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의 시네마 줌⑪] 이규형 감독의 ‘DMZ 비무장지대’

▲ 이규형 감독의 'DMZ 비무장지대'.
“박쥐떼가 음침한 굴 속에 있는 바위 천장에 겹겹이 매달려 있다가 그중 한 마리가 날면 다른 박쥐들은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허둥지둥 날아다니듯이 이 영혼들은 함께 가느라고 갈팡질팡했다. 길잡이 헤르메스가 영혼들을 음산한 황천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1979년 강원도 중부전선 신병훈련소. 영화과를 다니다 군에 입대한 지훈(김정훈 분)은 영사기가 돌아가는 순간 기분이 잡친다. 어찌하여 또 임예진과 전영록이가 나오는 하이틴영화란 말인가.

“군대는 성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런데 왜 하이틴영화만 보죠?”

여기에 대해 답하는 이는 없으나 이 영화는 1979년 전방 DMZ 수색병이었던 감독의 자전적인 체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사망과 전두환 정권의 12?12쿠데타. 이 영화는 47일간이라는 시간동안 ‘주체조선’과 ‘자유대한’이 혼미 속에서 공존하고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분단비극이 마침내 스크린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뢰와 땅굴, 그리고 남북의 청년들. 어머니는 20년 동안 아들을 남자로 기르지만 DMZ는 20초만에 그들을 전사로 만들어버린다.

   
사막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신병교육도 끝이 나고 이등병 지훈은 첫 대면에서부터 마음이 끌린 이명기 병장(박건형 분)의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야! 너 이런 노래 아냐?”
“무슨 노랩니까, 이병장님?”
“사나이 가는 길에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친다는…….”

이미 한물 간 노래들은 하늘과 산과 총성이 그치지 않는 그곳에서 제 빛을 발하던가. 아버지가 물려주고 떠나면 그 아들이 찾아와 이어 부르는. 들어보니 이런 노래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 길 음- 안개 짙은 새벽 나는 떠나간다 이별의 종착역~’

   
그랬었다, DMZ 그곳은 분명 종착역이었다.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하지만 그곳은 발끝 모으기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도, 열차! 열차!도 없다. 지뢰밭에서는 하지 말라는 표지판을 지나자 호텔 코코넛이 눈에 들어오고, 야자수 두 그루가 평화로운 얼굴로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다.

“여기서부터가 나만의 부동산이다.”

나만의 부동산엔 식솔도 단출하다. 피바다의 전설을 갖고 있는 소대장과 고추는 햇살에 바삭바삭 발려야 제격이라는 권상병(정은표 분)이 전부다.

그러나 에덴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사흘을 남겨놓은 이병장의 제대 앞에 예상치 못한 비보 한 장이 날아든다. 이름하여 대통령의 유고. 대통령의 사망으로 대한민국 사회는 혼란에 빠져들고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은 DMZ는 긴장이 고조된다.

“우리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냐?”

지훈은 물론이거니와 수색대 이병장의 얼굴에도 웃음이 사라진다. 마침내 정체불명의 땅 속에서 진동음이 들려오고, 화면은 대통령의 유고와 함께 북으로 옮겨가더니 혁명과업완수가 삐라처럼 뿌려진다. 뒤이어 총성이 울리고 언젠가 ‘JSA공동경비구역’에서 보았던 장면 하나가 클로즈업된다.

“너, 상대방과 총구를 맞대고 있을 때 어디를 먼저 쏘아야 살아남는 줄 알아?”
“심장이요.”
“틀렸어 임마! 배때기야 배때기! 배때기를 쏘아야 상대방의 총구가 내려가는 거야.”

이병장의 그 말이 지훈을 살렸던가. 월북을 하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좆 돼 버리고, 혁명과업완수를 위해 남하했다가 살아남으면 반역자요 죽으면 그 가족들이 영웅이 되는 식의 게임은 접기로 하자. 내가 지금 동무에게 나를 쏘아달라고 한 건 딸을 가진 한 아버지로서의 부탁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명령은 단 하나,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살하라는 비무장지대의 총성과 그 비극도 막을 내리고 코믹과 긴장감을 적절히 뒤섞은 화면은 도쿄월드컵 사격선수권대회로 옮겨간다.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인민공화국의 한 장교로서 자신을 쏘아달라고 했던 그 아버지의 딸은 커서 사격선수가 되었던가. 금메달 위로 비가 내리고, 살아남으면 반역자요 죽으면 그 식솔들이 영웅이 된다는 그 딸의 손에 한 장의 사진이 놓여진다.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려 잔을 들어라?’

허탈하다. 영화관을 나오자 영화는 사라지고 없고 며칠 전 중국 도문에 가서 보았던 아낙의 모습만 어른거린다.

저기 저만큼에서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저만큼에서 한 여자가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등에 진 짐이 보이고, 손에 든 보따리가 눈에 들어오고, 얼굴이 보이고, 키가 보이고……. 그러나 달려가 그 여자를 맞이할 수 없었다. 어디에서 무얼 하며, 남편의 직업은 무엇이며, 자식들은 몇이나 되느냐고 달려가 묻고 싶은데도 단 한마디도 건넬 수가 없었다.

오래 전에 저 다리를 건너온 여인과는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어도 지금, 점심나절이 다 되어 건너오는 저 아낙과는 눈이 맞아서도 안 되었다. 법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었던 것이다. 두만강 다리를 건너오는 저 여자의 질긴 목숨처럼 다만 이별이 너무 길다는 생각뿐이었다. 슬픔이 너무 잔혹하다는 생각뿐이었다.

※ 필자인 박영희 시인은 1962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태생으로 1985년 문학 무크 「民意」로 등단, 시집 「조카의 하늘」(1987), 「해 뜨는 검은 땅」(1990), 「팽이는 서고 싶다」(2001)를 펴냈으며, 옥중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1999)도 있다.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와 평론집 「김경숙」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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