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마을신앙] ② 건입동 영등손맞이

한국의 대표 관광지 제주도, 그러나 앞서 긴 세월 동안 제주는 고유한 마을신앙과 함께 끈끈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섬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23년 연구자 68명과 함께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그리고 제주도의 마을신앙을 조사했다. 일명 ‘한국의 마을신앙―전라·제주권’ 조사 보고서다. [제주의소리]는 ‘한국의 마을신앙―제주도편’을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한다. 급변하는 변화 속에 급격히 사라지는 제주의 마을신앙을 통해 제주 공동체 문화의 근원을 만나본다. / 편집자 주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영등손맞이

조사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제주시수협 위판장
조사일시 : 2023년 2월 20일
조사자 : 강정식(제주대학교)

제보자 : 이용옥, 68세, 여, 제주칠머리당 영등굿보존회 대표

건입동 산지천 전경. / 사진=국립민속박물관<br>
건입동 산지천 전경.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마을 개관

건입동健入洞은 제주시 동지역洞地域 바닷가 마을이다. 제주항濟州港이 있어 바닷길의 주요 거점 구실을 한다. 제주시수산업협동조합(이하 ‘제주시수협’)도 제주항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시수협은 제주시 동지역과 읍면지역(조천읍, 구좌읍, 우도면, 애월읍)에 속한 여러 마을의 어촌계를 두루 아우른다.

제주시수협 관내의 어촌 마을은 여전히 어업이 주요 생업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해녀들의 물질이 아직도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건입동을 비롯한 몇몇 어촌계를 제외하면 어업 활동은 점차 위축되고 있는 곳이 많다.

제의 성격

흔히 ‘건입동 영등맞이’ 혹은 ‘칠머리당 영등맞이’라고 하는 제의는 간단히 정의하기 어려운 사례이다. 건입동 영등맞이라고 하는 명칭은 실제 성격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하에서는 편의상 건입동 영등맞이라 이르기로 한다. 

건입동 영등맞이는 제주시수협 관내 여러 마을에서 벌여온 영등굿의 하나이다. 제주시수협 관내의 어촌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영등굿을 활발히 전승해 왔다. 지금도 영등굿 혹은 잠수굿을 전승하는 마을이 여럿이다. 제주시 건입동, 삼도2동의 탑동, 조천읍 조천리·신흥리·함덕리·북촌리, 구좌읍 김녕리·하도리·세화리·종달리 등이다.

건입동 영등맞이는 특정 마을 영등굿과 지역 수협 풍어굿을 함께 벌이는 사례이다. 본래 건입동의 영등굿이면서 제주시수협의 풍어굿을 겸하고 있다. 제주시수협의 풍어굿은 관내 여러 마을을 아우르는 굿인 셈이다. 제주도 내 각 지역 수협은 영등굿 혹은 풍어굿과 유교식 풍어제를 함께 벌이고 있다. 이것만 보면 건입동 영등맞이도 특별한 사례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건입동과 제주시수협처럼 특정 마을 영등굿과 지역 수협의 풍어제를 함께 벌이는 사례는 없다. 한림수협, 서귀포수협, 성산수협 등은 풍어굿과 풍어제 모두 수협만 독자적으로 벌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건입동 영등맞이의 정체를 분명히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건입동 영등송별제는 지금도 건입동만의 제의라고 하는 점을 함께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제의의 유래와 전승

건입동 영등맞이는 본래 건입동 본향당인 칠머리당에서 간단히 벌이던 의례이다. 해녀와 어부들을 중심으로 한 건입동 주민들만 참여하던 것이다. 음력 2월 1일은 영등신이 제주도에 이른다고 하는 날이다. 옛날에는 이날 여러 마을에서 영등신을 맞이하는 의례를 벌였는데, 이를 영등맞이 혹은 영등손맞이라고 하였다. 영등신은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해조류, 어패류 등의 씨앗을 뿌려 주다가 2월 보름에 우도牛島를 거쳐 떠난다는 전승이 있다. 이에 따라 도내 바닷가 마을에서는 영등맞이와는 별도로 영등신을 보내는 영등송별제를 벌여왔다. 지금은 영등맞이를 벌이는 곳이 거의 없다. 영등굿이 영등맞이와 영등송별제로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옛날에는 영등신을 맞이하여 보낼 때까지 계속 굿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등굿 하나였다는 말이다. 지금은 영등달 영등송별제에 해당하는 시기에 굿을 하면서 영등굿이라고만 하는 셈이다. 건입동 영등맞이는 영등신을 맞이하는 시기에 벌이던 영등굿의 옛 모습을 간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입동 영등맞이는 제주시수협 풍어제를 겸하여 벌이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의례의 주체가 건입동 주민들에서 제주시수협으로 바뀌다시피 하였다. 본래 한 마을의 제의에서 제주시 동부지역은 물론 서부지역인 애월읍까지 포괄하는 지역의 제의가 된 셈이다. 그런데 제주시수협 관내의 여러 마을에서 따로 영등굿을 하기도 하여 의례가 중복되기도 하니 향후 전승의 방향을 주목해 볼 만하다.

제당 형태와 제의 절차

제당 형태와 신격

건입동 영등맞이는 제주시수협 위판장을 제장으로 삼아 벌인다. 한자로 ‘축원 영등환영풍어제’라고 한 현수막을 높이 매달았다. 현수막 아래로 주요 신들의 번을 늘어뜨렸다. 현수막 좌우로는 제주시수협 산하 어촌계, 선주회의 명칭이 적힌 천들을 늘어 놓았다.

현수막 아래쪽에 병풍을 치고, 2단으로 된 제단을 두었다. 제단 앞쪽은 바닥에서 조금 높이고 자리를 깔아 굿을 진행하기에 적합하게 해놓았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구경꾼들을 위한 좌석을 마련하였다.

건입동 영등맞이의 대상신은 칠머리당 당신들과 요왕·선앙, 그리고 영등신이다.

제장 전경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장 전경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이 가운데 당신은 본향신인 도원수 감찰지방관과 그 부인인 요왕해신부인, 해신선왕과 영등대왕, 남당하르방과 남당할망이다. 감찰지방관을 제외하면 바다와 관련된 신들이다. 감찰지방관은 건입동 사람들의 호적을 차지한 신이다. 요왕해신부인은 바다 생업을 돌보아 주는 신이다. 해신선왕과 영등대왕은 본래 당신이 아니다. 남당하르방 부부는 다른 곳에 있던 당신을 함께 모시는 것이다.

건입동 영등맞이에서는 이들 대상신의 위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영등송별제에서는 본향신인 도원수 감찰지방관 부부를 비롯하여 요왕·선앙의 위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 신격의 위상에 부합하는 제차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의 준비과정

풍어제는 제주시수협에서 담당한다. 제관을 선정하는 일과 이들을 관련 지식을 전승하는 일도 제주시수협에서 준비한 계획을 따른다.

영등맞이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회원들이 준비한다. 기메와 같은 것은 미리 회원들이 전수회관에 모여 만들어 둔다. 설비와 제물을 옮기는 것도 모두 회원들의 힘을 빌린다.

제의 진행과 절차

제관 및 금기

제관은 의례에 따라 다르다. 유교식 풍어제는 수협에서 선정한 제관들이 따로 있다. 대체로 포제와 같은 방식으로 정한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대축, 집례, 알자 등을 비롯하여 집사를 둔다.

영등맞이의 사제자는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에서 따로 정한다. 영등맞이굿의 수심방은 김윤수였다. 작년에 사망하면서 그 후계가 불명확해졌다. 본래 한 마을의 메인심방 자리는 마을공동체에서 정하는 법이다. 칠머리당의 경우는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인 칠머리당영등굿의 경우에는 이전의 김윤수와 같이 기능 보유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에서 기능 보유자를 따로 지정하지 않고 있으니 이 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알기 어렵다. 영등맞이에서는 보존회에서 수심방을 선정하여 내세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다. 수심방은 고정되어 있어 초감제를 비롯한 주요 제차를 담당하고, 소미들에게 나머지 제차를 분담시키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풍어제의 제관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포제의 경우와 같은 금기를 요구한다. 재계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따르기 어렵다.

영등맞이에서는 돼지고기를 금기하지 않는다. 점심에 돼지고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당이 아닌 곳에서 벌이니 그다지 문제가 없다. 심지어 칠머리당에서 벌이는 영등송별제에서도 돼지고기를 금기하지는 않았다. 점심 시간에 구경꾼들에게 국수를 제공하면서 돼지고기를 함께 넣어주곤 하였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모습은 아니다. 본향당에서는 어디에서나 철저하게 돼지고기를 금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제수 준비

풍어제의 제수는 모두 수협에서 준비한다. 초감제가 끝나는 대로 영등맞이를 위하여 진설했던 제물들을 잠시 치워두고 풍어제 제물을 진설한다.

영등맞이의 제수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에서 준비한다. 웬만한 것은 모두 외부에서 구매하여 쓴다. 구매해서 쓰기 곤란한 메, 생선, 계란 정도만 따로 장만한다. 조리가 필요한 제수는 보존회 전수관에서 장만해 두었다가 제장으로 옮겨다 쓴다.

제의 진행, 절차

심방들은 제장에 도착하는 즉시 진설을 시작하였다. 제단 상단에는 칠머리당에서 모시는 신들의 위패를 놓았다. 위패 앞에 각 신위에 대한 제물을 차렸다. 메, 떡, 채소, 계란 등이다. 하단에는 신위와 상관 없이 과일과 술잔을 올렸다. 제단의 좌우에는 작은 제상을 두었다. 왼쪽은 요왕상, 오른쪽은 선앙상이다. 선앙상에는 돼지머리도 올렸다. 제단 앞에는 데령상, 공시상, 보답상을 나란히 놓았다. 다시 그 앞에 신자리를 깔았다.

건입동 영등맞이는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영등맞이를 진행하다가 잠시 중단하여 10시에 맞추어 풍어제를 지내고, 풍어제가 끝나면 다시 영등맞이의 남은 제차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편의상 풍어제의 진행에 대해서 기술하고, 영등맞이의 진행에 대해서는 따로 기술하기로 한다.

풍어제 독축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풍어제  

풍어제는 10시 8분에 시작되었다. 퐁어제는 대체로 포제酺祭와 같은 방식을 따랐다. 집례執禮가 홀기笏記에 따라 외치면 제관과 집사가 따랐다. 초헌례, 전폐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음복수조, 망료로 진행되었다. 제사가 끝나는 대로 현장에 나온 수협 관계자들이 차례로 배례하였다. 이때 해녀들도 배례하였다. 이 점은 포제와는 다른 점이다. 건입동은 따로 포제를 지낸다. 이날 벌이는 풍어제는 건입동이나 어느 특정 마을과 관련한 제의가 아니다. 제주시수협 관내 모든 바닷가 마을과 관련한 제의이다.

10시 30분경에 제사가 끝났다. 풍어제가 끝남과 동시에 제물을 내리고 영등맞이의 제물을 다시 진설하였다.

영등맞이  

영등맞이는 삼석울림, 초감제, 새도림, 추물공연, 석살림, 상당숙임, 액멕이, 산받음, 도진으로 진행하였다.

삼석울림

삼석울림은 하늘에 굿을 시작하노라고 고하는 뜻이 있다. 미리 정해진 시간이 되면 시작한다. 이날은 8시 55분에 시작하였다. 북, 설쒜(꽹과리), 데양(징)으로 느린 장단, 중간 장단, 빠른 장단에 해당하는 늦인석, 중판, 잦인석을 차례로 친 다음 늦인석을 잠깐 쳐서 마무리하였다.

초감제 군문열림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초감제

초감제는 신을 제장으로 청하는 뜻으로 벌인다. 8시 57분에 시작하였다. 고덕유 심방이 관디, 갓 차림으로 나섰다. 시간이 촉박한 탓에 대폭 줄이면서 진행하였다. 제주시수협 측에서 9시 40분까지 끝내 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제청설입, 베포도업침, 날과국섬김, 연유닦음, 신도업, 군문열림, 신청궤, 금사진침, 정데우 등의 소제차를 갖추어 진행하였다. 베포도업침부터 신도업까지는 앉아서 장구를 치면서 진행하고 나머지는 무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진행하였다. 군문열림과 신청궤에서는 양쪽에 자리 잡은 연물이 안팟연물로 연주하였다. 군문열림, 신청궤는 특히 생략이 많았다. 군문열림은 군문돌아봄, 군문에 인정, 군문열림 등을 각각 세 차례 씩 문전을 오가며 진행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날은 한 차례씩으로 줄였다. 신청궤도 여러 차례 문전을 오가며 진행하는 법이지만 이번에는 시늉만 하고 말았다. 게다가 신도업 다음 순서인 새도림은 제외해 두었다. 이렇게 하여 억지로 9시 40분에 마쳤다.

곧 제주시수협이 주관하는 유교식 풍어제를 위한 준비 시작되었다. 10시 8분에 풍어제를 시작하여 10시 30분 경에 마쳤다. 풍어제 제물을 내리고 영등맞이 제물을 다시 진설하느라 시간이 소요되었다.

새도림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새도림  

새도림은 신이 오가는 길과 제장, 제장에 있는 사람의 부정을 씻어내는 순서이다. 본래 초감제에 포함되는 제차이다. 이곳에서는 대개 신도업과 군문열림 사이에 진행하는 법이다. 풍어제를 정해진 시간에 지내기로 한 탓에 초감제와 별도로 진행하였다. 10시 38분 경에 시작하였다.

새도림은 소미가 맡아 진행하는 법이다. 윤미란이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나섰다. 물감상, 부정가임, 새도림을 갖추어 진행하였다. 물감상은 물이 정화수로 적합한지 검증하는 의미로 벌인다. 부정가임은 감상기 끝으로 물사발의 물을 적셔 뿌리면서 제장의 부정을 씻는 모양을 하는 순서이다. 새도림은 단골들의 부정을 씻어내는 순서이다. 이때 단골들을 여럿 신자리에 앉혀놓고 진행하였다.

새도림은 도레둘러뷈, 젯북제맞이와 한 묶음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이날은 이들을 생략하였다. 이렇게 해서 새도림은 10시 55분 경에 모두 끝났다.

추물공연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추물공연

추물공연은 제청으로 모신 신들에게 제물을 흠향하도록 권하는 뜻으로 벌인다. 10시 57분 경에 시작하였다. 이용순 심방이 신자리에 장구를 받아 앉고 진행하였다. 반주 없이 간단히 말미를 한 다음 공선가선부터 장구를 치면서 진행하였다. 날과국섬김, 연유닦음, 신메움, 공연, 비념, 주잔넘김 등 소제차를 갖추었다.

추물공연을 하는 동안 심방 동료들과 구경꾼들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는 제주시수협 측에서 제공하였다.

추물공연은 애초 영등맞이에서는 포함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규모를 갖출 경우에나 포함하는 제차이다. 이는 다음에 순서인 석살림도 마찬가지이다. 칠머리당 영등맞이가 제주시수협의 풍어굿을 겸하면서 확장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석살림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석살림

석살림은 신을 즐겁게 놀리는 뜻으로 벌인다. 심방과 단골, 구경꾼들까지 어울려 춤추며 즐긴다. 양승건 심방이 퀘지, 퀘지띠, 갓 차림으로 나섰다. 11시 32분경이다. 신메와 석살림, 신부찜, 바랑탐, 덕담, 서우제소리 등을 차례로 진행하였다. 신부찜 대목에서는 안팟연물로 진행하였다. 서우제소리 대목에서는 이용옥 심방이 대신 나서서 노래를 불렀다. 이용옥이 서우제소리에 장기가 있어서이다. 과거에도 자주 이처럼 한 바 있다. 서우제소리 대목에는 소미들이 여럿 나와 흥겹게 춤추면서 놀았다. 이는 단골과 구경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뜻이었으나 단골이 2인이 동참하였을 뿐 구경꾼들은 거의 나서지 않았다.

서우제소리는 잦인서우제를 거쳐 자취움으로 진행하면서 흥을 돋우다가 마무리한다. 잦인서우제에서는 빠른 장단으로 노래하다가 자취움에서는 노래는 아예 빼고 매우 빠른 장단만을 쳐서 춤에만 몰두하게 한다. 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다음 마무리 하는 셈이다.

석살림은 12시 30분 경에 끝났다. 1시간 가까이 진행한 셈이다. 대부분은 양승건 심방이 진행하고, 마지막 10분 가량은 이용옥 심방이 진행하였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오래 진행된 탓인지 구경꾼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석살림에 나와 어울려 노는 사람도 과거에 비해 많지 않았다. 석살림 자체는 꽤 길게 진행되었지만 놀판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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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숙임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상당숙임

상당숙임은 이때까지 대우한 신들을 본래의 자리로 보내면서 술을 권하는 순서이다. 이용옥 심방이 신자리에 앉아 요령을 흔들면서 진행하였다. 12시 33분 경 시작하였다. 이때 소미들은 제반을 걷고 술잔을 비우고 다시 채웠다.

액멕이  

액멕이는 액운을 막아달라고 비는 순서이다. 이용옥 심방이 상당숙임에 이어 간단히 진행하였다. 희생 없이 보답만 바쳐 기원하였다. 12시 50분 경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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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받음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각산받음

각산받음은 단골들의 운수를 점쳐 보는 순서이다. 상당숙임이 시작되자 조금 뒤에 이용순 심방이 산받음을 시작하였다. 단골이 건입동 해녀 3인밖에 없어 산받음도 곧 끝났다.

건입동 영등맞이는 오전 9시 쯤에 시작하여 오후 1시도 되기 전에 끝났다.

영등손맞이의 의의 및 변화

건입동 영등맞이는 무속식 의례인 굿과 유교식 의례인 풍어제를 병행하는 사례로 주목할 수 있다. 한 공간에서 상이한 제법의 제의가 이루어진다. 제주도 내에서 이루어지는 수협 영등굿 혹은 풍어제는 대체로 유사한 방식이다. 다만 다른 곳에서는 유교식 풍어제를 아침 일찍 해놓고, 뒤에 영등굿 혹은 풍어굿을 벌인다.

건입동 영등맞이는 마을공동체의 굿이 지역 생업공동체의 굿으로 바뀐 특별한 사례이다. 그 결과 주도권이 마을공동체가 아니라 수협으로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본래 굿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일도 생긴다. 수협에서 풍어제를 지내는 시간을 정하고 해당되는 시간에 무조건 굿을 멈추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초감제를 모두 마치지 못하여 새도림을 일단 제외하고 마무리하였다가 풍어제 제의가 끝난 뒤에 비로소 새도림을 하고 있다. 이것은 굿의 절차로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새도림의 의미에 걸맞은 방식이 절대 아니다.

건입동 영등맞이는 수협 풍어제와 연계되면서 굿의 규모가 커졌다. 건입동만의 영등맞이로 벌일 때는 비념 수준이었다. 그전 간단한 비손으로 마쳤다. 수협 풍어제와 연계되면서 넓은 제장에서 규모를 키워서 굿을 하게 되었다. 보존회 회원들을 두루 동원하다 보니 안팟연물을 치기도 한다. 안팟연물은 가장 규모가 큰 굿인 신굿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오창명, 『제주도 마을 이름의 종합적 연구Ⅰ: 행정명사, 제주시편』, 제주대학교출판부, 2007
•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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