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애자 의원- 故 양용찬 열사 13주기를 추모하며

▲ 양용찬열사 추모제에 참석한 현애자 의원
세월이 많이 흘러갔습니다.
순백의 고운 섬, 제주에 개발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던 80년초였지요.
외지인들의 땅 투기로 찢기는 제주 땅을 아프게 바라보아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4.15총선의 민주노동당 의원의 신분이 되서야 감히 열사의 영전에 첫 향을 드리며 죄스런 눈물을 흘리는 못난 사람입니다. “잊은 적 없이 살았다” 말하기엔 크나큰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가신지 20여년이 넘치는 긴 세월 중에 단 한번 찾아뵙지 못한 못난 이 몸이 용서를 구하며 열사가 머물렀을 시선 끝을 새기려 옷깃을 여밉니다.
 
본래 제주는 아픈 역사의 흔적으로 점철된 섬나라의 설움으로 얼룩진 땅이었습니다. 조용하던 이 땅은 60~70년대 공업을 우선시하는 경제개발계획의 여파에서 빗겨 나가는 듯하더니, 살찐 국내 독점자본들의 탐욕은 반도의 끝을 강타하러 몰려들었습니다. 곳곳의 제주 땅이 외지인에게 차근차근 넘어가 섬 전역의 노른자들이 없어져 갔습니다. 매춘관광이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고 관광산업이란 명목으로 하나둘씩 퇴폐, 향락업체들이 들어서 갔지요. 우리 이웃들과 자매들이 원주민이 되어 호텔의 종업원으로, 골프장의 캐디로 나서게 될 날이 수년 안에 오리란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예측했었지요. 서툴고 맘뿐인 우리들이 다 막아내기에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때 열사께서는 진실을 직시하셨습니다. 아픈 제주 땅을 너무나 진하게 사랑했고 곪아가는 오름들과 들녘을 보듬고자 떨리는 맘으로 투쟁을 불사르셨지요. 아니 열사께서는 크고 작은 몸부림으로 항거하시다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를 외치며 끝내 옴 몸을 던지고 가셨습니다. 감히 못 난 우리들을 울리고야 말았던 진한 민중사랑-제주사랑을 가슴에 묻으셨습니다.

참으로 따스한 제주의 햇살과 바람이 불던 날 우리는 열사를 보내며 다짐했었습니다. 눈물  조차 흘릴 수 없는 그 무엇에 눌려 고개를 떨구며 새겼었지요. 제주-민중들의 삶을 앗아가는 그 어떠한 것들도 용납하지 않으리라, 끝내 매판적인 자본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날을 만들어 가리란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열사여!
열사께서 가신지 20여년이 흐르는 동안, 제대로 한 것이 없습니다. 죄스러운 못난 몸짓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가증스러울 속력으로 제주 땅은 유린되어지고 있습니다. 제주경제의 근간인 감귤산업은 초토화되어지고 있고 70%를 자랑했던 1차 산업은 뿌리째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다 제주특별자치도마저 별다른 여과 없이 추진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독점재벌들에게 온갖 특혜를 보장하는 기업도시특별법을 주장하고 심지어 매춘관광-매춘업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제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독점자본은 현 정부의 지방분권정책으로 포장되어 전국 각지를 야심차게 강타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회 앞 노상에는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와 총파업 투쟁, 400만 농민들의 한숨과 “쌀개방 반대투쟁”, 장애인등 사회적 약자들의 몸부림과 차별철폐투쟁, 반인권적. 반통일적인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등.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국민들의 절망스런 몸부림이 늘어서고 있습니다. 온 나라가 수구보수세력의 횡포와 사대-매판권력에 유린되고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살림을 아프고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사여!
부족하고 못난 우리들이지만, “강물이 모여 냇물이 되고 냇물이 흘러 바다가 되듯이” 열사가 남기고 간 민중사랑의 정신은 남아있는 자들의 심장에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든든합니다. 드디어 수구보수세력에 맞서 노동자, 농민. 서민의 희망의 배를 출항시키고야 말았습니다. 4.15총선을 통해 흩어졌던 민족민중진영의 애국세력들이 뭉치고 있습니다. 한치 앞도 헤쳐 나가기에 힘이 부친 상황일지 모르나, 이제 잘못되어 온 역사의 물줄기를 되 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열사여!
열사가 바라보고 있는 따스한 반도의 끝, 서귀포 바다로 가진 자들의 횡포와 탐욕을 모두 쓰러내고 이 낡고 썩어빠진 세상을 확 뒤집어 엎어 민중의 바다로 나아가게 힘을 주소서. 혼신을 다해 제주사랑-민중의 역사를 이루어가겠습니다.

                                                                                                                      2004년 11월 6일 새벽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현 애 자 
 
이 글은 현재자 의원 홈페이지(
www.lovemin.org)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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