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주체 모호, 캠프 관여 시 기획 선거운동으로 판단
제주 정가 “차라리 지지선언이 전면 금지됐으면” 푸념도

지난해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잇따른 오영훈 제주도지사에 대한 지지선언이 유죄로 판단되면서 지지선언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난 22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오영훈 지사에게 벌금 90만원, 정원태 중앙협력본부장에게 벌금 500만원, 김태형 대외협력특보에게 벌금 4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또 사단법인 대표 B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경영컨설팅업체 대표 B씨에게는 벌금 300만원에 추징금 548만2456원을 부과했다. 

오영훈 지사에 대한 혐의 중에서는 2022년 5월16일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진행된 ‘상장기업 20개 만들기’ 관련 간담회와 협약식(사전선거운동)에 참석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반면 정 본부장과 김 특보는 제주 보육계와 청년, 촛불백년, 121개 직능단체 등의 지지선언에 직접 개입했다는 혐의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2022년 4월 잇따른 오영훈 당시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이 선거운동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유권자들의 순수한 지지선언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판단이 나온 이유는 지지선언을 주도한 사람들이 오영훈 캠프에서 선거사무원으로 등록됐거나 선거사무원에 준하는 일을 했다는 점 때문이다. 또 주도한 사람들과 정 본부장, 김 특보가 연관되면서 두 사람에게 유죄 판결이 나왔다.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캠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지지선언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일반 유권자들이 봤을 때 선거운동과 다름 없다는 취지다. 

이번 사건 심리 과정에서는 지지선언에 참여한 인원과 단체 등이 허위로 추산됐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지선언을 주도했다고 밝힌 증인들마저 ‘오영훈을 좋아하느냐’고 묻고 ‘그렇다’는 취지의 답변이 나오면 지지선언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진술한 바 있다. 수천명이 지지한다고 했지만, 지지자 명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의 순수한 지지선언이라면 나름의 주체가 존재해야 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검찰의 공소사실 중 대학교수들의 지지선언은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학교수 지지선언은 양덕순 제주연구원장과 허남춘 교수가 각각 서로 주도했다고 증언한 바 있으며, 이들은 지지선언문에 함께하는 전·현직 교수들의 실명을 기재했다. 

반면에 보육계, 청년, 촛불백년, 121개 직능단체 지지선언문 초안이나 인원 모집은 오영훈 캠프와 관련된 사람들이 주도해 순수한 지지 선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생각이다. 

각 후보에 대한 지지층이 두텁다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지지선언은 순수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취지로, 각 선거 캠프는 지지선언에 관여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와 같다.

법원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주체와 의사형성 과정이 불분명한 지지선언은 ‘기획된 선거운동’과 다름없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둬 언론에 제공된 특정 후보 지지 1219명 명단. 명단에 포함된 인원 중 47명만 실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둬 언론에 제공된 특정 후보 지지 1219명 명단. 명단에 포함된 인원 중 47명만 실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번 판결로 인해 그 동안 각종 선거 때마다 경쟁적으로 행해지던 지지선언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게 됐다.  

선거철마다 제주에서는 각 후보 캠프별로 각종 연고를 동원한 지지선언이 이어지곤 했다. 지지선언을 주도해 선언문을 낭독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해당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대부분 선거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주변인들을 모아 지지 기자회견을 갖거나 지지선언문을 발표하는 형식이다. 

‘OOO를 사랑하는 모임’이나 청년, 중년, 주부, OO계 등 그 주체성도 모호하고, 참여한 지지자가 몇 명인지조차 불분명한 경우도 허다했다. 

이번 사건 말고도 제주에서 지지선언의 민낯이 드러난 사례는 꽤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원 1700명이 후보 단일화를 촉구했다는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1700명 이름에 포함된 지지자들이 ‘도용됐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2017년 대선때는 ‘OOO을 지지하는 제주지역 청년’ 1219명의 지지선언이 있었지만, 실제 동의한 사람은 47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해 제주도교육감 선거 때도 ‘제주교육사랑청년모임’ 이름으로 특정 후보 지지 기자회견이 이뤄졌는데, 해당 모임의 실체가 없다는 법원이 판결이 나왔다.   

오영훈 캠프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거의 모든 선거 캠프가 비슷한 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정가에 오래 몸담은 A씨는 “지지선언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하나의 조직으로 봐야 한다. 후보와 인연이 있거나 이해관계 등이 얽혀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지지선언이라는 명목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B씨는 “지지선언은 후보들간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상식적으로 순수한 의도를 갖고 지지선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나.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고, 자신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후보에게 보여주기 캠프를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며 “이번 판결로 정가가 지지선언 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이다. 차라리 전면 금지되면 더 속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앞으로 지지선언자들의 주체와 의사형성 과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 기획 선거운동 여부를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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