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세계 여성의 날과 성평등

한 중앙일간지에 출생률과 관련된 기사가 게재되었다. 한국의 출생률(0.72명, 2023년)이 역사상 최저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충격적이라며 연신 보도되는 시기에, 그 기사는 한국의 출생률을 걱정하면서 자발적으로 출산을 지원하려는 한 사업가의 선의를 보도했다. “찔끔찔끔 준다고 애를 낳나, 1억원은 줘야 낳지”라는 기업가의 말이 기사 제목이었다. 한 기업가의 선의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다만 기사의 제목, 표현된 문장 그 자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정말로 재정적 지원이 모자라서 출생률이 떨어지는 것일까? 그래서 더 과감한 재정지원이 사회적 해결책이 될까? 기사 제목이 시원시원하게 느껴지나, 생명에 대한 존중도, 출생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낮은 수준의 인식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것 같아 유감이다. 

2022년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평등’과 ‘성소수자’ 용어를 삭제하고 결과적으로 ‘성 건강 및 권리’로 개정하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정 사유로 낙태 허용을 우려하는 의견을 꼽았다. 이러한 상황은 실상 포괄적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흐름에 있어서 성 재생산권에 대한 일부 사회계층의 반대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헌법 36조 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모성을 강조하면서 ‘아이를 낳는 사람’, 이른바 여성의 ‘출산력’에 집중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부모가 있다. 생물학적 진화 과정 그리고 육체적 관계를 통해 생물학적 생명이 태어난다. 그런데 이 생명의 탄생은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부모라는 존재가 생물학적 과정을 밟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필요하다. 페로몬과 같은 끌림이나, 공감하고 일치하는 친밀감의 정도를 더해가는 사랑의 감정이 필요하다. 생명의 탄생 이후에는 상호간의 배려와 역할도 중요하다. 이에 더해 부모라는 존재의 미래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결국 출산은 존엄한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며, 개개인들의 미래와 사회의 미래,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총합을 의미한다. 한편, 필자는 그러한 사회적 관계와 의미가 생략된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을 ‘폭력’으로 규정한다. 생명의 탄생은 매매로 이뤄지거나, 힘이나 권력에 의한 강제력으로 성립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각으로 보면, 앞서 언급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구조는 출산에 관련된 구조적 폭력을 수반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모성’이라는 개념에 가두어두고 여성을 ‘아이 낳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모성’이라는 존재에 집착하며 출생률을 높이는 정책 방향을 고집한다. 이는 출산에 관련된 모든 사회적 존재를 포괄하지 못하고, 모성에만 책임을 지운다. 남성과 같은 그 외의 존재와 사회적 여건을 오히려 이러한 출생의 문제에서 소외시키거나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남성에게도 출산 휴가를 주는 등 사회적 제도의 진전이 있다고 항변하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통념적 인식에서 그러한 제도는 약간의 변명거리밖에 되지 못한다. 

많은 언론과 사회적 논쟁들이 출생률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상황을 프랑스와 비교하곤 한다. 프랑스의 가족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적확한지에 대한 평가는 진행 중이다. 일단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는 출생률 수치를 보인다. 그러한 정책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요인 중 하나가 사회적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함으로서 생명의 탄생에 기여할 수 있는 관계들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생명의 양육과 관련된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도록 각종 지원책과 보호자의 노동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했다. 단순한 여성, 모성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요인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출생률을 경제적으로 분석하면서, 부양인구, 생산인구, 소비인구 등등 인구 규모 확대를 꾀하는 주장을 전개하거나, 인구수를 국력의 크기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동의를 표할 생각은 없다. 또한 떨어지는 출생률에 대한 우려를 전하고 싶지도 않다. 필자가 보기에 출생률의 문제는 단순히 여성의 출산에만 매몰된 문제가 아니라, 출생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출생률의 문제를 단순한 재정지원의 문제로만 파악하는 인식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인식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생명의 탄생에 관련된 모든 존재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오히려 소외시키며, 여성을 ‘아이 낳는 사람’으로 격하시키고 차별하는 사회적 인식과 구조의 결과가 지금의 현실임을 지적하고 싶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성평등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계기가 되는 날이길 바란다. 필자는 출산과 관련하여 여성의 재생산권이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반적인 여성의 권리 보장을 통해 평등 세상이 성취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모두가 다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라면 굳히 우리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우리의 아이들을 낳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