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94) 천하, 세계와 미래에 대한 중국의 철학
자오팅양(趙汀陽) 저, 김중섭 역, 이음, 2022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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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세계와 미래에 대한 중국의 철학’

무슨 뜻인가? 제일 먼저 뇌리에 떠오른 것은 두 가지 확신과 한 가지 의심이었다. 20세기 초엽 서구의 민주와 과학에 열광하던 이들의 반격, 서세동점西勢東漸에서 동세서점으로의 점등, 그리고 세계주의와 패권주의의 관계. 저자가 궁금했다. 자오팅양(趙汀陽). 중국 인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철학자 리저허우(李澤厚) 지도하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현재까지 같은 연구소 연구원 겸 인민대학 철학과 박사논문 지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경대, 청화대 철학과 강좌교수이자 중국 국무원 특별지원학자, 미국의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베르그루엔 연구소(Berggruen Institute) 선임연구원, 유럽 다문화연구원(Transcultura Institut European) 학술상임위원. 동서양을 넘나드는 철학영역에서 저서 10여권(영문 포함), 논문 100여 편을 내놓았다. 서구 사회는 그를 중국의 하버마스라고 부르고, 중국 학계는 사상의 창조력을 유지하면서 중국 지식체계 건설에 양질의 성과를 거둔 연구 분야의 선도자라고 평한다. 역서에는 원저의 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니, 원저의 제목은 ‘천하의 당대성當代性: 세계질서의 실천과 상상’이다. 역서의 제목과 원서의 제목이 약간 다르다. 역서의 제목이 원서의 제목을 앞질러 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오高傲하나 허명虛名인 천하天下

‘천하’는 말 그대로 하늘 아래의 뜻이다. 쉽게 말해서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겐 고대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 조공朝貢 등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굳이 ‘천하’인가? 중국 선진시대 주周나라에서 비롯된 이 개념의 내력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하늘 아래 온 세상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강과 바다에 접한 모든 세상에 왕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시경·소아小雅·대북大北’에 나오는 말이다. 좌구명左丘明은 ‘좌전·소공昭公7년’에서 “천자는 경략經略(천하를 다스림)하고, 제후는 정봉正封(봉토를 다스림)하는 것은 예로부터의 제도입니다. 봉략封略 안에 어느 곳인들 군주의 땅이 아니며, 봉토의 땅에서 나는 곡물을 먹는 이들(食土之毛)로 누구인들 군주의 신하가 아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앞의 ‘시경’ 구절을 인용했다. 그는 또한 하늘에 10일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열 개의 등급이 있으니, 왕, 공, 대부, 사士, 조皁(하인), 여輿(마부), 예隸(노예), 僚(관노官奴), 복僕(노복), 대臺(노예) 등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주나라 천자는 하늘의 아들(天子)답게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소유한 듯하다. 하지만 주나라의 천자는 천하의 공주共主로서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으되 명목상 그러했을 뿐이고, 실권은 그 아래 귀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귀족은 다시 제후諸侯, 경대부卿大夫(경은 대부보다 직위가 약간 높고 토지 또한 약간 많다), 사士로 나뉘는데, 천자는 동성同姓(희성姬姓)의 친족들과 은상殷商을 멸망시키는 데 공적으로 세운 타성他姓의 우두머리들에게 제후라는 작위를 내리고, 영지와 속민을 하사하여 번국을 세우게 했다. 이것이 바로 “작위를 주는 것을 봉이라 하고 작위 등급에 따라 영지와 속민을 하사하여 번국을 세우게 하는 것을 건이라 한다(列爵曰封,分土曰建)”는 뜻으로 ‘봉건’의 유래이다. 제후 역시 아래 경이나 대부들에게 천자가 한 것과 같이 작위를 내리고, 식읍을 주었다. 이것이 중국식 봉건제의 실질이다. 이렇게 제후가 세운 나라를 국國이라 하고, 경대부가 세운 나라를 가家(家邑)이라고 하였으니 국가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천원지방天圓地方과 오복五服, 그리고 구주九州 

고대 ‘천하’ 개념은 천원지방, 오복, 구주의 관념과 같은 맥락에서 형성되었다. 

천원지방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으로 ‘대대례기大戴禮記·증자천원曾子天圆’에 나오는 말이다. 과학 지식이 부족하고 지리의 관념이 추상적이었던 고대인들이 생각하던 천체관이자 우주관이며 또한 천하의 설계도이다.  

오복五服(복은 천자를 섬긴다는 뜻)은 왕이 소재한 지금의 낙양洛陽 일대의 중심을 제외하고 중심을 에워싸고 있는 왕기王畿 밖으로 네모반듯한 지역을 구획한 것인데, 각기 500리씩 나누어 전복甸服, 후복侯服, 수복綏服, 요복要服, 황복荒服을 이르는 말이다. 문명의 정도에 따라 점점 멀어지는데, 가장 먼 곳은 황복이고 이민족이 산다. 대략 전국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상서尙書’ 「우공禹貢」에 나오는 말이니 당시에는 비교적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이후에도 오복에서 구복으로 확충되었지만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구주는 천원지방이라는 천하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고대 중국인들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세계이자 천하였다. 기주, 연주, 청주, 서주, 양주揚州, 형주, 예주, 양주梁州, 옹주 등인데, 오늘날의 하북, 산동, 강소, 호북, 호남, 하남, 사천, 섬서, 산서 등지를 말한다.(거자오광, ‘고대 중국 사회와 문화’18~19쪽)  

그렇다면 구주 밖에 또 무엇이 있는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음양가였던 추연鄒衍이 유가가 말하는 중국은 천하를 81등분한 적현신주일 뿐이며, 진정한 구주는 적현신주와 같은 것이 아홉 개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역시 상상한 것처럼 다른 이들도 상상으로 끝났을 뿐이다. 이러한 상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산해경’, ‘목천자전’인데, 구주 밖의 세상은 온통 기이하고 괴상한 것들 투성이다. 이 역시 문화의 차이에 따른 구분이다. 

구라오(古老)한 천하관

이렇듯 고대 중국인들에게 천하란 천원지방의 천체관天體觀과 주나라의 통치지역이라는 정치적 세계관에서 출발한 독특한 세계관이다. 쉽게 말하자면, 당시 그들에겐 세계가 곧 우리이며, 우리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중국이나 중원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이런 천하주의는 서역 개발을 통해 자신들의 나라 이외에 더 많은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부처가 서역 저 멀리 인도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서쪽 옛 페르시아에서 자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신교의 종교 조로아스터교(중국명 배화교拜火敎)가 당대 장안으로 들어와 포교를 했고, 명대 영락제 시절 환관 정화가 7차례나 출항하여 동남아와 중동 지역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한 지역까지 도착했지만, 또한 명대 신종 시절인 1584년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세계지도를 건네자, 좋아라하며 「곤여만국전도」까지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왕조가 천조이며,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철저하게 깨진 것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비로소 자신의 천하가 세계가 아니며, 자신의 왕조가 천조가 아니고, 자신들이 천하의 중심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우친 것이다. 

국가와 천하

량치차오(梁啓超)는 「소년중국少年中國」에서 중국에는 천하만 있을 뿐 국가와 정부가 없음을 개탄하며 정체의 혁신을 주장했다.  

“우리 중국의 옛날에 어찌 국가가 있었는가? 그저 조정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 황제자손들이 족속끼리 모여 살면서 이 지구상에 선 지도 어언 수천 년이 흘렀으나 그 나라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당唐, 우虞, 하夏, 상商, 주周, 진, 한, 위魏, 진晉, 송, 제, 양, 진, 수, 당, 송, 원, 명, 청 등은 조朝(왕조)의 이름일 따름이다. 조는 한 집안의 개인 재산이고, 국은 인민의 공동 재산이다.”

“우리 국민(중국인)의 가장 큰 우환은 국가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국가와 조정을 혼동하고, 국가가 조정의 소유물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나라를 가진 자는 단지 한 집안의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두 노예이다. 그런 까닭에 설사 4억 명의 동포(同胞)가 있다고 할지라도 실제는 불과 몇 명의 사람만 있을 뿐이다.”

백성의 부계적父系的 ‘주인’으로서 황제 모델에 맞서기 위해 량치차오는 왕조의 개념을 뒤집어 황제가 하늘 아래(천하)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국가를 소유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은 국가를 모든 시민들의 공동 재산으로 간주하는 이상을 나타내며, 국가는 시민의 집단적 축적이고, 국민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 한 국가의 모든 시민이 국가의 정사를 관리하고, 국가의 법을 만들며,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전을 수호할 때 시민들은 결코 비틀거리지 않을 것이며, 국가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량치차오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는 천하만 있고, 국가가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국가 위에 천하가 있기 때문에 맞고, 천하 아래 국가가 있기 때문에 틀리다. 말인 즉 진대 이후로 천하 대신 통일제국이 등장함으로써 서구와 같은 국가는 아니나 하나의 국체가 존재한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국가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관념에는 국가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천하라는 관념이다. 사해동포四海同胞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천하체계

저자는 주나라 주공周公이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천하’로 정치 개념을 다시 정의하고자 한다. 그 까닭은 명쾌하다. 서구의 민족주의에 입각한 국제관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서구는 이성과 계몽, 그리고 합리성을 전제로 인류의 평화공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는 그것이 그들만의 리그였으며,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천하의 패권주의였음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에 서구는 제국주의,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이교도 등의 이분법적 사고, 백인우월주의, 계급투쟁 등을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국제 정치에 기대를 걸 수 없다. 세력 균형, 억제, 제재, 개입 내지 전쟁, 지정학, 문화패권(Hegemony) 등 온갖 전략과 이론은 충돌을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순을 악화시킨다.”(43쪽) 이는 민족 국가 체계, 제국주의, 패권 경쟁 모델로 정의되는 국제 정치 개념이 절차 글로벌화라는 현실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족주의에 입각한 국가간의 관계, 즉 국제관계를 천하체계로 바꿔야 한다. “개인-공동체-민족국가의 구조로 정의되는 현대 정치”에서 벗어나 세계를 정치의 주체로 삼아 ‘협화協和(공존가능성=compatibility)’의 정치를 통해 모든 나라가 공존할 수 있는 내부화된 세계 체계(an internalized world-system)을 만들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방법론은 무엇인가?

천하로 천하를 보다(以天下觀天下)

“천하로 천하를 본다”는 말은 노자 ‘도덕경’ 제54장에 나오는 말이다. ‘관자’ 「목민牧民」에 나오는 “천하를 천하로 다룬다(以天下爲天下)”는 말과 상통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국제 정치 개념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천하 체계이다. “천하 개념은 세계가 정치의 주체가 되는 세계 체계, 전 세계를 하나의 정치 단위로 하는 공존 질서(Order of coexistence)를 기대한다.” “‘세계를 생각한다’와 ‘세계로부터 생각한다’는 전혀 다른 사유방식과 문법이다.” 따라서 “세계를 척도로 전체 정치 존재로서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는 이를 ‘천하무외(天下無外)’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제정치는 나라와 나라, 때로 서로 다른 민족, 체제 국가 간의 관계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토마스 홉스가 자연 상태의 인간존재에 대한 사고의 결론이라면, 모든 국가의 정치는 오로지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한 투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국제정치를 천하정치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굳이 ‘천하’ 정치를 이야기한 것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정벌함으로써 이루어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봉건제와 종법제로서 천하의 안정을 구했던 주공의 천하 체계가 적절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주공의 창제는 주로 분봉分封 제도, 예악 제도와 덕치 원칙,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분봉제도는 하나의 세계를 분할해서 다스리는 감독 보호 제도이다. 천하는 하나의 네트워크이고 여기에는 이 네트워크 주체에 소속되는 수많은 정치 실체가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세계 정치 주체에 소속된 여러 제후국이다.……예악은 분봉 제도와 맞추어 실행하는 생활 질서이고 그 목적은 천하의 정신 측면에서의 조화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예악 의식은 모든 사물에 정신성을 부여하였고, 이로써 보편적으로 나눌 수 있는 정신 경험을 생산하였다. 사물을 정신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물질적 이익의 배타성도 초월할 수 있게 된다.……덕치는……정치경제학 원칙이다. 덕치란 이익을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공정하게 분배한다는 의미다. 덕이 있는 정치라면 모든 사람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단지 총량의 극대화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91~93쪽)

이외에도 저자는 전체 3부 가운데 제1부에서 「천하 개념 이야기」를 통해 주공이 창제한 천하 개념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고 언급하고 있다. 봉건제나 종법제, 예악 등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이를 통해 천하 체계를 창안한 것은 저자만의 탁월한 사상적 결과이다. 하지만 주공이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서 천하 체계에 대한 저자의 발언을 들으면서 자꾸만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생각나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듯하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도시국가 아테네 시민들의 민주주의로 시민이 아닌 이들, 노예 등은 관련이 없다. 또한 인근의 도시국가들과도 무관하다. 마찬가지로 주공의 천하 체계는 귀족들만의 것이며, 일반 백성은 순종의 의무만 있을 뿐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천하이지 만백성의 천하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입으로는 항상 민의民意, 만백성萬百姓을 달고 다녔지만. 두 번째로 천하 체계의 가장 중요한 기둥인 봉건제, 종법제가 흔들거리면 천하 체계는 맥없이 무너진다. 또한 예악에 기반한 덕치는 무력에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공이 애써 만든 천하체계는 비록 500여 년간 지속되었다고 하나 주공과 같은 천하 공주共主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패자覇者(오패五覇)와 웅자雄者(七雄)의 힘겨루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천하와 천하성天下性

주나라가 무너진 후 진과 한나라는 봉건제를 거부하고 군국제와 군현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역사는 천하 이야기에서 중국 이야기로 전환했지만,……천하 개념은 여전히 정치 유전자로 중국의 실체에 남아 있어서, 중국을 천하성을 포함한 국가로 만들었다.”(187~188쪽) 그런 까닭에 저자는 제2부에서 「천하를 내포한 중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가 그 까닭은 「소용돌이 모형」, 「천하의 축소판」, 「왜 중원을 쟁탈하는가」, 「변화로서 존재한다」라는 소제목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은 능히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소용돌이 모형은 중국 문화를 용광로에 비유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한족만의 문화가 아니라 여러 이민족이 함께 만든 문화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북조, 원, 청 등 여러 왕조는 한족이 아닌 여러 이민족이 세운 나라이다. 또한 지금도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민족이 정권을 차지하든 중국 문화는 용광로처럼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였으며, 이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 능력 또는 까닭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역시 한자를 매개로 한 풍부한 정신세계와 중원문화의 지속성 및 우월성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정권이든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것인데, 「왜 중원을 쟁탈하는가」라는 소제목 하에서 저자는 “중원 쟁탈의 소용돌이는 물론 여러 힘이 작용하여 형성한 것이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동력은 중원의 정신세계와 그 전통을 공유하는 자격, 그리고 지식 생산 능력과 역사 해석권을 쟁탈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없지 않다.  

남은 이야기

저자는 제15장 「세계의 역사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류는 아직 ‘세계를 세계로 다룬다’(관자의 개념)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로서의 세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세계’는 여전히 물리적 의미의 세계 즉 지구이고, 아직 세계적 이익으로 정의하고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물리적 성질 외에는 정치적 신분이나 정치적 존재 질서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세계’는 여전히 ‘비세계(non-world)’이다. 

원서의 부제가 ‘세계질서의 실천과 상상想像’이고 역서의 부제가 ‘세계와 미래에 대한 중국의 철학’인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미완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세계시민, 세계 공화국, 국제연합, 유럽연합 등등 인류애에 바탕을 둔 세계인의 통합체계를 실험한 바 있으며, 현재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러한 연합, 통합의 체제가 지구인들의 삶을 보다 평화롭고 온전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지 장담할 수 없다. 물론 노력은 가상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그렇다면 천하 체계는 어떨까? 아직 미완인 세계를 확실히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대 천하체계를 빗대어 말하자면, 천하 공주共主는 무엇(누가 또는 어떤 체계)이 할 것이며, 천하 체계에 들어오지 않겠다면 어떻게 강요할 것인가? 무력으로 아니면 신념으로? 만약 천하 체계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했을 때, 지역에 따른 자원의 불평등, 인구 불균형, 자원 분배의 문제 등등은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정치, 경제보다 앞서는 듯한 종교(특히 유일신)의 천하화天下化는 또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게다가 하필이면 ‘천하’인가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산적한 문제가 참으로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중국의 철학’으로서 ‘천하’를 끄집어 낸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설사 그것이 관방의 필요에 따른 것일지라도, 실현 불가능한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세계를 세계가 아니라고 단언하며 민족국가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자고 주장함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어찌 지금 이른바 세계의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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