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주년 / 쓴소리 단소리] 고현승 대광경영자문차이나 대표

신문을 들고 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멀리 일제시대까지 소환하며 민족정론지를 구독하라던 동아일보 지부장에게 한참을 붙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민주진보언론이라며 한겨레를 후원해달라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이제 종이 신문은 동남아로 수출되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조간과 석간, 그리고 9시 뉴스가 국민의 눈과 귀를 잡고 있던 시절에는 주요 언론의 보도방향과 논평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했습니다. 인터넷매체들과 유튜브가 우후죽순처럼 나오면서 언론시장은 소비자의 데이터 사용 시간을 서로 당기는 점유율 전쟁터가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뉴스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상품을 고르고 구독과 알림을 설정하면 자기만의 세계에 쉽게 오랫동안 머물 수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접할 기회는 차단됩니다. 이런 시대에 팩트체크, 권력비판과 감시, 사회아젠더 발굴과 토론 등 언론의 기능은 뉴스를 팔기 위한 섹시한 썸네일이 되거나 구색 맞춘 장신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현대 언론은 미국에서 태동하였습니다. 미국의 독립운동이 개인들이 뿌린 팸플릿을 통해서 정치세력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가 헌법에 각인됩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는…(중략)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라고 언명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왕정을 거치지 않고 민주공화정으로 건국된 나라입니다. 국부들이 정치철학적 논쟁을 통해 시민이 다스리는 공화정과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대의민주정을 채택했습니다. 공화정의 핵심은 국가의 대표자를 시민들이 뽑는 것입니다. 시민들이란 개인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여 국가경영을 위탁합니다. 그리고 선출된 대표자들이 우리의 의견과 이해를 잘 대변하며 성실히 국가경영을 하는지가 항상 관심사입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비판할 언론이 필요했습니다.

언론은 시민의 입이자, 귀입니다. 그래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시민들은 다양한 의견을 갖습니다.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 성향을 띄기도 합니다. 언론은 우선 이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팩트와 식견을 제공해야 합니다. 언론은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무한히 떨고 있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원자요동 하나하나가 모여서 상쇄되며 분자가 되고 분자가 세포를 이루고 하나의 생명체로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시민 한 명 한 명은 부동산가격이 올라 기뻐하거나, 저소득으로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흡수통일이나 평화통일을 원하기도 하며, 페미니스트이기도, 혹은 정치혐오증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한 시민들이 통합되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소수의 파워엘리트가 의도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파동들이 상쇄되며 전체적으로 하나의 실체를 이루는 사회, 이게 민주공화정입니다. 반대로 폐쇄적인 사회는 1인이 가리키는 지향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회입니다. 언론은 이 사회를 유지하는 다양한 요동을 활자로 영상으로 만드는 직업적 소명을 가진 집단입니다. 자유로워야 하고, 권력집단이 시민의 의지와 이익에 복무하는지 용기있게 비판해야 합니다. 

재미교포 학자인 마이클 최는 「사람은 어떻게 광장에 나오는가?」라는 얇은 책에서 “공유지식”를 설파했습니다.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으로 촛불을 들고나오는 것은 다른 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감정과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확인이 되면 용기있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언론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이 평소에 느끼는 감정과 의견을 다른 사람도 공유하는 것인지, 그리고 팩트인지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만약, 언론사의 이해와 성향에 따라 공유지식이 가려지거나 왜곡된다면 언론은 그냥 하나의 문화콘텐츠 상품일 뿐입니다. 게다가 위선적이기까지 한 해로운 콘텐츠입니다. 흔히들 가짜뉴스 혹은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고현승.

‘제주의소리’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동시에 엄중한 이 시대에 언론의 소명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시민정치, 민주공화정의 복원을 소망합니다. 시민 한 명 한 명은 흔들리는 촛불입니다. ‘제주의소리’가 내년에도 이 촛불들의 흔들림을 담아내어 세상 곳곳을 환하게 비추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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