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9일은 제주 행정사에 새로운 한 획을 긋는 날이었다. 20여 년간 도민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기초자치단체 신설 가능성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날 국회에서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주민투표 시행 근거를 담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주장했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제주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기초자치단체인 4개 시·군을 없앴고 단일 광역자치단체로 출범했다. 국제자유도시의 성공적 추진, 중복행정 방지, 예산의 효율적 투자, 지역 간 균형발전 도모, 기초의회에 대한 실망 등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이다. 하지만 간과한 것은 자기 결정권과 주권재민의 상실이다. 도민들은 그간 기초자치단체 폐지의 목적도 충분히 달성치 못했다고 생각했다. 제왕적 도지사 등장과 과도한 책임감, 지역 간 불균형 심화, 주민의 민원 처리에 대한 불만 증폭, 행정의 무책임성과 떠넘기기 등이 나타났다. 한마디로 주민이 주인으로 대접받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선거철마다 기초자치단체 도입 등이 공약으로 제시됐다. 

기초자치단체는 없애기도 어렵지만 다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더 어렵다. 지난 5~7기 제주도정이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해 중앙정부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부됐다. 그런데도 오영훈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에, 이전의 제주도정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시도했다. 행정체제 개편안 마련, 중앙정부 설득, 주민투표 등의 순서가 아니라 제주특별법에 주민의견을 묻는 근거를 우선적으로 두는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는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에 버금가는 사고의 대전환이었다. 

이후 오영훈 지사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핵심공약으로 제시하고 당선됐다. 취임 후 제왕적 도지사 권력의 맛에 취해 자칫 추진 시늉만 할 수도 있었지만, 진정성을 갖고 강력히 추진해 나간 것이다. 기초자치단체 신설은 가능할까? 하는 부정적 생각과 관련 특별법 개정 역시 불가능하다는 도민사회의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제왕적 권력보다는 도민들을 위한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제주의 지속적인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추진했다. 그 결과 특별법 개정의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오 도정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상당히 많다. 오 도정의 참여적 리더십 아래 가칭 '제주 행정 체제 개편 실무단'을 구성해 도민들의 지혜를 모아 함께 해결해 나가면 된다. 

첫째, 행정체제 개편안에 대한 제주도 안을 확정해야 한다. 연구진들은 현재 3개의 기관대립형 기초자치단체를 제시하고 있다. 아직도 도와 신설 기초자치단체 간의 역할 정립과 사무 배분은 정리 중이다. 기존과는 달리 여전히 국제자유도시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사무 배분은 그 전제이다. 또한 그간 위임된 사무와 권한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국제자유도시 개발 사업과 전담기관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제주 이관도 검토돼야 한다.

둘째,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안이 도지사에게 제출되면 도의회와의 협의를 통해 제주도 안을 확정하고, 도민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주민투표 방식도 결정해야 한다. 주민투표법상 방식은 한 가지 안에 대한 찬반을 묻거나 2개의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 있다. 제주형 기초자단체의 핵심은 기관 구성 형태, 자치구역 수와 구역 획정, 사무 배분이다. 이 세 가지 분야를 각각 개별적으로 주민투표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도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이 세 분야를 하나로 묶은 행정체제 개편안을 확정하고 이에 대한 찬반을 묻거나 아니면 현 체제와 행정체제 개편안 중 선택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세 분야에서 각각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이로 인한 충돌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나마 합리적인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셋째, 주민투표 실시 요구를 위한 중앙정부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자치단체 신설은 행안부 장관의 요청 없이는 이의 출발인 주민투표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특별법 개정을 통해 어느 정도는 제주도와 중앙정부 간의 묵시적 정치적 합의가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도민들은 주민투표 요청 주체에서 제주도가 빠져 의미가 없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특별법은 대상과 주체가 제주도이고 제주도민이다. 반면에 주민투표법은 일반법으로 전국과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주민투표법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계층구조 개편에 제주의 주도성을 인정한 것이다. 나아가 기초자치단체 신설에 대한 강력한 거부에서 수용 가능성으로의 전환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 도입 논리가 필요하다. 

행정체제 개편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의 안을 토대로 좀 더 치밀하고 과학적인  논리를 개발·보완 돼야 한다. 이외에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가능하다면 주민투표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사전투표 방식도 도입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외에도 세밀하게 챙겨야 할 일이 많다. 갈 길이 멀지만 위대한 제주도민의 역량과 지혜가 모아진다면 다음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시장·군수와 기초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 양덕순 제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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