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생오름 연구보고서] ③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오름은?

해발 1169m, 제주시 해안동에 위치한 어승생오름은 수려한 경관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대표 오름으로 꼽힌다. 제주의 자연·문화·인재를 위해 공익사업을 진행해오는 이니스프리 모음재단은 지질학자 안웅산, 식물학자 송관필, 동물학자 김은미, 여행작가 조미영과 함께 1년 조사를 거쳐 ‘어승생오름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그림은 송유진이 그렸다. [제주의소리]는 제주 오름 보전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자 어승생오름 연구보고서 일부를 매주 한차례 연재한다. 어승생오름 뿐만 아니라 제주도와 오름 전반에 걸친 유용한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편집자 주]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오름은?

월라봉에서 바라보는 대평리와 산방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월라봉에서 바라보는 대평리와 산방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 남서부에 있는 군산과 월라봉은 제주도 오름 중 가장 오랜 연대를 가지는 오름에 해당한다. 월라봉은 약 86만 년의 연대를 가지며, 이 오름에서 유래한 용암류는 박수기정 절벽이 상단부를 이루고 있다(고기원 외, 2013). 그 인접한 군산의 표면에는 알칼리현무암과 현무암질 조면안산암이 분포하며, 각각 53만 년과 86만 년의 연대를 보인다. 이러한 용암의 분포는 군산이 한 번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오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군산의 아랫부분에는 화산재층이 두껍게 분포한다. 해당 화산재층은 특징적으로 휘석과 감람석반정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제주도 지표의 다른 용암류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해당 암석은 박수기정 절벽의 동쪽 최하부에 바다와 접하는 지점에서도 화산재층 및 용암층으로 소규모로 분포하며, 약 91만 년의 나이를 보인다. 군산의 기저부는 감람석휘석현무암이 분출하는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군산의 초기 화산활동 또한 91만 년 어간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서에 기록된 천 년 전 화산분출은 과연 존재했나?

《세종실록》〈지리지〉(1454), 《고려사》〈오행지〉(1451), 《신증동국여지승람》 (1531) 등 역사서에는 제주에 화산활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존재한다. 제주도 천 년 전 화산활동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원전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는 《세종실록》〈지리지〉(1454)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1002년에 탐라에서 보고된(혹은 전해진) 바에 의하면 해중에서 솟아 나온 산이 있는데, 그 탐라산의 4개의 구멍에서 붉은 물(용암)이 솟아 나왔으며 5일 만에 그치었다. 그곳에서 솟아 나온 붉은 물은 기와와 같은 돌들이 되었다. 이러한 상서로운 소식을 접한 고려조정은 기이하게 생각하여 1007년 어간에 태학박사 전공지를 제주에 보내어 직접 가서 보게 하였다. 전공지가 직접 탐라를 방문하여 바다에서 솟아오른 산에 대하여 탐라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산이 솟아 나오는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고, 벼락이 치는 것 같이 땅이 움직였다. 무릇 칠 주야가 지나서야 비로소 개었는데, 산에는 풀과 나무가 없고, 연기만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바라다 보니 석류황과 같기도 하여 사람들이 갈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전공지는 직접 산 아래까지 나아가 그 모양을 그려 나라에 바쳤다.

이러한 화산활동 기록에 대해 선인들 또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을 제시해 왔다. 선인들은 역사서의 有山湧出海中(유산용출해중)이라는 부분에 주목하고, 비양도, 군산, 우도, 가파도 등 해안에 있는 여러 소화산체들을 역사서에 기록된 화산일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바다에서 산이 솟아났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소화산체들은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천 년 전 분출한 화산으로 볼 수 없다고 보고되었다(강창룡, 2004). 이들 화산체에는 천 년 전보다 오랜 연대를 가지는 고고학적 유물들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까지 천 년 전 화산일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던 비양도 또한 연대측정 결과 약 3만 년 전(27±9ka, 고기원 등, 2008)이라는 연대가 얻어져 천 년 전 화산분출과는 거리가 있음이 밝혀졌다. 최근의 여러 연대측정 결과에 의해 우도는 약 7만 년 전 분출하였으며(안웅산 외, 2019), 군산은 92만 년에서 53만 년에 걸쳐 약 30만 년의 휴지기를 가지고 재활성화된 오름(고기원 외, 2021)임이 밝혀졌다. 가파도의 경우, 82~75만 년에 걸쳐 형성된 화산섬임이 밝혀졌다(고기원과 박준범. 2010).

야외 화산층서적 관점에서 제주도에서 가장 젊은 화산으로 추정되는 화산 3개(송악산, 비양도, 일출봉)에 대하여 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송악산이 약 3.8ka전 이후 분출한 화산으로 가장 젊은 화산인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안웅산, 2016). 또한 최근 한라산 약 1300m 고지에 위치하는 돌오름은 약 2000년 전(분석 오차 1000년) 분출한 소화산체로 보고되었다(Marsden et al., 2021). 돌오름은 지금까지 연대가 밝혀진 오름 중 가장 젊다. 이러한 연대분석 결과들은 역사서 상의 천 년 전 화산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약 3800년의 연대를 보이는 송악산은 그 분출 시기가 역사기록과 약 2000년 이상의 시간적 차이를 보인다. 이에 비해 가장 젊은 화산으로 밝혀진 돌오름의 경우 1000년의 분석 오차를 고려하면 1000년 전 화산분출 역사기록과 가장 유사하다. 하지만 한라산 고지대에 분포한 오름의 위치는 바다에서 솟아났다는 역사서 기록과는 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서에는 화산체의 크기가 높이 100여 장, 둘레 40여 리라고 기록된 데 반해, 돌오름의 경우 높이(비고) 50m, 기저부 직경 230m로 비교적 작아 그 규모도 기록과 큰 차이를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 상에 기록된 제주 화산활동 기록. / 사진=이니스프리 모음재단<br>
세종실록지리지 상에 기록된 제주 화산활동 기록. / 사진=이니스프리 모음재단

천 년 전 화산활동에 대한 연구는 연대측정은 물론 역사기록에 대한 화산학적 재해석이 필요하다. 기존 여러 연구자들이 1002년과 1007년의 두 차례 기록을 두 번의 서로 다른 화산분출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단성화산에서 일어난 일련의 화산분출 사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1002년의 기록은 탐라(제주)의 화산활동이 최초로 고려 조정에 보고(혹은 전달)된 시점이며, 1007년의 기록은 태학박사 전공지가 탐라를 방문하여 화산분출 사건의 실체를 확인한 결과를 정리하여 보고한 시기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역사서 상의 화산분출 기록을 화산지질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면, 역사서에 기록된 화산활동은 높이가 100여 장, 그 둘레가 40여 리로 기록될 만큼 상당한 규모의 화산활동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100여 장은 화산체의 높이를, 그 둘레는 용암이 주변을 덮은 면적이나 화산재가 날려가 쌓인 면적을 표현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有山湧出海中(유산용출해중)이라는 표현은 화산활동이 바닷물과 반응하는 수성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지시하는 것이다. 또한 赤水湧(적수용)이란 표현과 其水皆成瓦石(기수개성와석: 고려사)이라는 표현은 용암이 분출하고 흘러가는 형상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역사서에 기술된 여러 형상은 당시의 화산활동이 수성 화산활동과 마그마성 화산활동을 모두 가지는 상당한 규모의 화산임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수성 화산활동과 마그마성 화산활동을 모두 가지는 상당한 규모의 화산활동으로, 역사서에 기록될 만큼 매우 젊은 분출 시기를 가지는 화산이 역사서에 기록된 화산일 것이다. 하지만 1000년 분출연대를 가지는 화산은 지금까지 보고된 바 없다. 분출연대가 3.8ka 이후로 밝혀진 대정읍 해안의 송악산이 가장 유력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송악산의 분출연대(약 3800년 전)와 역사 기록상의 화산분출 시점(서기 1002년)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서에 기록된 서기 1002년과 1007년의 탐라는 현재와는 다른 시간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감안하여야 할 것이다. 당시 탐라인들은 과거 특정 시기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거나 전달할 수 있는 현재와 같은 시간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과거 인류의 시간개념에 관해서는 20세기까지 문자를 가지지 않았던 문명화되지 않은 종족들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결과들을 통해 어렴풋이 그들의 시간개념을 들여다볼 수 있다.

수단의 하르툼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누에르족의 경우, 에번처 프리처드가 1930년대 연구할 당시, 전체 인구가 25만 명 정도나 되며, 외부인들과 접촉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건들 사이의 긴 간격을 연도 단위를 통해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시간으로 측정하는 특징을 보였다고 한다. 구조적 시간이란 1년 단위의 시간이라기보다 사람들을 서로 연계시켜주는 훨씬 긴 시간으로 이루어진 틀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10세대 또는 12세대 전까지의 과거에 대한 역사는 가지고 있었으나, 그 이상의 시대에 대해서는 모든 현상이 시간적으로 뭉뚱그려져서 시간과 순서에 무관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무르시족 또한 서양인들의 방식과 달리 한 사람의 나이를 연대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시맨들의 경우 정해진 기간으로서 1년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아무도 자신의 나이를 확실히 알지 못했으며, 오직 가족 내의 다른 구성원들과 비교해서 자기의 나이를 추측했다고 한다. 이들 종족의 공통적 특징은 현대의 문자를 갖지 못한 종족들로, 시간을 추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독특하게 시간을 바라본다. 즉 시간을 인간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흐르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Aveni, 1989).

이러한 문화인류학적 연구들의 사례를 볼 때, 제주의 최후기 화산활동에 대한 공간적인 정보와 현상에 대한 기억은 옛 제주인들로부터 전해질 수 있었겠지만, 그 시간적 정보가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 다. 태학박사 전공지가 제주를 방문하여 제주인으로부터 화산활동에 관해 정보를 요구했을 때, 아마 그들이 제시한 정보는 시간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단편적인 화산활동 양상과 그 위치 등에 관한 사항들만이 개개의 단편적 정보로 제공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전달된 공간정보와 화산활동 현상이 태학박사 전공지에 의해 기록되고, 이후 후대 기록자의 취향과 정보수집 능력에 따라 취사 선택되어 역사서에 기재되고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는 역사서 상의 화산활동을 논리적 과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실체를 밝히고자 하는 그동안의 여러 시도에 있어 어려움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고려조정의 정책 혹은 탐라의 필요 때문에 고려와 탐라의 교류가 어느 시기엔가 증가함에 따라 제주에서 일어난 화산분출에 관한 정보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고려조정으로 보고된 사항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집되고 전달된 내용이 반드시 그 당시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단언할 만한 증거는 없다. 탐라시대 당시 제주인들의 시간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에 관한 어떠한 연구나 기록도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주인들의 시간 인식적 성향에 관한 연구들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실제 화산분출이 일어난 시기와 역사서에 화산활동이 기록된 시기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향후 연대자료의 축적, 새로운 연대분석 기법의 개발과 적용, 제주 탐라시대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연구가 뒷받침된다면, 역사시대 화산분출 기록의 실체가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제주도는 활화산 지대인가?

《세계화산백과사전(Encyclopedia of volcano)》(Sigurdsson et al., 2000)에 제주도는 활화산 지대로 분류되어 있다. 화산학적인 관점에서 1만 년 이내의 화산분출이 있었던 화산지대는 활화산 지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화산활동에 대해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도 전설을 통해 전해지거나 혹은 연대측정을 통해 1만 년 보다 젊은 화산활동이 있었던 지역은 활화산 지대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역사서에 천 년 전 화산활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여러 곶자왈, 그리고 송악산, 일출봉 등의 오름들은 1만 년 이내에 분출한 매우 젊은 오름들임이 최근의 연대측정 연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기에 활화산 지대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형성한 용암들을 분출한 거문오름분석구 또한 8천 년 전에 분출한 오름이다. 웃산전굴, 북오름굴, 만장굴, 용천동굴 등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용암 내부 바닥에 퇴적물이 거의 없이 마치 엊그제 형성된 것처럼 보존된 것도 매우 젊은 연대를 지시하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 이 기사의 출처는 ‘어승생오름 연구보고서’입니다. 본 연구는 이니스프리 모음재단의 오름 가치보전 프로젝트 일환으로 지원 받아 수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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