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200km 여름 순례길 이야기(1)

"일어나 걷는 자는 동사하지 않는다"

강정마을 사람들이 고행의 순례에 나섰다. 하늘이 도왔는지 한여름의 뙤약볕 보다는 선선한 바람이 반기기는 했지만, 하루 30km를 걷는 순례는 차라리 고행이었다.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현재 수도권 순례를 하고 있는 도법스님네의 생명평화탁발순례가 하루 10km 수준이니, 노인에서 아이, 부녀자들이 절반 이상인 마을 순례단에게 이는 아무래도 무리인듯 싶다.

그들은 왜 이토록 무리함을 안고 이 여름 고난의 행보를 선택했나.

ⓒ고유기 시민기자
이제 해군기지 문제는 이 여름이 지나고나면, 마침내 거칠 것 없는 국면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해군은 늘 말해왔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현재 최종보고가 임박한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만 끝나면 해군은 이제"할 것은 다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미 내년 해군기지 예산을 포함한 국방예산이 제출된 상태다. 밀어부칠 일만 남은 것이다. 도지사도 이미 작년 여론조사로 결정된 문제니 어쩔수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정말, 이 여름이 지나면 7년째 끌어오던 해군기지 건설문제는 극단의 대립으로 터져나올지 모른다. 강정 주민들은 작년 국회가 제시한 부대조건에 일말의 희망을 기대해 왔다. 그러나 그 이후 보여진 해군의 행보와 제주도의 방관에 주민들은 차츰 다시 절망하기 시작했고, 지난 3월 이후 그 감정이 지속적으로 고조되어 왔다.

한여름 200km의 대장정 도보순례는 주민들의 갈라진 가슴마다에 결결이 박힌 어쩔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의 그 감정을 다잡기 위한 각고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걷는 그들은 그저 말이 없다.

도청 앞, 결연한 대오로 출발한 순례단의 행보는 10km, 20km 를 잰 걸음으로 나아감에 따라 엄연한 고통의 시간으로 박힌다. 어느 덧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허리가 휘청거린다. 허리에서 시작된 나아감의 진통은 점차 엉치를 조여 땀에 절여놓더니 종아리에 구슬박히는 통증으로 뒤틀리다가, 어느 새 어깨에 온 하늘을 얹힌 듯 전신의 무게로 눌러 온다. 고통이다. 걷는게 이토록 고통일 줄이야.

ⓒ고유기 시민기자

그래도 걷는다. 칠순 노로의 저 앞의 어른들도 걷는다. 11살의 이 또랑한 소년은 힘들어도 미소짓는다. 그래서 모두들 걷는다. 이렇게 6일을 걸을 것이다. 무려 70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걸을 것이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이 고행의 순례에서 스스로 배우려 하는 것이다. 보상이니 인센티브니, 장학금이니 여러 색깔로 교묘하게 덮쳐오는 기지건설 논리앞에 비록 힘들지만 한 발씩 내딛는 걸음만이 비로소 길은 우리 앞에 있음을 배우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강제집행, 연행, 그 예상되는 폭력앞에 좌절하지 않고 목숨이 다할지언정 나를, 우리 마을을 지켜내는 길은 오로지 일어나서 걷는 것임을 배우려 하는 것이다. 늘 깨어 일어나 있어야 함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일어나 걷는 자는 동사하지 않는다!

김태환 지사, 박영부 국장도 함께 걸어라!

김태환 지사는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이미 경조사 정치의 달인이라는 것은 정평이 나 나있다. 심지어 무슨 개업집도 빠지지 않고 다니는 걸 본적도 있다. 현장행정이니 대화행정이니 무수히 다닌다. 공무원들 만나보면 부지런한 지사앞에 곤혹스럽지만 대단하다고도 한다.

ⓒ고유기 시민기자
그런데, 이렇게 제주의 속살을 더듬으며 한 번쯤 시간 내서 걷는게 진정 현장행정이라 고하고 싶다. 누가 해군기지를 찬성한다고 하는가. 순례 첫 날 30여개의 마을을 지나오며, 마을 안길 밭에서 일하다가, 마을 안길 평상에서 더위를 달래다가, 읍내 상가에 머리를 내민 사람들 모두다 "고생 햄수다!", "잘햄수다!", "아이구 이게 무슨 일이꽈!" "해군기지 꼭 막아냅써!" 일성이다. 도대체 작년 해군기지 찬성한다고 앞장섰던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굴까. 현장행정의 달인 부지런한 김태환 지사는 이 '바닥 민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느 마을, 조금은 한적한 바닷가 동네에 탁트인 바다절경이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강정 젊은치들 일부가 "여기가 해군기지 훨씬 적지 아냐?" "차라리 이 곳에 지어라" 는식의 한풀이를 해댄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 왈,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으면 됐지, 또 남의 마을에 그걸 하라고 하느냐!" "우리가 끝장내고 제주에서 쫓아버려야지"한다.

어느 덧 강정사람들은 일종의 이 닥친 해군기지 문제가, 그것으로 인한 이 고통이 스스로의 업인냥 여기는 듯 하다. 화순에서, 위미에서 해군기지로 갈등하고 아파할 때 남의 일로 여겼던 우리들이 못내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평화니 생명이니 하는 것도, 어느 덧 절박한 실체가 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또한 그들은 걷는 것이다. 고행의 나선 것이다.

그리고 믿는다. 그들이 비록 고통보다 앞서 내딛는 바쁜 발걸음, 그 고단한 흔적이야말로 다름 아닌 이제 강정마을을 넘어 제주를 살리는 풀씨의 씨앗이라는 것을.

참으로 아프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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