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⑧ 기메와 신화(본풀이)의 연계 양상과 의미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제주만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제주 무속’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무속에서 사용하는 ‘기메’는 종이 장식이나 신체 등 굿에서 쓰이는 종이 무구를 지칭한다. 종이 무구를 많이 사용하는 건 제주굿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의소리]는 권태효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민속학자 강소전이 집필한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전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종이 예술작품 기메의 매력을 재발견하면서, 제주굿의 가치도 널리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① 기메 조사의 필요성
② 기메의 명칭과 성격
③ 기메의 형태와 전승
④ 기메의 종류
⑤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제작 세계
⑥ 주요 기메의 제작 방법 및 과정
⑦ 제주굿과 기메의 활용과 실제
⑧ 기메와 신화(본풀이)의 연계 양상과 의미
⑨ 제주굿 기메의 가치와 활용


기메는 신의 형상을 지니면서 그 신체를 상징하기도 하고, 굿의 제차와 연계되면서 그 신격의 유래를 담은 본풀이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기도 한다. 일찍이 장주근은 의례와 신화(본풀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했다.(장주근, 『한국민속논고』, 계몽사, 1986.) 신의 내력을 말로 풀어 전달하는 것이 본풀이이고, 그것을 행위로 표현한 것이 제의라는 것이다. 굿에서 쓰이는 기메가 신체를 상징하는 경우는 그 신의 내력을 밝혀주는 내용의 본풀이와 연결되는 경향이 강하고, 제차를 구성하거나 진행하는 것과 연결되어 활용되는 기메는 그 굿거리의 제의 경위나 진행 과정을 이야기하는 본풀이 내용과 밀접한 관련을 맺기 마련이다.

제주굿 기메가 본풀이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강소전에 의해 먼저 논의된 바 있었다.(강소전, 『제주의 무구』, 제주대학교박물관, 2014. 강소전, 「제주도 굿의 무구 ‘기메’에 대한 고찰」, 『한국무속학』 13집, 한국무속학회, 2006.) 기메 제작 및 그 형상화에 본풀이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특히 특정 기메가 지니는 형상이나 성격이 굿에서 불리는 본풀이의 어떤 부분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잘 제시하고 있어 그 관련 양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초공본풀이>나 <차사본풀이> 등과 같은 관련 본풀이 부분을 제시하면서 기메의 근원을 찾는 것은 물론, 본풀이에 기대어 기메의 성격이나 형상, 용도 등도 설명하고 있어 본풀이와 연계해 기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양자 관계의 단순한 현상 위주의 연관성을 찾는 측면이 강한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그 단계를 기메와 본풀이의 관련 양상을 좀 더 유형화시키면서 의미를 찾는다면 한 단계 진전된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주굿에서 활용되는 기메들이 본풀이와 관련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대부분의 기메가 본풀이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기메가 본풀이와 연계되는 것은 분명하나 굿판을 조성하고 제차를 진행하는 데 필요할 뿐 본풀이에서 그 연관된 양상을 찾아보기 어려운 기메들도 상당수가 존재한다. 특히 기메와 본풀이의 상관성은 제주굿을 진행함에 있어서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의례와 집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주로 <초공맞이>, <불도맞이>, <시왕맞이> 등과 같이 굿에서 특히 비중 있게 여기는 의례에서 불리는 본풀이가 주로 기메 제작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초공맞이에서 불리는 <초공본풀이>는 굿법과 무조의 기원을 밝히는 성격이어서 굿에서 쓰이는 무구인 기메의 기원을 밝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무조신의 어머니인 자지멩왕 아기씨가 기거하는 곳이자 굿에서 신의 거처가 되는 곳의 표식인 살장이라든가 자지멩왕 아기씨가 착용하는 주자선생을 만날 때 썼던 청너울, 너사메너도령 삼형제와 젯부기 삼형제 등 무조신 성격의 여섯 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육고비 등 <초공본풀이>에는 여러 기메가 그것이 존재하게 된 유래를 밝히고 있어 본풀이와 기메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제주굿에서는 죽은 조상이 인간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서 죽음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오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시왕맞이가 있는데, 여기서 불리는 <차사본풀이>도 관련 기메가 기원한 까닭이나 등장하는 신격을 상징적으로 형상화시킨 기메가 여럿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저승차사가 이승에 올 때 차고 오는 ‘적베지’의 유래가 본풀이에 상세히 설명되는 한편 심방은 이것을 기메로 만들어 등에 달아매면서 저승차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저승을 관장하는 시왕을 표현한 시왕기, 수명이 다한 인간을 데려가는 차사신의 상징인 대명왕처서기, 저승을 지키는 문지기를 형상화시킨 돌레지 등은 <차사본풀이>에 등장하는 신격들이 기메로 만들어져 신체로 형상화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 아이의 출산과 무병장수를 관장하는 불도맞이 같은 굿거리에서 불리는 본풀이도 중요하게 연결된다. <삼승할망본풀이>에서 할망을 상징하는 할망송낙(삼불도송낙)이 만들어지고, 할망이 소지하고 있던 지팡이를 형상화시킨 할망 철쭉대를 기메로 만들기도 한다. 이외에도 성주풀이와 관련해 불리는 <문전본풀이>는 성주기와 성주꼿과 연관되며, 고리동반 너울지는 <이공본풀이>, 전상 탈과 <삼공본풀이> 등 본풀이와 연계해 기메의 연원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다수 있다. 이렇듯 여러 본풀이가 기메와 연결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굿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몇몇 제차가 중심이 되어 본풀이와 기메가 연결되어 제작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기메는 앞에서 논의된 바 있듯이 그 자체로 신체를 상징하는 성격을 갖기도 하고, 굿판을 조성하거나 장식하기도 하며, 굿의 진행을 돕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본풀이와 연관을 맺는 기메는 굿의 진행보다는 신체의 상징성 및 특정 공간이나 무구의 유래를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기메와 본풀이의 상관성을 살피는 데에 있어서는 전체 기메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본풀이와 연관성을 맺고 있는 한정된 기메를 대상으로 유형화시켜 그 성격을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런 면모를 보이는 기메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있을 것으로 본다.

A. 본풀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신체의 형상화
B. 본풀이의 신격 소지품의 형상화
C. 본풀이 특정 장면의 형상화

A는 기메 그 자체로 신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형태이다. 때문에 기메의 명칭에서 이미 그 제차에서 섬기는 신명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 조왕기, 칠성기, 시왕기, 성주기, 멩감기, 요왕기, 대명왕처서기, 돌(저승 문지기) 등 상징적인 형상으로 기메를 만들어 신격을 형상화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련 본풀이에서는 어떤 형식의 기메를 만들도록 한다거나 기메를 만들게 된 유래를 구체적으로 담은 것은 아니다. 다만 포괄적으로 신의 좌정 내력에 대한 본을 풀고 기메로는 그 신을 상징하는 신체를 만드는 양상이다. 굿에서는 특정한 신의 상차림에 그에 해당하는 기메를 꽂는데, 그 신을 모시는 유래와 어떤 직능을 지니고 신앙민에게 역할을 하는지가 본풀이에 담겨 설명되고 있는 양상이다.

B의 형태는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는 특정 신의 소지품 또는 상징물을 기메로 만들어 대상 신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형태이다. 예컨대 육고비, 삼불도송낙, 칠원성군송낙, 할마님 철쭉대(지팡이), 적베지 등이 이에 해당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육고비’라는 기메는 <초공본풀이>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육고비는 ‘무조巫祖 삼형제’와 ‘너사메너도령 삼형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 모양도 대나무 가지를 사이에 두고 그 위쪽으로는 무조 삼형제의 상징인 삼불도를 의미하는 송낙 3개를 만들어놓고, 대나무의 아래쪽에는 ‘너사메 너도령 삼형제’를 상징하는 각각 여러 겹으로 접은 종이 장식물 3개 등 도합 6개를 위아래로 나란히 배치하여 기메를 제작해둔다.

무조신巫祖神의 유래를 밝히는 <초공본풀이>에는 무조 삼형제는 황금산 주접선생과 노가단풍 지멩왕 아기씨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로, ‘본멩두’, ‘신멩두’, ‘살아살축 삼멩두’ 등 삼형제이다. 이들은 중僧의 자식이기 때문에 고깔 모양의 기메 형상으로 구현된다. 이들은 서당에서 갖은 심부름을 하며 귀동냥으로 글을 듣고 재灰 위에 글자 쓰는 연습을 하곤 해서 항상 재를 묻히고 다녔기에 ‘젯부기 삼형제’라 불리기도 한다. 이들 젯부기 삼형제는 궁에 갇힌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가고, 스스로 전생 팔자를 그르쳐 어머니를 살린 후 나중에 무조신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너사메 너도령 삼형제를 만나게 되고 이들은 서로 의형제를 맺는다. 그래서 여섯이 같이 형제가 되어 여섯 형제로 거듭난다. <초공본풀이>에는 이들이 ‘어머님 단속곳에 왼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나오고, 또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오는’ 과정을 통해 육형제를 맺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너사메 너도령 삼형제는 의형제를 맺은 이후 나중에 무악기巫樂器를 만드는 연물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여기서 여섯 형제를 상징하는 것이 곧 육고비이다.

저 당주집 몸주집 무어시메, 세별 상간주, 아닙네까?” 
동심절은 육고비를 걲어 놓안 
육고빈 무산고 허민 젯부기, 삼형제에 여사무 삼형제 육형제난 
육고비를 걲어 놓앙
“어마님아 
우리덜 보고프건 
상다락에 올라 오라그네, 동산 새별 초스름에 
뜨걸랑 그거 보멍 
어머님 시름 싯끕서

(제주대 한국학협동과정 편, 『이용옥 심방 <본풀이>』, 보고사, 2009. 156쪽.)

너사메 너도령 삼 형제와 젯부기 삼 형제를 형상화시킨 육고비.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너사메 너도령 삼 형제와 젯부기 삼 형제를 형상화시킨 육고비.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육고비 기메의 모양에서 윗부분의 삼불도송낙 세 개는 저지명왕 아기씨가 불도땅에서 젯부기 삼형제를 낳았다는 의미에서 만든 것이다. 저지명왕 아기씨가 황금산 주접선생을 찾아가서 아기를 낳으려고 할 때, 황금산 주접선생이 아기씨보고 시왕고분연질로 내려 불도땅에 가서 낳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편 젯부기 삼형제와 너사메 너도령 삼형제가 육형제를 맺었기 때문에, 이를 상징해서 위아래로 6개의 종이를 접어 대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동심결이라고 부르는 사람 형상의 매듭을 올려놓았다. 강소전이 김윤수 심방의 육고비 기메 사례를 든 것을 보면 3개의 송낙과 그 아래에 6개의 종이를 내리고, 대나무로 함께 묶은 뒤 동심결을 각기 하나씩 올려 육고비를 완성한 모습도 볼 수 있는데, 김영철 심방의 육고비는 단순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떻든 육고비는 젯부기 삼형제와 너사메너도령 삼형제가 서로 육형제를 맺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기메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런 기메는 이들의 신체를 상징한다고 하겠다.(강소전이 「제주도 굿의 무구 ‘기메’에 대한 고찰」에서 ‘육고비’의 사진으로 제시한 것에서는 위에 송낙 3개, 아래에 각기 매듭이 지어진 종이 장식물 6개, 그 위에 각기 동심결 하나씩 하여 6개를 올려놓고 있다, 강소전, 같은 글, 118쪽)

한편 삼불도송낙이나 칠원성군송낙은 불교적 색채의 신격임을 상징한다. 송낙 세 개가 하나의 대에 묶여있다면 그것이 삼불도이고, 일곱 개가 묶여있다면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것을 단골들은 쉽사리 인식한다. 먼저 삼불도송낙은 ‘할망송낙’이라고도 한다. 산육신産育神인 삼승할망을 상징하는 신체神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3개를 만들어 삼승할망상에 위패처럼 세워 놓는다. 종이로 삼각형의 고깔 모양을 접은 후 소지所志와 인정을 함께 놓고 이들을 대나무 가지로 연결한 후 세운다. 한편 북두칠성송낙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칠원성군송낙이라고도 한다. 역시 불도맞이를 할 때 칠성상(칠원성군상)에 놓는다. 송낙 일곱 개를 만들어놓은 후, 대나무 윗부분을 조금 갈라서 그 사이에 연이어 끼운다. 송낙 일곱 개를 함께 끼워놓은 의미는 북두칠성의 상징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불도맞이 때 북두칠성송낙 일곱 개를 각각 만들어 상에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하나로 만들어놓는다.(강소전, 같은 글, 117쪽.) 

경핸꼿씨를 내어주난 그 꼿씨를 디리난
할마님 꼿은 막 번성(繁盛)이 뒈연,
소만오천육백 가지 번성이 뒈연,
동청묵(東靑木) 서백금(西白金) 남적화(南赤花)여,
북흑소(北黑水)여 허여그네, 북더렌 검은 꼿이 피고,
혼가운디 오색(五色)가지 꼿이 핍데다.
경허난 심방이 아이 빌젠 허민,
북더레 방위(方位)서 북더래 머리행 나민 단명(短命)댄 허영
꼿이 막 시들어부난 자기 떨어진댄 허영,
북두칠원성군(北斗七元星君)에 명(命)과 복(福)을 빌엉
칠성기도(七星祈禱)도 하영 넹기는 법도 있수다.

(문무병, 『제주도 무속신화 열두본풀이 자료집』,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 1998. 183~184쪽.)

적베지를 등에 달아매고 굿을 하고 있는 제주도 심방의 모습.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적베지를 등에 달아매고 굿을 하고 있는 제주도 심방의 모습.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이처럼 명진국 할마님이 용왕국 따님애기와 꽃 피우기를 할 때 번성 꽃을 피우면서 단명을 막고자 북두칠원성군北斗七元星君에게 명命과 복福을 비는 데서 칠원성군 기메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할마님 철쭉대의 경우도 <삼승할망본풀이>에서 불도할망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라는 의미를 본풀이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해놓고 있는 형태이다. 곧 그 신격을 상징하는 소지품이나 상징물을 기메로 제작해 놓음으로써 그 기메 자체가 특정 신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신의 권능을 갖는다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한편 적베지는 강림차사가 망자를 데려가기 위해 등에 달아매고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기메 형태로 만들어 심방이 차게 되면 심방은 곧 저승차사의 상징이 되는 형상이다. <차사본풀이>에는 강님이 이승으로 오면서 적베지를 갖고 내려오다가 까마귀를 만나서 그것을 잠시 맡겼으나 잃어버리면서 인간 수명에는 순서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의 죽음기원신화적 내용이 중요하게 등장하며, 심방은 시왕맞이에서 실제 그것을 등에 매고서 저승차사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C의 형태는 본풀이의 특정 장면을 바탕으로 기메가 제작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것은 본풀이 내용에 따라서 공간을 형상화한 기메를 찾아볼 수도 있고, 본풀이의 특정 장면의 내용을 그대로 기메로 표현 제작한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본풀이에 등장하는 공간을 형상화 시킨 것으로는 여러 살장으로 꾸민 당클(삼천전제석궁)을 들 수 있다. <초공본풀이>에 모람장과 빗골장, 고무살장 등 여러 모양의 살장 기메를 만들어놓게 된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장식은 노가단풍 저지멩왕 아기씨를 가둔 공간을 기메 형태로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정국 대감님이 김정국 부인과 함께 천하공사 살러 가면서 살장으로 노가단풍 저지멩왕 아기씨를 가둬두는 그 장면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저여식(女子女息)인 따문에― 돌앙 가지도 못 허고, 이 노릇 어떵허민 좋느니? 앚아 의눈허고 황눈허는 것이― [말] 큰큰헌 집안네 궁안네 들여 앚져놓고, 웃닫이 알닫이 미닫이 가로닫이 옵닫이, 다 중간 아바님 중근 문은 어머님이 수레 두고, 어머님 중근 문은 아바님이 수레 두엇구나. 경 허고 그 우이는 일흔여덥 고무설장, 서른여덥 모람장은 빗골장 안을 잔―뜩 헤영, 아무 사람도 열지 못허게 잔뜩 헤영 가두앗구나. 정하님 불러 놓고, “아기씨랑 궁기로 밥 주고, 궁기로 옷 주곡, 영 헤영 살암시민, 공소 모창 오랑 넌 좋은 파략을 시겨주마―.”(허남춘 외, 『양창보 심방 본풀이』,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2010. 104쪽. 살장을 수식하는 숫자는 채록본마다 달리 나타난다. 이용옥 심방 구연본에서는 “마흔여덜 빗골장, 고무살장~”이라 하고 있고,(제주대 한국학협동과정 편, 같은 책,) 이중춘 구연의 채록본에는 “마흔여돕 모란장 서른여돕 빗골장 스물여돕 고무살장 지어간다. 느진덕이정하님 불러다가 이 아기 궁기로 밥을 주고 궁기로 물을 주고 옷을 주어그네 키왐시라. … 임진국 대감과 짐진국 부인은 나이 들어 어렵게 얻은 딸인 ‘노가단풍 저지멩왕 아기씨’를 집에 남겨두고 벼슬살이를 떠나야 할 처지가 된다. 그래서 걱정한 끝에 마흔여돕 모란장, 서른여돕 빗골장, 스물여돕 고무살장을 지어 그 안에 딸을 가두고 하인인 느진덕이정하님에게 살장의 구멍으로 아기를 키우라고 당부한다.”라고 하여 모란장, 빗골장, 고무살장에 대한 의미나 기능은 같으나 표현은 달리 하고 있다. 문무병, 『제주도 무속신화 열두본풀이 자료집』,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 1998. 120~121쪽.)

이렇듯 살장은 저지멩왕 아기씨가 머무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다고 본풀이에 나타난다. 모람장, 빗골장, 고무살장 등 여러 무늬를 달리하는 기메를 제시하고 이런 살장으로 장식한 공간에 가둬진채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가두는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신이 깃든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만들라는 의미이다. 장차 무조신의 어머니가 되는 저지멩왕 아기씨가 기거하는 공간이 설정되는 까닭과 더불어 굿판의 신이 좌정하는 곳인 당클 앞부분에 살장을 만들어 펼쳐 장식하는 굿법의 유래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이런 살장 안에는 아무나 갇힐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살장의 열쇠가 채워지거나 열 때도 이곳이 이미 신성한 공간으로 표식되어 있기에 신성한 능력을 요구한다. 동게남 은중절의 주접선생이 저지멩왕 아기씨가 직접 주는 권제삼문을 받기 위해 살장을 열어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무구인 요령으로 세 번을 흔들어야만 그것이 열리게 된다. 그만큼 살장으로 꾸며진 살장 안의 세계는 인간계와는 구분되는 공간이며, 신적 능력을 갖춰야만 살장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아울러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신통력이 있어야만 그 공간에 출입이 가능한 신성 공간이며, 이것을 기메를 통해 표식하고 있다. 곧 살장이라는 기메의 장식이 당클에 매어져야 하고, 그래야 비로소 그 공간은 신성공간으로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본풀이를 통해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흔여덥 고무설장, 서른여덥 모람장은 빗골장”이든 혹은 “마흔여돕 모람장, 서른여돕 빗골장, 스물여돕 고무살장”이라고 제시되어 있기는 하나 그저 그것일 뿐 어떤 무늬나 어떤 형태로 만들라고는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모람장, 빗골장, 고무살장의 제작방식은 심방 전승에 따르는 것일 뿐이다.

다음으로는 장면을 형상화시킨 양상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너울’을 들 수 있다. 너울은 자지멩왕 아기씨가 머리에 둘러쓰는 것으로, 무업을 하는 조상을 맞아들이는 초공맞이 ‘초공질침’에서 이런 너울이 등장한다. <초공본풀이>에서는 저지멩왕 아기씨의 부모가 하늘 옥황에 벼슬을 살러 간 사이 황금산 주자선생이 권재삼문을 받으러 내려오는데, 노가단풍 저지멩왕 아기씨가 모람장과 빗골장, 고무살장으로 둘러진 담 안에 갇혀 지내면서 나가지 못하다가 주접선생을 만나러 나갈 때 아기씨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너울을 쓴다고 되어있다.

노가단풍아기는∼ [말] 하늘을 보카 영 허연, 청너울을 더퍼 씌고, 땅을 보카 헤연 흑너울을 더퍼 쓰고, 무지쌍놈덜이나 보아지 카부덴 황너울을 둘러놓고 헤연,……(허남춘 외, 같은 책, 107쪽.)

이렇듯 노가단풍아기씨가 주접선생을 만나기 위해 착용했다고 하는 너울이 곧 기메로 제작되어 표현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곧 특정 장면에 등장하는 요소를 기메로 제작해 굿에서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들 수 있는 것으로는 성주꼿이 있다. 성주꼿은 성주풀이를 할 때 성주신을 상징하는 기메로, 상성주, 중성주, 하성주 세 개가 한 벌이 된다. 성주풀이에서는 <문전본풀이>가 불리는데, 거기에서 작은 아들인 녹디성인이 서천꽃밭에서 뼈살이꽃, 피살이꽃, 숨살이꽃을 구해다가 어머니인 여산부인을 되살리는 장면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피 오를 꼿 살 오를 꼿 오장육부 말 골을 꼿
사름 생길 꼿 똑똑똑허게 꺽어부난, 야~ 서천꼿밧디 화강(火光)
이 중천 뒈연, 화강이 중천이엔 헌 건, 꼿을 꺽으멍 막 건드러 부난 이것 저것 다 다댁인 것이~, 서로가 다댁이단 보난 하방이 중천 헤연, 불이 일어낫구나 요즘, 어디서 다른  디더서덜은 미신, 만도래기 석성게 낭이엔 헤여도, 옛날부떠 옛날 옛적부떠 서천꼿 밧디, 불이엥 허는 법이웨다에-.
화강이 중천허는 게, 서천꼿밧디 불이야-.
이 대목엔 뒈민 성주풀이 간 때엔 성주(成造)꼿 허영 놧당 그 꼿불 부찌고
큰굿에는, 꼿 아니 멘들앙 놉네다. 이 불 일어나도 이 집이 부제(富者)…

(제주대 한국학협동과정 편, 『이용옥 심방 <본풀이>』, 보고사, 2009. 418쪽.)

성주꼿 기메는 이렇듯 서천꽃밭에서 여산부인을 되살리고자 가져온 꽃을 기메 형태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도 있다. 김영철 심방은 여산부인을 서천꽃밭의 꽃으로 되살리고는 그 누었던 자리에 잡풀을 없애고서 좋은 꽃이 자라나도록 하고자 하여 성주꼿을 만들었다고 전하며,(2022년 8월 23일 김영철 심방이 구술한 내용이다. <문전본풀이> 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그런 기메의 유래를 본풀이의 특정 장면에서 가져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풀이 채록본에서는 등장 하는 것이 확인되지는 않는다.)그것이 성주의 상징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상이 어떻든 서천꽃밭에서 가져온 꽃으로 여산부인을 살리는 장면과 연관되어 기메가 만들어지는 것만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다양한 기메가 본풀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굿에서 활용되는 물질문화가 구술문화와 연계되어 전승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 실상 본풀이 중에서도 특히 일반신본풀이는 신의 좌정 내력이나 신의 성격을 제시하는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런 본풀이 속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사설 속에 굿에서 활용되는 무구의 기원이나 유래, 그 기능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담겨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곧 의례에 활용되는 물질문화의 근본을 구술문화가 뒷받침하는 것을 보여주는 적절한 범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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