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석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

문제의 원인이 된 사고방식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을 먹이사슬의 정점에 놓고 생명과 자연을 도구로만 여기는 세계관은 우리 본연의 연민과 자각을 축소하고 마비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든 세계관이다. 비건채식은 단지 음식의 전환이 아니라 사고방식 즉 세계관의 전환이다. 그리고 자신을 자기중심적인 에고가 아닌 영성과 생명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을 본래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혁명이다. / 한국 채식문화원

우리는 문화 속에서 태어나 문화 속에서 성장한다. 또한 문화는 우리 안에 존재한다. 인류는 문화시스템에 배태되어 있고 문화에 의해 형성되고 제약을 받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삶의 현실 문화 안에서만 행동한다. 델포이 신탁의 경구‘너 자신을 알라’처럼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문화를 알아야 하고 문화를 알면 자신을 알 수 있다. 모든 문화는 밑바탕에 문화를 전제하는 정신이 깔려있다. 

인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음식을 통해 한 사회의 규범 가치 정신이 세대와 세대로 전달된다고 한다. 음식은 친밀함의 은유이고 먹는다는 것은 가장 정교한 사회의식이다. 음식은 경제의 토대이자 인류 내면 문화의 상징이다. 또한 인간을 대지의 신비와 자연과 연결하며 그 관계를 반영하고 전파하는 주요 통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음식을 돌아보는 것은 자신과 문화의 심장부를 들여다보는 모험이다. 먹는다는 것은 근원적이고 무의식적 차원에서 문화적 가치와 패러다임에 참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행성의 우주인이 지구를 탐사한다면 오늘 이 시간 지구에서 벌어지는 가장 중대하고 인상적인 사건이 무엇이라 바라볼까? ‘하루 수십억의 동물들이 도살당하고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이 뉴욕 타임스나 어느 신문의 헤드라인이 결코 되지 못하고, 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이 과연 테러리즘이나 지구온난화, 생물 다양성, 기아, 양극화, 비만 등등 보다 훨씬 덜 중요한 이슈일까? 왜 인류사회는 그것을 그토록 과소평가하는 걸까? 

이는 문화의 타부와 관련되어 있다. 어떤 문화건 음식은 장막속에 가려져 있으며 음식 특히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이다. 음식은 부모나 가족 문화에 의해 강요되고 ‘주어진다’. 대표적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인류가 온갖 신화를 창조하게 된 이유는 동물을 살해해 고기를 먹는 두려움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가 고기를 먹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시되고 있는 사회적 규범이나 질서(order)에 따른 결과이다. 마치 매트릭스처럼 문화의 프로그램에 세뇌되어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동물의 가축화와 인간의 노예화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다. 

문화적 제약에서 벗어나 질서가 의미하는 공적 담론에 의문을 갖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현대사회는 아직도 목축문화의 영향권에 있다. 이 문화는 만 년 전에 일어난 혁명에서 태동하였다. 산업혁명이나 과학혁명과는 달리 이 혁명은 무려 2000~3000년에 걸쳐 인류 역사에 지속하며 인간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느리고 강력한 혁명이었다. 

1만 년 전에 문명의 발생지인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서 인류는 최초로 양을 가축화하기 시작했고 염소, 소, 말 등이 차례로 가축화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신성하고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생명체는 오랜 기간을 통해 사물-그것으로 축소되기 시작한다. 특히 암컷이 많은 젖과 생식에 관련되다보니 먼저 축소되고 모든 가축이 그 뒤를 따른다. 야생동물조차 가축을 노리는 유해동물로 축소된다. 가축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고 인간도 덩달아 축소된다. 암컷과 새끼가 먼저 축소되듯 특히 여성과 아동이 빠르게 축소된다. 

3000년 전 가장 오래된 역사적 기록물에는 공통적으로 억압적 가부장제와 사유재산, 그리고 부와 자본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이 등장한다. 자본이란 단어는 소와 양의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카파타’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인류사회에 두 가지 제도가 잇달아 발생하는데 하나는 전쟁이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을 가리키는 ‘가비아’는 ‘더 많은 소를 가리키는 욕망’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노예화다. 전쟁에 승리한 자는 상대편의 가축을 소유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다. 

이렇듯 가축화가 가져온 축소와 환원주의 혁명은 전 세계로 퍼져 현재 인류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배적 위계 구조를 낳고 오늘날까지 진행 중이다. 즉 경쟁, 분리, 전쟁, 가부장제, 자본주의, 속도, 이동성 등등은 유목문화의 유산이다. 그리고 동물의 가축화와 인간의 노예화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다. 동물에게 자행하는 폭력이 노예, 여성, 이민족, 식민지 원주민 등 약자인 인간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이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근대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의 토대와 심리적 기틀도 유목문화에 뿌리내려 있다. 오늘날 육식 문화는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의 제도와 기술의 허울 속 깊은 곳에 모습을 숨기며 광범위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콘아그라, 몬산토, 맥도날드, 카킬 등 거대 다국적 거대기업들은 영향력은 전방위적이고 지구적이다. 기업, 언론매체, 정부, 식품업체, 의료, 제약, 영양학계 등등도 총망라되어 목축문화를 확산시키며 고기 먹는 것을 광고하고 사실상 강요한다. 마치 지구 전역에 살인 기계를 가동하듯 하루 수십억의 동물을 살해한다. 심각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아 그 실체를 알아차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그런 점에서 육식 문화의 폭력성이 더 내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외부적으로는 육식의 파괴적 후유증은 인간사회부터 심해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와 문화의 전반에 걸쳐 있다. 기후위기와 펜데믹, 생물다양성 파괴 및 자원 고갈은 물론, 인간이 얻는 칼로리의 18%를 얻기 위해 전 세계 농경지의 80%를 사용하고 10억명은 굶어죽고 20억명은 배불러 아파 죽는 등 그것도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제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육식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자원 고갈, 펜데믹 등이 극심하고 육식이 지속가능성 위기에 중심에 놓여 있음이 명백함에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인류사회가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하는 이유는 뭘까? 오늘날 육식 산업이 제도 중심에 단단히 뿌리내려 있어 웬만큼 반기를 들지 않고서는 변화를 주거나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어려운 것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온 목축문화의 세뇌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유목문화의 세뇌로 인한 육식문화의 내면화  

특히 육식의 파괴적 영향으로 인한 지속가능성 위기뿐만 아니라 육식 문화의 내면화는 현대사회의 온갖 곤경과 위기를 해결할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근원적으로 차단한다. 동물성 음식이 우리의 영성과 창의성과도 연결되어 인간 감정과 심리에 끼치는 영향 가운데 대략 네 가지만 검토해 보자.

첫째, 축소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먹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연습이 장인을 만든다는 옛말이 있듯이 하루 세끼 동물의 살을 먹으며 자신도 모르게 생명체를 사물로 보고 상품으로 보는 훈련을 한다. 이는 오늘날 인간과 자연을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보고 협력과 조화보다는 경쟁에 익숙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둘째, 감수성과 연결의 단절이다.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감각해야만 햄이나 고기를 삼킬 수 있다. 누가 햄이나 고기를 먹으면서 ‘그 돼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소는 어떤 존재였고 그 새끼들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묻지 않아야 음식섭취가 가능하다. 반복적 식사행위는 무의식적으로 감수성이나 연결을 무디게 하고 단절토록 한다. 

셋째, 매끼 식사를 통해 우리는 특권의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동물의 살을 먹으며 동물은 하등이고 인간은 우월하다는 전제에 젖는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인간을 올려놓듯 소수가 부와 자원을 대부분 독점하는 약탈적 경제체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피아(Sophia)의 억압이다. Sophia는 인간 본성의 신성한 여성성을 뜻하는 단어로 양육하고 돌보고 배려하는 사람의 본성을 일컫는다.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양육과 풍요의 여신이었고 인간 내면의 여성적 힘 또는 지혜를 상징한다. 철학이란 단어 Philo+Sopia는 ‘소피아에 대한 사랑’이란 뜻이다. 이 소피아의 억압은 인간의 지성과 창조력, 창의성의 발현을 근본적으로 막을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 황폐해진 생태계, 후손에 끼치는 고통과 단절하는 데도 익숙하게 된다. 

‘비건채식으로 지구를 살립시다’ 등 구호를 외치며 ‘2023 세계 비건채식 기후 행진’을 하는 국내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비건채식인들. 이러한 캠페인은 선진국 곳곳에서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다. / 한국 채식문화원

비건적 삶은 고대의 전통과 현인들의 가르침 속에 살아 숨 쉰다. 비건은 ‘아힘사(비폭력 Ahimsa)’와 황금률을 현대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모든 고대 영적 전통과 지혜는 공통적으로 연민과 상호 연결의 원리를 얘기한다. ‘네가 대접받고 싶지 않은 것을 상대에 강요하지 말라’ ‘뿌린 대로 거둔다’ ‘사랑을 원하면 사랑을 베풀어야 하듯, 풍요를 원하면 먼저 관대해져야 한다’ 나아가 모든 고대 영적 전통과 지혜는 원수를 사랑하고 모든 존재는 인연의 끈으로 연기하는 한 생명이며 만물은 둘이 아니고 한 몸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부각되는 폭력, 이혼, 자살, 약물중독, 비만, 스트레스 등 숱한 것들은 성찰해보면 모두 것이 우리가 오로지 수익을 위해 고기를 빨리 살찌우기 위한 과정에서 동물들에 가한 행위들이다. 인공수정을 통해 강제 임신시키며 갓 태어난 새끼들을 떼어놓고 온갖 항생제를 투여한다. 공장식 사육환경과 도살과정은 동물들에 엄청난 두려움과 스트레스 분노 등을 야기한다. 고기를 먹는 것은 이 보이지 않는 독성도 먹는 것이다. 동물들에 가한 폭력은 부메랑이 되어 인간사회 곳곳에서 똑같이 발견된다. 

그런 면에서 동물을 식용으로 삼아 학대하는 행위는 단연코 우리 문화 최대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사실 끔찍한 것은 동물의 고통과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석음이다. 고기를 먹는 것은 본연의 생명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을 짓뭉개고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일종의 집단적 죄의식을 형성하고 이 집단적 죄의식은 우리가 먹는 폭력을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조장한다. 지구적 생태계 파괴, 소비지상주의, 여성억압, 인종차별, 약물중독 등은 어떤 면에서 소위 그림자의 외부적 투사이다. 

동물을 살해하는 일은 인간 본연의 연민과 직관을 외면한다. 목축문화의 제약의 환상의 틀을 뛰어넘어야만 본래의 지혜와 평화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은 문화의 타부와 공적 담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가능하다. 비건 운동은 문화에 내재한 폭력과 미망에 대한 영적 각성이자 기존 담론에 대한 이의제기다. 우리가 사회나 문화로부터 육식을 강요받듯이 비건 운동이라는 대안적 공동체의 도움으로 누구나 문화적 금기를 깨고 인간 본연의 감수성과 연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의문 제기에 힘과 용기를 서로 격려하고 북돋음을 받을 수 있다. 

인류사회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모색해 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소중하고 모든 생명은 신성하며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물종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생명의 그물을 찢어놓는다면 그 덫은 곧 우리의 존재 자체에 구멍을 뚫어놓는 짓이 된다는 인식이다. '음식을 선택하는 인식의 질'은 이러한 인식을 심화하고 확대하며 널리 전파하는 강력한 진원지가 될 것이다. 비건적 삶의 동기는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이다. 외면적으로는 ‘비건’이라 부르지만 사실 상호연관성에 대한 자각의 표현일 뿐이다. 모든 존재가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진실에 기반하여 보다 사려 깊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이 시기에 비건은 이 세상과, 인류, 다음 세대, 동물,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 중 하나이다.   


# 고용석 비건채식운동가. 
1994년, 환경·시민·종교단체가 총망라된 국내 최초의 국제 채식 심포지엄 ‘채식이 지구를 살립니다’와 미래진단 세미나 '퓨쳐비젼'을 비롯하여 3차례 세계를 연결하는 지구온난화 글로벌 컨퍼런스 등 창의적이고 선구적인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왔다. 세계 NGO대회와 유엔 사막화와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총회 등에 참여하며 방한 종교 및 환경 지도자들의 통역 일과 컬럼리스트와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채식관련 자문위원과 부산 식생활교육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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