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승의 중국통신] 굿바이 세계화!

중국이 무서울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세계 경제를 이끄는 G2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동맹국인 미국, 바로 옆 이웃인 중국 사이에 낀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주의소리>가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 글로벌 리더이자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바로 알기 위해, 중국 경제전문가인 고현승 박사가 쓰는 ‘고현승의 중국통신’을 다시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서울의 봄’이 장안의 화제다. 우리 아픈 현대사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나는 군부정권에서 YS정부로 넘어가던 시기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학내는 세계화와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경쟁력없는 국내산업을 개방하면 다 망한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었다. 어느 봄날, 우연히 모 교수님과 산책을 할 기회가 있었다. “자네, 세계화가 뭔지는 아나? 왜 반대하나?”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를 반대하던 나는 세계화의 수혜자가 되어 있다. 중국유학 중이던 2001년, 중국은 미국의 재촉으로 서둘러 WTO를 가입했다. 유럽은 미국 눈치를 보면서 마지못해 동의했다. 당시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세계화는 중국의 무장해제라며 반대했다. 20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텍사스 폭설로 반도체공장이 서면 자동차 글로벌 공급이 중단되는 시대이다. 한국은 중국의 요소수가 없어 물류트럭이 도로에 서버리는 국가가 되어 버렸다. 

코로나로 닫혔던 중국의 문이 열리고 한국 기업가들이 중국방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불편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내리는 것부터 문제이다. 결제가 안된다. 공항을 벗어나면 택시잡기도 어렵다. 어렵사리 숙소에 도착해서 식사를 하고나니 신용카드는 무용지물이다. 현금도 받지 않는다. 오로지 위쳇페이와 알리페이, 큐알코드만이 유효하다. 어렵사리 위쳇을 설치했다. 그런데 은행카드가 연동되어야 한다. 유니온페이의 벽이 기다리고 있다. 취업비자 없이는 은행에서 계좌개설이 되지 않는다. 중국을 방문하려면 한국에서 미리 위쳇이나 알리페이 앱을 다운받고 신용카드와 연동을 시켜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낭패를 볼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오랜만에 방문하신 분들 덕분에(?) 물주 또는 환전상 노릇을 하고 있다.

2021년, 1년여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를 집어들고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카드는 지급정지되어 있었다. 들어가는 점포마다 직원 대신 키오스크가 기다리고 있다. 익숙하지 않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고 현금으로 지급하고 내렸다. 다시 택시를 잡으려니 카카오택시 앱이 없으면 택시잡기 난망이다.

코로나로 세상이 잠시 멈춰서 있었던 것은 착각이었다. 디지털 장벽이 조금씩 그동안 통용되던 질서를 바꾸고 있었고 다시 문이 열린 순간 짠하고 나타났다. 중국에서 vpn없이는 네이버도 유튜브도 구글맵도 열리지 않으며 중국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우리의 지갑을 대신해버렸다.

디지털 경제에서 모든 소비행위는 소중한 데이터이다. 데이터는 각국의 전략자산이 되어 쉽게 공유하지 않는다. 구글, 페이스북과 우버 등이 중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화웨이가 중국 대표로 조리돌림당하는 이유이다. 각국마다 블록화가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한 그룹으로 힘이 쏠리고 통합될 것이다. 안드로이드와 IOS가 공존하듯이 당분간 각국의 AI 플랫폼과 킬링앱은 경쟁적으로 세를 늘릴 것이다.

1991년 소련연방의 붕괴로 시작된 미국 주도의 세계화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지구촌 가족이라며 휴대폰과 신용카드 하나면 어디에서나 접속하고 지급가능하고 동일한 규격의 물건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따라 운송되던 시대였다. 태생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한국은 이제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별로 맞춘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마케팅전략을 별도로 기획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원가상승과 환율변동은 덤이다.

잘 부각되지 않는 분야이지만 미국과 중국의 표준전쟁이 치열하다. 산업기술표준은 막강한 권력이다. 네이버가 다음을 압도했듯이 누가 더 접근하기 편하고 더 많은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글로벌 표준이 결정된다. 주목할 것이 WIPO(세계지적재산권기구)와 글로벌 기술표준기구에서의 중국 위상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 의하면 중국이 참여하고 있는 각종 국제기술위원회가 2005년 465개에서 2021년 668개로 늘어났다. 영국, 독일에 이은 3위이다. 5G는 중국 주도로 국제표준이 채택되었다. 2018년 5G 표준을 제안한 건수를 보면 삼성과 LG가 6,992개를 중국은 화웨이를 중심으로 2만4,365개를 제안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대표가 국제표준기구(ISO)의 의장을 맡았다. 

최근 미국과 유럽이 중국의 확장에 맞서기 위해 무역기술위원회(TTC) 발족했다. 흥미로운 것은 3대 국제표준기구, 국제표준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이사장을 모두 우리가 맡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위상이 이 정도이다. 쫄지말자!

그동안 우리는 미국산업표준의 시대를 살아왔다. 당분간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30년 이후 그럴까? 미지수이다. 피터 자이한 등 미국의 국가안보전문가들이 그리는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서로 압도할 수 없는 덩치인데다 원자재-생산-소비-금융-기술개발이 모두 역내에서 가능한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하나의 세계로 이어주는 것이 에너지와 달러이다. 글로벌 에너지원은 석유와 가스 등 탄소 에너지이고 사우디, 러시아, 미국, 호주 등에 집중 매장되어 있다. 배터리 소재 광물은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대륙에 있다. 싫어도 같이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대규모 수소매장량이, 중국에서는 희토류와 우라늄광산, 유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다른 국가의존도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페트로 달러패권도 사우디의 실리외교전략으로 금이 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BRICs가 역내 거래에 달러를 점진적으로 배제하고 RMB결재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인구+자원부국(사우스파워)이 부상하고 있다. 세계는 정치적으로 분화하고 있다.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

절대강자가 없는 시기에 적합한 전략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유연성일 것이다. 우리 인류가 맞닥뜨린 팬데믹의 원인으로 자유로운 이동, 기후변화 심지어 테러 혐의까지 들지만 보다 중요한 것이 생물다양성, 유전자 다양성의 소멸이라고 지적된다. 비슷비슷한 유전자와 건강상태이므로 돌연변이의 체내 침투에 인류 모두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외교안보 경제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외부 환경은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다양해지는데 한 방향을 바라보고 달려서는 너무도 위험해진다.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생존을 위해 끝없는 의심과 뒤틀어보기가 필요하다. 한국 뉴스에서 접하는 우크라이나는 1년째 서방의 지원으로 반격 중인데 전장은 여전히 우크라이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압도하고 처참한 피의 보복을 하고 있다는 데 왜 휴전을 하는 것인지? 무디스가 중국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하고 부동산 위기, 천문학적 지방부채로 이번에는 정말 망한다는데 올해 GDP 성장률은 예상보다 높은 5% 중반이란다. 반면 글로벌 유일의 경제활황을 보인다는 미국의 신용등급은 한 단계 강등됐고 정부부채는 역대 최대이며 달러화의 지위는 도전받고 있다. 

어느 외교전문가가 분석한 내용이 귀에 들어온다. 엑스포 유치전에서 부산과 로마가 얻은 표가 46표(29+17),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 제재에 찬성한 국가가 40여 국, 이게 소위 미국 편에 서 있는 국가의 수라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소그룹으로 분화되었다는 의미다. 

얼마 전 UAE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회의는 화석연료 퇴출을 합의하지 못하고 폐막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입김이 컸다고 한다. 기후변화대응이야말로 인류의 생존이 걸린 당대의 최대 가치일 것이다. 가치동맹이라면 이 주제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세계는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사우스파워까지 부상하며 권력지형이 입체적으로 분화되고 있다.

도박이나 주식투자에서 몰빵을 하면 할수록 잃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수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래서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최적의 분산비율을 ‘켈리의 법칙’이라고 하며 오래된 투자기법이다. 몰빵은 위험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했을 때, 영국 청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독일을 쳐부수고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광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고 수십만명이 자원 입대를 했다. 하지만 전쟁은 차가운 참호 속 영국청년의 시체들을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딱 100년 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광기의 시대 직전은 유럽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화려했던 벨 엘포크시대였다. 무지한 열정은 더욱 위험하다. 

최근 교수협회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 이익을 앞에 두면 의를 저버린다는 의미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끝난 세계에도 해당된다.

#고현승

제주 출신으로 제주대(행정학과)를 졸업, 중국복단대학교 법학원에서 석사(민상법), 화동정법대학교에서 박사학위(경제법)를 땄다.

2009년부터 대광경영자문차이나(삼화회계법인 중국지사) 대표를 맡아, 중국기업의 한국증시 상장과 한국기업의 해외투자 설계 및 법무 컨설팅, 중국기업의 한국 투자설계 및 법무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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