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92) 강대철, 강대철 조각토굴, 살림, 2022.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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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기원은 종교다. 종교는 삶과 죽음에 직면한 인간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간과 생명과 우주에 대해 기도하며 사유하고 실천하는 삶의 태도이자 방법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종교의 기원과 변이, 존재 방식 등은 각기 상이하지만 간절하게 염원하는 기도의 마음이라는 공동분모는 큰 틀에서 대동소이다. 염원과 기도의 마음은 예술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역사시대는 물론 선사시대의 유물과 유적들에서도 인간의 염원과 기도를 담은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종교적 제의와 예술이 밀접하게 관계를 맺은 것은 수천, 수만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쌓아온 인류 문명의 뿌리였거니와 불과 100~200년 전의 전근대 시기에까지 이르는 인간 삶과 사회의 기본 틀이었다. 근대와 탈근대 시기의 예술에서도 종교는 여전히 강력한 구심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종교만이 아니라 예술의 주요 의제이기 때문이다. 비록 종교가 예술에게 직접 주문하던 방식의 종교예술은 당대 예술의 주류에서 빗겨나 있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이 종교적 의제와 겹치는 삶과 죽음, 생명과 우주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건 부동의 사실이다. 

조각가 강대철(1947~)은 2005년에 불현듯 전남 장흥 사자산 자락으로 터전을 옮기고 농부로서 삶을 시작하기 전까지 서울의 주류미술계에서 활동하던 예술가였다.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 신앙의 어머니 영향으로 철저하게 기독교 문화 속에서 성장한 그는 종교적 심성에서 비롯한 염원과 기도의 의제들로 각광받는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특히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스님의 생가 터에 위치한 성철스님기념관 건립계획과 불상조형 불사에 참여했으며 성철스님 존상을 제작하는 등 불교미술에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강대철의 조각토굴은 장흥의 농부예술가로서의 평온한 삶의 과정에서 우연한 계기를 맞아 시작되었다. 작업실 옆의 산자락에 작은 토굴을 파고 명상 공간으로 쓰고자 시작한 작업이 이렇게 큰 일로 번졌다. 토굴을 파기 시작한 곳이 점토 지질이어서 토굴만이 아니라 조각을 하기에 알맞다는 것을 알아낸 강대철은 불교적 세계관을 아로새긴 토굴 작업을 시작했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함께 있는 문제의 장면을 만들어낸 첫 작품부터, 그는 생명과 우주의 정신성을 일깨우는 예술적 메시지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근원의 자리’라는 의제를 앞세운 강대철 조각토굴은 다음과 같은 일곱 개 공간과 의제를 담고 있다. 

첫 번째 굴: 생각, 감정, 오감이 만드는 에고
두 번째 굴: 지금 여기 현존이 실상이다
세 번째 굴: 오온(五蘊)을 징검다리 삼아
네 번째 굴: 무상(無常)을 넘어서
다섯 번째 굴: 나의 실체, 그 안에서 불성(佛性) 찾기
여섯 번째 굴: 육바라밀과 더불어 지혜의 문으로
일곱 번째 굴: 연기(緣起)의 작용, 그리고 화엄의 세계

기독교인 출신으로서 불교적 세계관에 관한 깊은 이해로 깨달음을 얻은 예술가답게 뭇 종교의 관점을 두루 꿰어낸 사유와 성찰이 돋보이는 구성이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상을 그려놓고 파들어 갈 수 없었거니와 점토지질이 허락하는 대로 파 들어가면서 조각을 아로새긴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봤을 때, 이 작품은 한 예술가 개인이 곡괭이와 삽과 손수레로 혼자 만든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다. 매일 10시간 이상씩 기도하는 마음으로 흙을 파내고 다듬으며 수행해온 이 작품에 대해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다운 발상과 표현이 담겨있는 이 책은 종교에서 과학으로, 과학에서 예술로 그 정신문화의 원천을 확장해온 우리 인간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생명과 우주의 대서사이다.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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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현(現) 광주시립미술관장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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