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국립 슬로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with 선우예권’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드보르자크 음악을 계승한 국립 슬로박 필하모닉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만나 ‘동유럽의 명품 하모니’를 선보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드보르자크의 작품을 비롯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랩소디’,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 알렉세이 쇼어의 곡을 세계 초연하는 등 초겨울의 서정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구성했다.

국립 슬로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고전주의 음악의 거장이자 슬라브 음악의 아버지인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정통하게 계승해온 동유럽의 대표적 악단이다. 1949년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의 첫 국립 오케스트라로 설립됐으며, ‘체코 지휘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츨라프 탈리헤이의 지휘봉 아래 범세계적 음악스타일을 지양하고 슬라브족 특유의 민족적 음색에 집중해온 악단이다.

알렉세이 쇼어의 피아노협주곡 ‘여행노트’는 정형화된 클래식 협주곡의 형태가 아닌 7악장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주제가 분명히 있던 곡으로, 여행노트라는 말처럼 7악장을 듣는 동안 각각에 맞는 여행이 떠올랐다. 실제로 ‘여행노트’는 알렉세이 쇼어가 방문한 세계 여러 도시인 바르셀로나, 로마, 파리, 베니스, 이탈리아 라벤나, 영국 애스콧 등지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작곡된 시기가 비교적 최근이기도 하고 많이 연주되는 곡은 아니었지만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고, 이렇게 좋은 작품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또한, 선우예권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역시 빠른 템포와 엄청난 기교에도 굴하지 않고 편안하게 연주를 하였고, 모든 어두움을 극복하고 환희와 승리를 향하면 화려한 불꽃이 있을 것이라는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 같은 연주였다.

김경민 기획자
김경민 기획자

마지막 곡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으로 협주곡이 끝나고 교향곡은 오케스트라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슬라브 정통 사운드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던 명품하모니를 선보였다.

이번 ‘국립 슬로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with 선우예권’ 제주 공연은 도민들에게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고, 클래식 애호가들의 심금을 울린 갈증을 완벽히 해소해주는 연주였다. 연주시간이 길어서 그랬는지 쏟아지는 박수에도 앙코르가 없었던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 김경민(제주문예회관 공연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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