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50) 학생 자치의 제주 교육을 그려본다

지난달 말부터 제주지역 대부분 초·중·고등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리고 있다. 해당 과정의 졸업식은 학생들에겐 평생 한 번뿐인 행사다. 졸업식은 이별의 시간이며 만남의 시간이다. 사람과 함께 공간과도 이별하게 된다. 지나온 시간과 만나고 새로운 만남의 시간을 예비한다. 졸업식에는 함께 시간을 보낸 벗들과 지지하고 응원해 준 이들이 함께한다.

졸업식에서 학교를 대표하는 교장 선생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제주에서 아주 특별한 졸업식이 있었다. 교장과 교감이 졸업식 참석을 거부당하고 졸업장에는 교장의 직인도 빠졌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지난달 29일 열린 제주 모 고등학교 졸업식 풍경이다. 교내 화장실 불법촬영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2차 가해와 구성원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신뢰를 떨어드린 교장과 교감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학생들의 요구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며 학생들과 교사들이 여전히 당하고 있을 고통을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웠다. 오죽했으면 교장과 교감을 졸업식에 오지도 못하게 했을까. 교육청에서는 학교 구성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조속히 해결하고, 이번 사건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인식하고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드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속상한 마음 한편에선 졸업식 준비과정에서 학생들의 이런 의견이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졌다는 것이 반가웠다. 

학생 인권이 과도하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학생들의 학교 운영에 대한 참여는 여전히 미진한 실정이다. 학교 운영을 위해 각 학교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법으로 정해진 기구다. ‘초·중등교육법’ 제4장 제2절(제32조에서 제34조의2까지)에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설치와 기능, 구성과 운영 그리고 운영위원의 결격사유 등을 정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의 예산안과 결산은 물론이고 학교교육과정의 운영방법부터 대학입학 특별전형 중 학교장 추천 사항까지 심의한다. 학칙이나 학교헌장의 제정과 개정도 심의한다. 학교 운영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학교의 운영을 책임지는 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의 자리는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학교운영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8조에 나타나 있다. 학교운영위원은 학생 수에 따라 학교별로 5인 이상 15인 이내로 구성한다. 그리고 해당 학교의 학부모를 대표하는 학부모위원과 교원을 대표하는 교원위원, 해당 학교가 소재하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역위원으로 구성하고 그 비율도 정해져 있다. 학부모와 교원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지역사회 인사도 참여하니 뭔가 열린 구조로 보인다. 하지만, 학교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학생이 빠져있다. 지역의 경우 조례에 따라 그 비율을 따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제주특별자치도 학교운영위원회에 관한 조례’에는 관련 법을 그대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 학생들의 회의 참여는 위 조례 제13조(의견수렴) 제2항의 “운영위원회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학생 대표 등을 회의에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경우 뿐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해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한국의 제도는 문제가 많다. 참관은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참관과 참여는 다르다. 지켜보는 이와 함께 하는 이는 같을 수 없다. 학생은 학교 운영을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학교 운영을 함께 하는 주체이다. 자치는 참여를 기본으로 한다. 학교 자치는 학생과 학부모, 교원이 함께 참여해 운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하지만, 현행 학교운영위원회는 학생을 자치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지 못하다. 학교운영위원회 근거 규정의 모법이 되는 ‘교육기본법’ 제5조 제3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존중하여야 하며, 교직원·학생·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이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고로 이주호 교육부장관도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인 2005년에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학생 참여를 보장하고자 했다.

역사적으로 한국사회 학생들이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시민혁명의 주체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을 미숙한 존재로 인식하고 자치의 역량이 없는 존재로 부가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한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참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 시절의 자치 경험 부재는 시민참여의 효능감을 배울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다. 작게는 살아가고 있는 아파트 자치회부터 지역 의회에서, 국회까지 참여의 기회는 늘 열려있는 것 같지만 관심 밖 남의 일이 되어버리는 원인 중 하나는 학생 시절 자치의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사람이 교장 선생님으로 오고, 학생들이 원하는 교칙을 만들 수 있다면 정치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마음 아픈 일이지만, 큰 사고가 났을 때만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자. 늘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자. 학교 자치에,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의 참여를 의무화하자. 그리고 학칙과 같은 일들은 학생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학생자치는 더욱 강화해나가고 학급 자치로 일상적 자치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찾자.

김광수 교육감은 올해부터 교육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교육발전특구’를 적극 추진해보겠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제주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지역들처럼 똑같이 공부 잘하는 아이의 비중을 1%에서 1.2%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의 참여로 학교 자치가 이뤄지는 자치의 경험을 확장하는 데 있지 않을까. 모 고등학교의 졸업식은 학생이 참여한 자치기구가 내린 결론이 얼마나 현명했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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