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프로젝트그룹 짓다’가 보여준 ‘농업과 커뮤니티 그 너머’

제주도에서 뭐 먹고 사냐고? '반농반X 자급자족 도전기!'

[기사 수정=14일 08:51] 제주시 동쪽 구좌읍 평대리에는 소농로드라는 공간이 있다. 

마을에서 자란 먹거리로 만든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당근 수확을 체험할 수 있다. 인문학 공동체 모임이 열리고, 제주 곳곳의 젊은이들이 모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올 수 있는 자연 속 키즈카페 같은 곳이자 서로 연결되고 연대하고 싶은 이들이 함께하는 커뮤니티 공간,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녹여내는 거푸집 같은 곳이다. 

이 곳을 꾸려가는 이들은 프로젝트그룹 짓다. 이 이름에는 ‘농사를 짓고, 문화를 짓고, 관계를 잇다’라는 뜻이 담겼다. 이들의 핵심 정신은 반농반X다. 여기서 X는 ‘나답게 살 수 있는 무엇’이다. “농사를 지으며 작더라도 자립을 하고, 나머지는 친구들하고 나누고, 그 다음에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꿈을 찾자”는 생각으로 2017년 시작됐다. 

생태공동체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소농로드. 이 공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젝트그룹 짓다 멤버들과 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사진=프로젝트 그룹 짓다 ⓒ제주의소리
생태공동체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소농로드. 이 공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젝트그룹 짓다 멤버들과 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사진=프로젝트 그룹 짓다 ⓒ제주의소리

농사를 짓고, 함께 어울리고, 기획하다

청년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던 솔(본명 조준희, 41)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대안적인 삶을 꿈꾸며 제주로 온 뒤 “청년들이 모여서 다같이 재미있게 살 수 없을까” 고민했다.

서울에서 문화예술 교육자 겸 기획자로 일하던 비나(본명 박정숙, 42)는 조 대표와 같은 학교 동료로 인연을 맺다가 사랑에 빠져 제주까지 오게 됐다. 번아웃에 시달리다가 ‘나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연다(본명 김지수, 30)는 솔이 있던 대안학교의 제자였다. 대학에서 경제무역학을 전공한 뒤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동기부여가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를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마침 제주에서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솔과 비나의 얘기를 듣고 합류하게 됐다.

연고 없는 곳에 정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팔아보자”라며 처음 시도했던 커뮤니티 펍은 결국 문을 닫았다.

다행스레 마을 사람들의 호의가 큰 힘이 됐다. 마을 어른들은 밭을 내어주고, 번번이 농사를 망치던 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지금의 공간을 짓는 데 일손을 보탰다. 

짓다는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마지막 주 토요일, 집에서 각자 반찬을 싸와서 대화를 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모임 ‘월간 도시락’은 하나의 주제를 가진 토론으로 나아갔다.

직접 밭일을 하며 흙 위에서 뒹굴며 제주와 농업을 느껴보는 ‘수확 페스티벌’에는 전국 곳곳에서 청년들이 모였다. 이 축제는 제주와 농업을 이해하는 과정이자 지역살이를 탐색하는 장이 됐다.

지난 1월 열린 수확 페스티벌의 모습. 모집 단 며칠 만에 30명이 모였다. 다양한 지역과 꿈을 가진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모이면서 마을에 활력이 돌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난 1월 열린 수확 페스티벌의 모습. 모집 단 며칠 만에 30명이 모였다. 다양한 지역과 꿈을 가진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모이면서 마을에 활력이 돌고 있다. ⓒ제주의소리

문화 인프라가 제주시 도심 중심이라는 아쉬움에 만든 ‘칸트의 식탁’도 짓다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작은 시골에 평생의 대부분을 머물렀지만, 식사자리에서의 만남을 통해 여러 사람의 통찰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는 데 착안한 인문학 커뮤니티다. 청년들이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다양한 작당을 시도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모임이다. 

지역의 뮤지션들과, 청소년들과, 생태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과, 건강한 먹거리의 소중함을 공감하는 사람들과, 제주 곳곳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과의 협업과 교류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점점 입소문을 타며 프로그램마다 사람들이 모이고, 다른 지역에서 이들의 시도를 주목하는 견학 행렬도 이어진다.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실까 생각해보면 저희가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청년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희가 무연고, 무자본으로 지역에서 농사를 통해서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 자체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비나)

프로젝트그룹 짓다를 이끌고 있는 (왼쪽부터) 연다, 솔, 비나. 이들이 추구하는 '반농반X'는 농업으로 정말 필요한 것들만 채우는 작은 생활을 하는 동시에, 저술·예술·지역활동 등 하고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이다. 일본의 생태운동가였던 시오미 나오키의 저서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사진=프로젝트그룹 짓다 ⓒ제주의소리
프로젝트그룹 짓다를 이끌고 있는 (왼쪽부터) 연다, 솔, 비나. 이들이 추구하는 '반농반X'는 농업으로 정말 필요한 것들만 채우는 작은 생활을 하는 동시에, 저술·예술·지역활동 등 하고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이다. 일본의 생태운동가였던 시오미 나오키의 저서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사진=프로젝트그룹 짓다 ⓒ제주의소리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다

짓다는 감자와 당근을 수확하고, 싱싱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건강한 카레를 만들어 판매하면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가고 있다. 정성스레 키운 봄 감자로 대형 쇼핑몰 플랫폼에서 유기농 감자 부문 1위를 기록한 것은 작지만 놀라운 성과였다. 지역과 작물을 이해한 뒤 직접 농부의 일상을 경험해보는 당근과 감자 수확 체험에도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는 커뮤니티의 단단한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들의 소신과 협업의 노력들이 깨지지 않도록, 새로운 시도를 뒷받침할 경제적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도전 과제다.

“저희 셋 뿐 아니라 더 많은 청년들과 자립하는 구조를 짜보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예전부터 꿈꿔왔던 동아시아 청년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주 안 뿐 아니라 육지와 해외 청년들을 같이 모아낼 수 있는 커뮤니티와 포럼도 열고 싶어요.”(솔) 

제주 동쪽의 고요했던 마을은 이제 청년들이 넘나들며 꿈틀대는 에너지로 가득 차고 있다. 제주에 온 청년들이, 제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제주를 떠나지 않고 도심 밖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실마리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는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가면 갈수록 청년들이 ‘나 혼자 잘 살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지나치고, 무관심 하고 이런 일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예전엔 그랬어요.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먹고 사는 게 그 안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혼자서는 문제가 닥쳤을 때 문제가 되게 크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함께 골똘히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면 그 큰 문제들이 작아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충분히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저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이렇게 살아보면 좋지 않을까’ 하고 환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통해서 스스로 다른 경험을 쌓는 기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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