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통 순대로 활력이 넘치는 제주시 보성시장

보성시장 이도1동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 장태욱  

중앙로터리에서 남문로터리를 지나 광양사거리에 이르는 이도1동 거리는 과거 제주시 상권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었다. 하지만 일도지구(일도1, 2동), 신제주지구(연동, 노형동)에 새로운 집단 주거공간이 형성되면서 구시가지 상권은 퇴조의 길을 걷고 있다.

구시가 상권 중 재래시장의 경우는 상황이 더 열악하다. 산뜻한 실내장식에 주차장 시설까지 제대로 갖춘 대형할인매장을 상대하기엔 구시가지에 속한 재래시장의 형편은 초라하기만 하다.
  

▲ 보성시장에도 다른 재래시장들과 마찬가지로 빈 점포들이 늘어가고 있다.  ⓒ 장태욱

이도1동에 있는 보성시장의 경우도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 건물은 낡은데다 주차공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그저 허름한 시장에 불과하다. 상가 안에 들어서면 빈 점포들이 여럿 눈에 띈다. ‘임대’라는 글을 써놓고 새로운 입주상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점포가 새 주인을 만나기는 쉬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상가 내에 활기를 잃지 않는 가계들이 있다. 대부분 순대를 손수 만들어 파는 식당들이다.   
  

▲ 보성시장에는 순대를 파는 식당들이 많다.  ⓒ 장태욱  

예나 지금이나 제주에서 순대는 돌잔치나 결혼식 피로연같은 잔칫상에 빼 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다. 심지어 사돈에게 대접하는 상에도 순대가 오르게 마련이다. 아마도 고기가 귀했던 시절 잔칫집에서 고기 부족분을 순대를 통해 보충했던 풍습이 이어져 왔을 것이다.

보성시장 내에 있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제주의 전통 순대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순대에 돼지 머리고기나 내장을 수북하게 담은 접시를 보면 훈훈한 인심까지 덤으로 얹어 받는 느낌이 든다.  
  

▲ 보성시장 내 쌍둥이 식당 사장님이 금방 삶은 순대를 꺼냈다.  ⓒ 장태욱

이곳 식당들은 야유회나 잔칫집에 필요한 순대를 대량으로 공급하기도 한다. 봄철 야유회나 체육대회가 많을 때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고 한다. 전통 재래시장이 전통 음식과 궁함이 맞아서 누리는 특수 효과다.

모처럼 가족끼리 보성시장으로 외식을 갔다.

‘쌍둥이식당’ 사장님이 금방 삶은 순대를 꺼내 선풍기를 틀어 식히고 있었다. 두꺼운 순대를 구경만 해도 배가 부른 듯 하다. ‘강남식당’ 사장님은 돼지 머리를 삶아서 식히고 계시고, ‘하영순대’ 사장님은 칼로 부지런히 뭔가 썰고 계시다. 손님들이 보성시장을 많이 찾을 수 있게 홍보 잘 해달라는 게 사장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감초식당 순대로 전국에 잘 알려진 식당이다. ⓒ 장태욱
  

보성시장에서 파는 제주 전통 순대가 다 맛있지만 그 중 ‘감초식당’이 가장 유명하다. 아이들과 감초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 아이들은 사장님은 물론이거니와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학생과도 제법 낮이 익었다.

보성시장에서만 17년 째 장사를 하신다는 이무순 사장님의 명성은 전국에도 익히 퍼져있다. ‘감초식당’의 순대가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소재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식객>에 실리는 과정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쌍둥이 식당 이무순 사장님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나오는 감초순대의 주인공이다.  ⓒ 장태욱

이무순 사장님이 순대를 제조해서 서울의 어느 백화점에 납품을 했는데, 허영만 작가가 우연히 그 순대를 먹고 그 맛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 후 작가의 사무실에서 ‘감초식당’으로 전화가 왔다. 허영만 작가의 작품에 소개해도 괜찮을는지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허영만이 누군지, 식객이 뭔지 알게 뭐라? 다 귀찮으니 전화 끊으라고 야단했지. 그리고 그 날 저녁에 그 얘기를 우리 아이들한테 했는데 아이들이 난리라. 어머니는 왜 그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냐는 말이었지.”  

만화 '식객' 허영만의 만화에 감초식당의 순대가 소재가 되었다.  ⓒ 장태욱 

그런데 며칠 후 작가의 사무실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결국 서울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순대 만드는 전 과정을 상세히 파악했고 그 과정을 만화 <식객>에 실었다. 그 결과 감초식당의 순대는 전국의 명물이 되었다. 여행 차 제주도에 왔다가 일부러 순대를 먹으러 이곳에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꽤 많다고 한다.  

이무순 사장님은 식당에서 순대를 파는 일 외에도, 지역에서 들어오는 주문도 받고 있고, 백화점 납품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소기업 못지않은 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체손님을 받기 위해 주방이 차지하던 공간까지 객실로 만들었다. 주방은 다른 점포를 쓰고 있다.  
  

   
순대 한 접시 7천원에 순대 한 접시와 국물과 반찬이 나온다. 우리 네 식구 회식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 장태욱  

재래시장이 대부분 침체의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보성시장에서 순대를 먹고 있노라면 아직도 우리 재래시장에 생존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미련을 지울 수가 없다. 

7천원 짜리 한 접시 주문하면 손님 입장에서 미안하다 싶을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준다. 어떤 날은 고기가 듬뿍 담긴 국물을 뚝배기 그릇으로 가득 덤으로 줄 때도 있다. 깍두기와 장아찌 등 밑반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우진이 아들이 순대를 먹고 있다.  ⓒ 장태욱  

그 훈훈한 인심에 반해 이곳에는 5살 된 우리 아들로부터 70대 노인까지 이곳을 찾은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서라도 훈훈한 인심을 나누고자 허름한 재래시장을 즐겨 찾는 마니아층이 있기에, 살벌한 양극화의 시대에서도 이곳에는 실오라기 같은 한 가닥 희망이 남아있는 것이다.

모처럼 7천원에 가족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밝은 웃음이 재래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사장님들의 기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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