아래 곶자왈은 30~100%까지 개발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조례 개정안은 곶자왈을 보호지역·관리지역·원형훼손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조례안대로라면 개발사업이 주로 이뤄지는 3~5등급지인 경우 대부분 관리지역이나 원형훼손지역으로 지정된다. 곶자왈 경계설정 용역안을 보면 보호지역은 전체 곶자왈 95.091㎢ 중 35.5%인 33.742㎢인데 비해 관리지역과 원형훼손지역은 64.5%를 차지한다. 60%가 넘는 관리지역과 원형훼손 지역에 포함된 곶자왈이 여전히 개발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유지 곶자왈 보전방안 중 하나인 토지매수청구도 보호지역에 한정하고 있다. 새로운 조례가 만들어진다 해도 보호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곶자왈은 여전히 개발 위기에서 안전하지 않다. 오히려 관리지역과 원형훼손지라는 이름까지 붙게 돼 자칫 개발 가능한 곳으로 인식해 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걱정마저 있다.

현실에 비추어 조례 개정안이 곶자왈 보전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봄이 필요하다. 이번 한국동서발전(주)이 추진하는 발전시설 사업대상 곶자왈을 보면 조례 개정안이 갖는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개정조례로는 개발사업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은 없다. 개정 조례안을 기준으로 볼 때 해당 사업 부지는 보호지역이 아닌 관리지역과 훼손지역에 해당된다. 생태계보전지구 등급도 대부분 4-1등급이다. 조례에 따른 행위제한 규정으로는 곶자왈 개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없을 뿐 아니라 보호구역이 아닌 관리지역과 원형훼손지여서 사업계획서에 나오듯 오히려 개발 가능한 적지로 인식할 수도 있다.

물론 이곳만이 아니라 곶자왈 가운데 60%가 넘는 곳이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20년에 이르는 곶자왈 보전 운동 과정에서 곶자왈 생태계 등급 강화나 행위제한 강화, 사유지 곶자왈에 대한 매수제도 확대 등 대안 마련 목소리가 이어졌음에도 아직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제주특별자치도나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개정조례안을 졸속으로 통과시킨다면 곶자왈 보전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곶자왈 개발을 가속화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날이 저물자 찾아온 조급함에 자칫 엉뚱한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곶자왈 보전 조례개정안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곶자왈을 파괴하는 개발사업도 멈추길 바란다. / 김효철 논설위원(곶자왈사람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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