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백년해로의 인연을 맺는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br>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백년해로의 인연을 맺는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후부터 불교가 태동했다. 무엇을 깨달았을까?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았다고 한다. 연기론은 인연으로 하여 모든 것이 생긴다는 불교의 중심교리다. ‘전생의 인연’, ‘시절인연’, ‘옷깃만 스쳐도 삼생의 인연’, ‘부부는 3천 겁의 인연’ 등은 다 불가에서 나온 말이다.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화엄경’은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성립된다. 과거는 인연에 의해 성립되었고, 현재 성립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성립될 것이다”고 한다.

인연이 업을 만들고, 업이 윤회를 만든다. 그리하여 해탈할 때까지 끊임없이 생사를 반복하는 게 불교가 말하는 인간존재의 실상이다.

불교의 세계관은 모든 사물이 인연에 의해서 생멸한다고 보는데 기실 한 인간의 일생은 인연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도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다. 가족, 친지, 친구 등 다수의 인연이 있지만 특히 이성과의 인연은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아무튼 인생의 최대 과업은 선연,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남은 여생은 악연도 선연으로 바꾸고, 선연을 만들어 가면서 착하게 살고 싶다.

불교가 인연을 중시하는 ‘인연의 종교’라면 기독교는 은혜가 넘치는 ‘은혜의 종교’이다. 찬송가를 보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찬송가에서 은혜를 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그러니까 찬송가는 ‘은혜의 송가’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가?

예수의 탄생, 죽음과 부활까지 그리스도의 일대기가 담긴 4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는 은혜의 말씀들로 넘쳐난다.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한 노래집 ‘시편’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문학 ‘잠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온통 은혜의 헌사로 도배된 성경은 ‘은혜의 경전’이라고 칭해야 마땅하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을 때, 은혜의 바다에 퐁당 빠져버린 느낌이 드는 건 이 은혜가 하나님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속죄적 사랑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인연은 사람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개념이지만, 기독교의 은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수직적이고 절대적인 베풂이다. 선행이 선연을 낳고 악행이 악연을 낳는다. 그러나 은혜는 대가 없이 거저 주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다.

불교가 모든 일의 배후에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독교는 모든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 또는 은혜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인연과 은혜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통속이다. 왜냐하면 인연은 은혜로부터 오는 거고, 은혜는 때때로 인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백년해로의 인연을 맺는 것이다. 게다가 둘 사이에 귀여운 자녀들이 생긴다면 행복은 배가 된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부부가 있다면, 그건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넝쿨째 굴러온 행복을 걷어차 버리는 일이다.

결혼식 주례사 같은 이 말은 70 평생을 살아보고 깨달은 진리다. 그 어떤 세속적인 부와 명예와 권세도 부럽지 않지만 산책길에서 만난―손 꼭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나, TV에서 본―아이들과 함께 함박웃음을 날리는 부부의 모습이 나는 진짜 부럽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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