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⑦ 제주굿과 기메의 활용과 실제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제주만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제주 무속’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무속에서 사용하는 ‘기메’는 종이 장식이나 신체 등 굿에서 쓰이는 종이 무구를 지칭한다. 종이 무구를 많이 사용하는 건 제주굿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의소리]는 권태효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민속학자 강소전이 집필한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전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종이 예술작품 기메의 매력을 재발견하면서, 제주굿의 가치도 널리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① 기메 조사의 필요성
② 기메의 명칭과 성격
③ 기메의 형태와 전승
④ 기메의 종류
⑤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제작 세계
⑥ 주요 기메의 제작 방법 및 과정
⑦ 제주굿과 기메의 활용과 실제
⑧ 기메와 신화(본풀이)의 연계 양상과 의미
⑨ 제주굿 기메의 가치와 활용


1. 큰굿과 기메

제주도 전 지역의 굿은 사실 동일한 ‘굿법’으로 형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제장 설립, 제물 진설, 굿 제차 형성과 진행, 무구의 사용 등 여러 측면에서 대체적으로 동일한 방식을 보여준다. 물론 지역에 따라 세부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다. 이른바 목안굿, 정의굿, 대정굿이라고 하여 서로 차이를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제주굿에서 기메를 무구로써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 양상을 파악한다. 그동안 현장에서 조사하였던 다양한 굿 사례들을 통하여 심방이 기메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양상을 서술한다. 관련 사진들은 되도록 이 글의 주제보자인 김영철 심방의 사례를 중심으로 제시하였다.(여기에 게재한 사진은 모두 필자가 현장에서 촬영한 것이다.) 거의 모든 기메가 사용되는 큰굿을 신굿과 함께 먼저 살핀 다음, 그 외에 다른 무속의례의 사례까지 개괄적으로 검토한다.

큰굿은 제주굿에서 가장 규모를 크게 하여 벌이는 굿을 말한다. 큰굿은 ‘집굿’이다. 집이라는 장소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집의 안녕을 위해서 하기 때문이다. 단골 신앙민이 심방을 청하여 하는데, 약 1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큰굿은 ‘당클굿’이기도 하다. ‘사당클’ 혹은 ‘중당클’이라는 형식의 제장을 갖추고 여러 제물과 무구를 준비해야만 한다. 또한 큰굿은 ‘차례차례 제차례굿’이다. 큰굿은 종합의례로써 수많은 절차를 빠짐없이 수행하여야 한다. 큰굿이 장대한 굿이다 보니 그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따라서 큰굿은 드물게 벌어지는 편이다.

큰굿이 종합의례인 만큼 사용하는 기메의 종류도 자연히 많다. 큰굿에서 기메는 제장을 장식하는 용도로 적극 활용된다. 더불어 많은 제차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기메도 그만큼 다양하게 사용한다. 굿이 진행되는 동안 거듭 사용하는 기메들도 있지만, 특정한 굿 절차를 할 때만 사용하는 기메들도 여럿이다. 한편 큰굿이라고 해서 모든 기메가 다 쓰이는 것은 아니다. 큰굿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메도 있다. 제주도 기메의 종류와 각 기메마다 다양한 모양을 모두 현장의 례에서 관찰하려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인내를 가지면서 굿판을 다녀야 한다.

큰굿에서 제장장식용의 기메를 설치하는 일은 당클이라는 제장의 구조와 관련 있다. 큰굿을 할 때는 집의 마루를 중심으로 제장을 꾸린다. 이때 마루를 둘러싼 네 벽의 상단에 선반을 달아맨다. 이를 당클이라고 하는데 제장을 설립하는 중요한 기본 구조로 작용한다. 신들을 좌정시키고 신들에게 제물을 올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당클은 주로 긴 나무판자를 써서 만든다. 단골집에서 적절한 나무판자가 없으면, 예전에는 문짝을 뜯어서도 설치하였다고 한다. 심방이 미리 준비해 갈수도 있다. 근래에 제주굿을 전용으로 하는 굿당에는 아예 붙박이로 당클을 설치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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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클의 수는 제주굿의 규모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가장 큰 규모의 굿에서는 네 개의 당클을 맨다. 이를 '사당클굿'이라고 한다. 사당클은 ‘삼천전제석궁당클’(어궁), ‘시왕당클’, ‘마을영신당클’, ‘문전본향당클’이다. 신들을 일정한 기준으로 나누어 각 당클마다 좌정시킨다. 삼천전제석궁당클에는 옥황상제를 비롯하여 삼공신까지 차례로 좌정한다. 시왕당클은 삼천전제석궁당클의 맞은 편에 설치한다. 저승의 시왕과 관련된 신들이 좌정하는 곳이다. 마을 영신당클은 해당 굿을 하는 단골 집안과 관련된 영혼들을 모시는 곳이다. 문전본향당클은 문전신과 본향당신으로 분류된 신들이 좌정한다. 문전본향당클은 제청의 출입구 쪽에 설치하며 마을영신당클을 마주보게 된다. 사당클 가운데 시왕당클이 빠져 당클이 셋만 있으면 ‘중당클굿’이라고 한다.

당클 설치(이중춘 심방 하직굿, 2011) / 이하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큰굿에서는 사당클을 기준으로 여러 제장장식용의 기메들을 붙이거나 달아맨다. 우선 여러 살장 종류들로 각 당클마다 앞을 가리며 둘러친다. 대개 지게살장 모양을 많이 쓴다. 이때 살장 안쪽으로 첵지들을 붙여 밑바탕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 다음 각 당클마다 전지를 2개씩 달아맨다. 심방에 따라 삼천전제석궁당클 중심으로 솔전지를 배치하기도 한다. 통기는 보통 삼천전체석궁당클의 양쪽 끝으로 하나씩 설치한다. 발지전은 가능한 대로 많이 만들어 살장 곳곳에 연이어 달아맨다. 당반지는 각 당클마다 당클 밑에 2개씩 맨다.

큰굿에서 사용하는 기메는 보통 관련 당클이나 제상 주위에 놓아둔다. 삼천전제석궁 당클의 밑에는 보통 여러 제상을 놓아 기본적인 제물 진설을 한다.(각 가옥의 내부 구조마다 사정이 다르니 일괄하여 말하기는 어려우나 대체적인 양상은 그러하다.)

당클의 기메 장식 설치(이중춘 심방 하직굿, 2011)
당클의 기메 장식 설치(이중춘 심방 하직굿, 2011)

이때 한쪽으로 불도할망(삼승할망) 제상을 놓는다. 이 제상에 삼불도송낙과 칠성성군송낙을 놓아둔다. 옆쪽에는 할마님 철쭉대를 세워놓는다. 문전본향당클 쪽에는 아무래도 입구 쪽이다 보니 주로 청신제차와 관련한 기메들을 당클 밑으로 걸쳐둔다. 감상기 2개인 한 벌, 영기와 몸기 등이다. 1주일 이상 소요되는 큰굿은 날이 진행되면서 기메를 계속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후에 제작하는 기메들도 해당 제차와 관련한 제상 혹은 그 근처에 놓아둔다. 제장 바깥에는 큰대를 세우기 마련이고 소통기, 기리여기, 줄전기 등을 달아맨다.

큰굿의 많은 제차 가운데 기메를 직접적으로 활용하며 진행하는 ‘굿법’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큰굿은 가장 처음에 초감제를 중심으로 청신 제차를 둔다. 그런 다음에는 여러 본풀이와 ‘맞이굿’이 몇 차례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후반부에는 자연히 송신 제차를 두었다.

사당클과 제장장식용 기메 설치(일본 오사카 원댁 큰굿, 와흘리 굿당, 2014)
사당클과 제장장식용 기메 설치(일본 오사카 원댁 큰굿, 와흘리 굿당, 2014)

서서 춤추며 하는 ‘산굿’(선굿)과 앉아서 하는 ‘앚인굿’이 섞여 있다. 큰굿에서 기메를 많이 활용하는 제차들은 대부분 ‘산굿’ 형식으로 하는 대목들이다. 보다 역동적인 순서에서 기메의 사용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기메를 많이 사용하고 해당하는 종류도 많은 대표적인 제차들은 ‘초감제’, ‘불도맞이’, ‘시왕맞이’ 등이다. 사실 이 제차들은 오늘날도 빈번히 벌어지고 있으니 기메의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전상놀이’(삼공맞이) 같은 굿놀이에서도 기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큰굿의 제장이 모두 갖추어지면 비로소 굿이 시작된다. 우선 큰굿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전에 ‘기메코사(기메고사)’라는 절차를 먼저 한다. 굿을 하기 전날에 심방 일행이 제장에 모여 기메를 비롯한 여러 장식물들을 미리 준비해 놓는다. 그런 다음 기메고사를 지내며 이 굿을 하게 된 연유를 풀어낸다. 제장의 설립과 관련한 ‘기메선생 놀메선생 자리선생 당반선생’ 등에게도 술을 권하는 사설을 한다. 당일 여러 준비물을 마련한 심방 일행의 수고를 되새기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굿이 벌어질 테니 부디 무탈하게 잘 진행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명칭에서부터 기메를 앞세우고 굿 전날 무구를 마련하는 각별한 설명을 담았으니 특기할 만하다. 요즘은 큰굿을 해도 기메고사를 보는 것이 쉽지않다. 한편 굿 시작하는 당일 큰대를 세우는데, 이때 큰대에 따른 기메들도 포함되게 마련이다.

초감제 군문열림과 감상기(제주시 아라동 김댁 일월맞이, 조천읍 와흘리 굿당, 2023)
초감제 군문열림과 감상기(제주시 아라동 김댁 일월맞이, 조천읍 와흘리 굿당, 2023)

큰굿은 첫날 초감제로 시작한다. 처음으로 하는 초감제는 큰굿 전체에 해당하는 종합적인 청신의례이다. 이때는 신역神域의 문을 여는 ‘군문열림’ 대목부터 본격적으로 기메를 사용한다. 초감제의 기메는 단연 감상기이다. 심방이 출입구인 문전과 제장의 신자리를 오가며 감상기를 들고 흔들거나 휘날리며 춤추기 때문이다. 초감제 하위 제차 가운데 하나로 부정을 없애는 ‘새도림’에서도 감상기를 사용한다. 

초감제 다음 이어지는 초신맞이와 초상계도 청신 제차이니 역시 감상기를 쓴다. 초상계를 마치며 오방각기와 올레기를 이제 설치하겠다는 사설을한다.(굿을 거의 마쳐갈 무렵 ‘각도비념’의 문전본풀이를 하면 이 오방각기와 올레기는 다시 걷어낸다.) 한편 이후 벌어지는 개별 맞이굿에서도 자체의 초감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초감제 형식은 거듭 벌어지니 감상기도 계속 쓰인다. 

첫날 청신 제차 다음에 기메를 본격적으로 쓰는 제차는 불도맞이다. 불도맞이는 불도할망(삼승할망)과 북두칠원성군 등을 대상으로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여 잘 기를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이다. 여기에 아이가 아프거나 죽었을 때도 불도맞이를 벌인다. 유산이나 난산을 거듭할 경우에도 하였다. 불도할망은 명진국따님아기이다. 아기의 잉태와 출산,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성장을 관장한다. 북두칠원성군은 명과복을 관장하는 신이다. 한편 불도맞이에는 구삼승할망도 등장한다. 구 삼승할망은 동해용궁따님아기로 아기에게 여러 가지 해를 끼치는 존재이다. 불도맞이 관련 기메는 삼불도송낙, 칠원성군송낙, 할마님 철쭉대 등이다.

불도맞이와 삼불도송낙 메어듦(제주시 아라동 김댁 일월맞이, 조천읍 와흘리 굿당, 2023)
불도맞이와 삼불도송낙 메어듦(제주시 아라동 김댁 일월맞이, 조천읍 와흘리 굿당, 2023)

개별 맞이굿을 하려면 맞이굿에 맞게 제상을 다시 마련한다. 보통 ‘우알상’으로 차린다. 대개 병풍을 세우고 병풍 위와 아래에 동시에 진설하는 방식이다. 불도맞이에서는 위에 삼불도송낙을 올리고, 당클 아래 제상에는 칠원성군송낙을 세워 놓는다. 불도맞이 초감제에서도 감상기로 청신한다. 불도맞이 관련 기메 가운데는 할마님 철쭉대를 가장 먼저 사용한다. 자식을 기원하는 ‘수룩침’ 순서에서 불도할망이 이 철쭉대를 짚으며 제장으로 들어오는 시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철쭉대로 본주 가족을 때리는 모양도 한다. 이어 북두칠원성군에 대한 의례를 마치면서 그 칠원성군송낙을 풀어 헤쳐 백지를 소지所志 대용으로 불에 태우며 사용한다. 불도맞이 후반부에 불도할망을 안으로 모셔 들이는 ‘송낙 메어듦’을 할 때 심방이 삼불도송낙을 손에 들고 춤춘다.

시왕맞이 초감제 군문열림과 영기(제주시 봉개동 김댁 시왕맞이, 조천읍 와흘리 굿당, 2023)
시왕맞이 초감제 군문열림과 영기(제주시 봉개동 김댁 시왕맞이, 조천읍 와흘리 굿당, 2023)

시왕맞이는 저승을 관장하는 시왕十王과 그에 따른 멩감冥官, 사자使者, 차사差使 등을 청하여 기원하는 굿이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면서 귀양풀이를 하고, 나중에 대상을 치르고 난 뒤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시왕맞이를 한다. 고인의 영혼을 아무 탈 없이 고이 저승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집안에 환자가 있을 경우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기도 한다. 또한 인생의 말년을 맞아 자신이 죽기 전에 스스로 시왕맞이를 행하는 사람도 있다. 시왕맞이의 제차에는 차사영맞이(질침)가 있는데 차사와 영혼의 모습을 생생히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시왕맞이 관련 기메는 시왕기, 멩감기, 대명왕처서기, 영게처서기, 영게기, 영기, 몸기, 적베지, 돌레지 등이 있다.

시왕맞이의 제상을 진설하면 당클 밑으로 시왕기와 멩감기를 각 3개씩 걸어놓는다. 시왕맞이에서는 청신할 때부터 기메 사용이 남다르다. 감상기 외에도 영기와 몸기를 거듭 사용한다. <대명왕차사본풀이>를 할 때에는 심방이 등에 적베지를 달아맨다. 본풀이 도중에 심방이 일어나서 강림을 청한다며 몸기와 영게처서기를 들고 잠시 춤추기도 한다. 즉 강림이 염라왕을 잡은 뒤에 염라왕을 따라간 굿판에서 허데기라는 심방이 뒤늦게 강림이 왔음을 알아차리고 청하는 행동을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나까시리놀림’이라는 제차에서도 처음에 시루떡에 감상기를 꽂아 놓는다.

시왕맞이 질침과 영게처서기, 영게기(제주시 아라동 김댁 일월맞이, 조천읍 와흘리 굿당, 2023)
시왕맞이 질침과 영게처서기, 영게기(제주시 아라동 김댁 일월맞이, 조천읍 와흘리 굿당, 2023)

시왕맞이 내부의 또 다른 맞이굿인 ‘차사영맞이’(질침)에서도 여러 종류의 기메가 쓰인다. 질침은 영혼이 차사와 함께 저승으로 가는 길을 치워 닦는 제차이다. 제장에 미리 멍석 혹은 스티로폼 널빤지를 깔고 가늘게 쪼갠 대나무 질대를 구부려 아치형으로 꽂는다. 각 질대에는 지옥문을 지키는 문지기라는 의미로 돌레지를 2개씩 달아맨다. 심방은 ‘저승서천주육질’이 어떠한지 돌아본다고 하고, 질대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방법으로 길을 치워 닦는 행동을 한다.

심방은 이어서 적베지를 등에 매달고 왼팔에는 천으로 완장을 차서 차사의 모습을 갖춘다. 영게처서기와 영게기를 들어 주육질을 여러 번 오간다. 본주 일행이 그 길에 지전, 다라니, 눈물수건 땀수건, 인정(지폐)을 문마다 걸어준다며 겹겹이 놓아준다. 그러면 심방은 영게처서기와 영게기를 들고 문 밖으로 나가 혼을 부른다. 심방이 제장 안으로 들어오면 본주 일행은 주육질을 앞에 두고 무릎 꿇고 앉는다. 그런 다음 각 문마다 술잔을 올리면서 심방은 사설하고 점치며 열두 지옥문을 차례로 열려 맞는다. 이렇게 질침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메들이 함께 쓰여 심방의 행동이 극대화된다.

큰굿에서는 굿놀이도 여럿이다. 물론 요즘은 굿놀이를 현장 굿판에서 보기 어렵다. 심방 집의 큰굿(신굿)을 매우 규모 있게 벌일 때나 드물게 볼 수 있는 형편이다. 굿놀이 가운데 기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전상놀이(삼공맞이)이다. 제주굿에서는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나 그 행위를 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전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가지 전상 중에서 ‘좋은 전상’은 맞아들이고 ‘나쁜 전상’은 풀려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상놀이는 삼공본풀이와 밀접한 놀이굿이다. 삼공본풀이의 내용 중 거지잔치를 하는 부분이 전상놀이에서 연극적으로 행해진다. 즉 소미 2명이 종이로 만든 탈을 쓰고 감은장아기의 장님 부모 역할을 한다. 탈을 쓴 소미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신의 형상을 한 것이다. 장님 거지 부부를 통해 이런 전상을 연극적으로 보여주고 굿판에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전상을 풀려내는 제차이다.

한편 큰굿은 심방 집에서도 벌인다. 이는 신굿이다. 신굿은 심방의 일생에 걸쳐 3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를 ‘초신질’, ‘이신질’, ‘삼신질’ 신굿이라고 한다. 달리 심방이 굿을 하여 벌어먹은 역가役價를 바치는 의례라는 뜻에서 초역례初役禮, 이역례二役禮, 삼역례三役禮라고도 한다. 신굿을 거듭 하면서 ‘하신충’, ‘중신충’, ‘상신충’이라고 하여 심방사회에서 그 지위를 자리매김한다. 신굿 가운데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초신질 신굿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비로소 심방으로 거듭나는 의례이기 때문이다.

신굿은 모든 제차를 갖추어 하면 약 보름 가까이도 벌일 수 있다. 신굿의 핵심 절차는 ‘당주맞이’이다. 당주맞이는 신굿에서 무업조상들을 맞이하여 대접하고 기원하는 의례이다. 심방이 되는 첫 신굿의 당주맞이에서 무업조상 멩두의 영력靈力이 본주심방에게 내리도록 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즉 신이 내린 밥과 술을 먹고 신의 도장을 몸에 찍는 절차인 약밥약주藥飯藥酒와 어인타인御印打印 같은 입무를 위한 재차들이 포함되어 있다. 당주맞이를 통하여 멩두의 신성을 바탕으로 심방의 입무를 허가하고 공인한다. ‘고분멩두’라는 제차에서는 굿법의 준엄함과 심방으로서 자세를 끊임없이 자각하게 한다. 즉 신굿은 멩두를 통하여 심방이 걷는 신의 길을 바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더불어 신굿 현장 자체가 심방사회의 학습장 역할을 한다.

당주맞이는 초공본풀이의 삼형제가 나중에 삼시왕으로 들어서니 ‘삼시왕맞이’라고도 한다. 신굿에서는 시왕맞이와 삼시왕맞이(당주맞이)가 공존한다. 일반 개인집 굿에서는 시왕맞이만을 한다. 그러나 심방집 굿에서는 시왕맞이와 삼시왕맞이를 한다. 시왕맞이는 해당 본주의 일반적인 조상영혼들의 천도를 위한 것이다. 이에 견주어 삼시왕맞이는 무업조상과 더불어 과거 멩두를 소유한 심방이었던 옛 선생들의 영혼을 위한 것이다. 삼시왕맞이를 하는 이유는 심방들은 죽으면 일반적인 시왕으로 가는 게 아니라 삼시왕으로 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팔자를 그르친 이들은 죽어도 삼시왕에 매인 존재들이다. 삼시왕이 심방의 사후 세계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 셈이다. 

김영철 심방 모친 김순아 심방 당주의 살장과 육고비(김순아 심방 당주제, 2008)
김영철 심방 모친 김순아 심방 당주의 살장과 육고비(김순아 심방 당주제, 2008)

신굿에서도 일반적인 큰굿에서 기메를 사용하는 양상과 비슷하다. 다만 신굿에서는 심방의 조상을 모신 당주가 함께 있기 때문에 이 당주와 관련한 기메들이 더러 있다. 우선 당주에는 안쪽에 당주살장이 있고 대개 육고비를 걸어놓는다. 굿을 할 때 당주 앞도 살장으로 가린다. 이때는 보편적으로 만드는 지게살장보다는 칼로 무늬를 더 복잡하게 파서 만든 살장을 주로 설치한다. 또한 청신 제차에서 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감상기 외에 안감상기라고 하여 한 벌 더 만들어 쓴다. 안감상기는 심방의 조상을 모신 당주에 오가며 사용한다.

초신질 신굿 당주맞이의 제장설비 가운데 ‘삼시왕도군문’이라는 것도 있다.(강소전, 「제주도 심방의 멩두 연구: 기원, 전승, 의례를 중심으로」,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143쪽과 각주 134쪽.) 제장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 ‘삼시왕도군문’을 세우고 그 문 앞에 신입무인 본주심방을 꿇어앉게 하여 대기시키는 대목과 관련 있다. 삼시왕도군문이란 1m 정도의 대나무 2개를 지면에 꽂아 세우고, 그 가지 끝의 이파리를 서로 이어 묶은 뒤 기메를 달아맨 것이라고 한다. 성역聖域인 제장의 출입구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당주맞이 제상을 마련하고 신자리를 깔아놓은 뒤 신자리 양 옆으로 시왕기 3개와 멩감기 3개를 서로 교차하여 설치한다고도 한다. 신입무인 본주심방은 그 신자리 뒤에 꿇어앉는다는 것이다. 한편 삼시왕도군문은 심방집 큰굿에서 삼시왕상에 설치되는데, 이때는 대나무를 쪼개어 잘 다듬은 가지를 아치형으로 하여 시루떡에 꽂는 형태이다.

이상과 같이 큰굿과 기메의 관계를 개괄적이나마 알아보았다. 역시 큰굿인 신굿의 사례도 특징적인 부분을 살펴보았다. 일반적인 큰굿 각제차에 대응하는 기메의 양상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큰굿의 각 제차마다 사용되는 무구의 양상은 이미 한 차례 정리된 바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巫具 : 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 377쪽.)

• 기메코소 : 기메 일체
• 대세움 : 큰대 관련 기메
• 초감제 : 감상기. 심방집 굿은 안감상기 포함
• 초신맞이 : 감상기
• 초상계 : 감상기. 오방각기와 올레기 설치
• 보세감상 : 감상기
• 불도맞이 : 감상기, 삼불도송낙, 칠원성군송낙, 할마님 철쭉대. 칠원성군송낙은 소지 대용
• 초이공맞이 : 감상기, 청너울(초공질침)
• 제오상계 : 감상기, 고리동반(너울지 포함)
• 시왕맞이 : 시왕기, 멩감기, 대명왕처서기, 영게처서기, 영게기, 영기, 몸기, 적베지, 돌레지
• 문전본풀이 : 오방각기와 군문기 걷음
• 대지움 : 큰대 관련 기메

위에서 정리한 양상을 보면 비교적 여러 제차에서 두루 쓰이는 것은 감상기이다. 그리고 사용하는 기메의 종류가 다양한 제차는 불도맞이와 시왕맞이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맞이굿은 제주굿의 가장 핵심적 의례일 뿐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는 굿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메도 이 두 맞이굿에서 집중적으로 발달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2. 성주풀이와 기메

성주풀이는 집이나 건물 등을 신축하였을 때 해당 장소를 지키는 성주를 모시는 굿이다. 신축은 아니더라도 새로 장만하였을 때도 한다. 집이나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동토動土를 없애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성주풀이로 성주를 모시고 나서야 해당 집이나 건물에서는 비로소 다른 의례도 행할 수 있다고 여긴다. 즉 성주풀이를 하지 않으면 어떠한 굿도 벌일 수 없다. 성주를 모시지 않은 집은 큰굿을 하기에 앞서 성주풀이부터 먼저 한다. 성주풀이와 큰굿은 별개이다.

성주풀이에서는 집을 짓는 행위를 모의적으로 연출한 뒤 성주신을 좌정시키고 <문전본풀이>를 구송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강태공수목수’ 姜太公首木手라는 제차에서 성주풀이 관련 기메의 사용이 드러난다. 강태공수목수는 신이한 목수로 인식되는 존재이다. 소미 한 명이 수건으로 머리를 묶고 연장 바구니를 들어 목수로 분장하여 대기한다. 목수는 심방이 부르는 소리에 따라 제장 안으로 들어가 심방과 함께 제물과 연장에 대해 서로 문답한다. 이때 도끼날의 상태도 알아본다. 그런 다음 집의 안팎을 두루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곳곳을 도끼로 찍는 시늉을 한다. 마지막에 제장에서 성주기를 두 동강 내듯이 도끼로 찍어낸다.

성주풀이와 성주집 짓기(고순안 심방댁 성주풀이, 2011)
성주풀이와 성주집 짓기(고순안 심방댁 성주풀이, 2011)

심방은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이용하여 모형으로 ‘성주집’을 만든다. 사과를 반으로 잘라 주춧돌을 만들고 위에는 ‘상모루’를 달며 지붕도 덮는 시늉을 한다. 성주집을 만드는 재료는 심방이 미리 준비해 두지만, 사실 성주집은 성주기로 짓는 셈이다. 이어 모형 집 안쪽에 물사발을 놓고 그 위에 신칼을 나란히 얹은 다음 그 위에 다시 천문을 놓는다. 신칼을 빠르게 빼내면 천문이 아래로 떨어지고 그 점괘를 확인하여 집이 제대로 지어졌는지 확인한다. 이어 심방이 춤추며 역시 물사발에 미리 개어놓은 백지를 제장인 마루 네 벽 위쪽 모서리를 향해 던져 붙인다. 이로써 성주를 모시는 것이다. 문전본풀이를 할 때는 집 출입구를 향하여 제상을 차린다. 이 상 위에 성주꼿도 가져다 놓는다.

3. 칠성새남과 기메

칠성새남 굿은 뱀을 죽였거나 또는 죽은 뱀을 보아서 생긴 병을 치료하는 굿이다. 어느 날 사람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니 점을 쳐서 그 원인을 알아본다. 그 결과 뱀을 죽였거나 혹은 우연히 죽은 뱀을 보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이 굿을 벌인다. 굿의 핵심사항은 환자가 뱀을 죽이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떤 다른 존재가 뱀을 죽였고 환자는 우연히 죽은 뱀을 처음으로 보았을 뿐인데 억울하게 그 죄를 뒤집어써서 병에 걸렸다고 말한다. 따라서 누가 뱀을 죽였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나중에 뱀을 죽인 존재는 악신惡神인 ‘허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환자에게는 죄가 없음이 드러난다. 이어 죽은 뱀을 다시 살려내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이때 필요한 기메가 칠성 신체와 허멩이이다.

칠성새남과 허멩이 문초(애월읍 유수암리 고댁 시왕맞이, 2006, 강대원 심방 제작)

허맹이는 사람 형상을 흉내 내어 만든 일종의 허수아비이다. 허멩이는 칠성새남 굿의 제차 가운데 특히 ‘초곱메김’, ‘이곱메김’, ‘삼대김’ 대목에서 주목된다. 바로 허멩이를 잡아다가 문초를 하고 환자의 무죄를 증명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위의 제차들은 연극적으로 행해진다.

수심방이 허멩이를 문초하고 소미는 수심방을 돕는다. 이들은 허멩이라는 허수아비 인형을 두고 연극적 대사로써 흥미진진하게 진행한다. 가장 먼저 초곱메김에서는 초공전 앞으로 환자의 원통한 소지원정이 전해진다. 칠성으로 인해 병에 걸리게 된 사연을 말하고 자신은 아무 죄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소지원정을 해결하기 위해 허멩이를 잡아다가 대령한다. 허멩이는 자신이 칠성을 죽였음을 자백하고 환자에게 뒤집어씌웠다고 인정한다. 이에 허멩이의 죄를 매를 때려 다스린 뒤옥에 가두어 놓는다. 두 번째인 이곱메김은 앞서 초공맞이 때의 초곱메김과 같은데 옥 안에 있는 허멩이를 잡아들이라는 심방의 사설만 다르게 나타난다. 마지막 삼대김은 시왕맞이에서 액막이를 하고 난 후에 벌어진다. 옥 안에 있는 허멩이를 불러 매를 때리는 것은 앞서와 같다. 그런 뒤에는 허멩이에게 다시는 인간에게 나쁜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결국 심방은 굿을 청한 집안의 환자가 아무 잘못이 없음을 입증한다. 칠성을 죽인 범인은 바로 허멩이기 때문이다. 환자는 허멩이에 의해 죽은 뱀을 보았을 뿐이다. 따라서 심방은 죄인인 허멩이를 잡아다가 매를 때려 칠성을 죽인 죄를 다스리는 것이다. 허멩이에 대한 문초 뒤에는 원래는 환자를 구하고 그 죄를 묻는 의미에서 허멩이를 불사르는 ‘불천수’를 시켜야 마땅한 일이지만 열 시왕十王의 분부에 따라 ‘가다귀섬’으로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따라서 허멩이는 인정과 잔을 받고 이별하여 돌아선다. 소미가 허멩이와 ‘추물’ 채롱을 들고 인육産育을 맡은 일뤳당, 어업 관련 해신당(돈짓당, 남당, 개당 등), 목축·수렵 관련 산신당 등 여러 유형의 신당들이 많다. 당굿은 대개 본향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본향당은 한 해에 보통 3~4회의 당제일이 있는데, 주로 정월에 당신에게 세배를 드리는 신과세제新過歲祭에 주민들이 많이 찾아간다.

4. 당굿, 영등굿, 잠수굿과 기메

당굿은 한 마을을 수호하는 신당에서 주민들이 함께 모여 지내는 마을굿이다. 제주도에는 마을 토주관土主官 역할을 하는 본향당本鄕堂, 산육産育을 맡은 일뤳당, 어업 관련 해신당(돈짓당, 남당, 개당 등), 목축·수렵 관련 산신당 등 여러 유형의 신당들이 많다. 당굿은 대개 본향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본향당은 한 해에 보통 3~4회의 당제일이 있는데, 주로 정월에 당신에게 세배를 드리는 신과세제新過歲祭에 주민들이 많이 찾아간다.

당굿에는 사실 특별히 여러 종류의 기메가 필요하지 않다. 당 자체가 야외에 노출되어 있으면 종이무구로 제장을 꾸미는 것 자체가 마땅치 않다. 당집이 지어져 있다 하더라도 기메로 장식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당굿을 진행하는 데도 청신을 위해 감상기 정도를 사용할 뿐 다른 기메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굿이 아니라 비념 방식으로 하는 곳은 감상기마저 쓸 일이 없다.

본향당굿 초감제와 감상기(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본향당 신과세제, 2023)
본향당굿 초감제와 감상기(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본향당 신과세제, 2023)

영등굿과 잠수굿은 현재 주로 해안마을에서 해녀와 어부를 중심으로 해상의 안전과 풍요를 위해 하는 굿이다. 영등굿은 제주도 전역에서 음력 2월 당굿의 하나로 벌어지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어로 관련 굿으로 인식이 바뀌고, 아예 당굿과 관련 없이 어촌계에서 독자적으로 지내기도 한다. 잠수굿은 해녀(잠수) 생업공동체의 굿이다. 영등굿이 영등신이 오고가는 시기에 하는 것이라면 일반적인 잠수굿은 시기에 따른 제한은 없다.

영등굿과 잠수굿에서 사용하는 기메는 감상기, 요왕기, 선왕기, 요왕 질대 등이다. 기메 종류가 적은 편이다. 감상기는 어느 굿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요왕기와 선왕기는 굿을 하는 마을에 따라서 제작, 설치, 이용 방식이 다를 수 있다. 요왕 질대는 요왕맞이에서 요왕질침을 할 때 꼭 필요한 기메이다. 한편 마을의 관행이나 심방의 성향에 따라서 제장에 살장, 솔전지, 발지전, 삼멩감송낙 등으로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제물로 고리동반을 쓴다면 너울지도 만든다.

한편 해안마을에서 가끔 ‘무혼굿’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제주도에서 무혼굿은 주로 바다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여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굿이다. 바다에서 익사한 비정상적인 죽음을 요왕맞이를 통해 정상적인 죽음으로 전환하고, 이어서 시왕맞이를 잘 진행해 저승의 좋은 곳으로 보내는 내용으로 진행한다. 이때 영집이 필요하다. 영집 안에 쌀가루 접시를 놓고 나중에 영집을 걷어 쌀가루에 새겨진 표식으로 영혼의 상태를 점친다. 즉 영집에 영혼이 와서 머문 흔적을 살피는 것인데 나비 비슷한 모양이 생겨 나비로 환생하는 것을 가장 좋게 여긴다

5. 안택의례와 기메

안택의례는 각 가정에서 새해를 맞아 집안의 무사안녕과 생업풍요를 기원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벌이는 의례이다. 주로 정월에서 음력 3월까지 시기에 지내는 편이다. 제주도에서 대표적인 안택의례는 ‘문전철갈이’, ‘철갈이’, ‘문전제’, ‘올레고사’ 등으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 으뜸 가신家神인 문전신에 대한 기원을 중심으로 부엌의 조왕, ‘고팡’庫房의 안칠성(안네), 집 뒤꼍 칠성눌의 밧칠성 등 여러 가신에게 기원한다. 여기에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는 삼승할망도 모시면서 함께 빈다. 역시 북두칠원성군에게도 ‘칠성제’라고 하여 지낸다. 들판 같은 생업 현장으로 나가 생업 풍요를 기원하는 ‘멩감제’도 벌어진다.

멩감제와 삼멩감송낙(조천읍 와산리 고댁 멩감제, 2008, 김윤수 심방 제작)
멩감제와 삼멩감송낙(조천읍 와산리 고댁 멩감제, 2008, 김윤수 심방 제작)

안택의례는 대부분 심방이 혼자서 간단히 비념 방식으로 진행하는 편이다. 제물을 간소하게 준비하고 심방이 무악기 없이 춤도 추지 않고 무구인 요령을 흔들며 간단히 짧은 시간 안에 기원하여 마친다. 안택의례를 지낼 때 의례의 성격과 규모, 관행, 혹은 심방의 성향에 따라 기메를 만들어 무구로 쓰기도 한다. 조왕비념에 따른 조왕기, 칠성제에 따른 칠원성군송낙, 멩감제에 따른 삼멩감송낙 등이 그러한 사례들이다.

6. 산신맞이와 기메

‘산신맞이’는 제주도 동남부 옛 정의현 지역에서 산신을 청하여 억울하고 비명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잘 보내고자 기원하는 굿이다.(이 글에서 <산신맞이와 기메>에 대한 서술은 마치순 심방(여, 1947년생), 김영철 심방과 면담에서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다. 마치순 심방은 제주도 옛 정의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심신이 아프거나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을 때도 나쁜 기운을 풀어내기 위해서 한다. 과거 ‘제주 4·3’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희생 당하였는데, 산신맞이를 하게 되면 심방은 스스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당시의 모습도 되살린다.

이 굿은 현재 정의 지역에서만 한다. 원래 들판에 나가서 하는 것인데, 요즘에는 자신의 밭이나 과수원 창고에서도 한다. 큰굿을 할 때는 산신맞이를 먼저 지낸다. 산신을 청하고 군병질침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늘날 산신맞이는 예부터 전승되었던 형태는 아닌 듯하다. 무혼굿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제주 4.3’이라는 비극을 겪으며 변화한 결과로 보인다. 산신맞이 관련 기메는 산신고비전, 산신기, 산신군병처서기, 요왕선왕기 등이다.

산신고비전(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기메 전시회, 2018, 마치순 심방 제작, 이하 동일)<br>
산신고비전(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기메 전시회, 2018, 마치순 심방 제작, 이하 동일)
산신기
산신기
산신군병처서기
산신군병처서기
요왕선왕기
요왕선왕기

산신고비전은 ‘산신송낙’이라고도 한다. 산신을 뜻한다. 소지의 절반 크기 정도로 접고 윗부분 모서리도 접어 감춘 뒤 가늘게 쪼갠 대나무에 끼운다. 3개를 만들어 제상에 놓아둔다. 산신기는 산신을 뜻하며, 산신을 청할 때 필요하다. 종이를 엽전 모양의 발지전처럼 오리고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에 묶는다. 산신군병처서기는 군병질침을 하면서 군병질을 달래고 풀어낼 때 쓴다. 군병처서는 독하고 악한 차사라고 여긴다. 종이를 사람 비슷한 모양으로 오리고 엽전 모양의 발지전도 덧댄다.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에 흰 무명천을 길게 늘어뜨려 함께 묶는다.

산신맞이에서도 산신과 함께 용왕, 선왕이 논다고 여기기 때문에 요왕선왕기도 만든다. 그런데 산신맞이의 요왕선왕기에서는 선왕에 더욱 초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왕은 ‘도체비’(도깨비)의 여러 직능 가운데 하나이다. 도체비는 산, 들판, 해변, 바다로 모두 돌아다니며 풍요를 주기도 하고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는 존재이다. 삼색 물색을 엽전 모양의 발지전과 함께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에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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