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사람들 200km 여름 순례길 이야기(4)
"12일 오후 3시, 주민들 앞으로 오셔서 분명히 말씀해주십시오"

(8. 7) 제주도청 → 이호해수욕장 → 하귀하나로마트 → 구엄초등학교 → 애월체육관 → 곽지초등교 → 수원초등교 → 금릉공소/ (8. 8) 금릉공소 → 판포삼거리 → 한경공원 → 고산농협교차로 → 무릉중 → 일과2리 입구 → 사계 해안도로 입구 → 산방산 → 화순리사무소/ (8.9) 화순리사무소 → 하예동 입구 → 천제연 광장 → 성귓네 → 강정 → 법환공원 → 비석거리 → 효례교 → 위미2리 → 남원성당/ (8.10) 남원성당 → 태흥 교차로 → 토산관광지구 → 표선성당 → 풍천초등교 → 신산중학교 → 온평초등교 → 성산성당/ (8.11) 성산성당 → 종달리 해안도로 → 하도초등교 → 평대초등교 → 행원 교차로 → 구좌 종합운동장 → 동복리 입구 → 함덕초등교 → 조천성당    (* 각 지점은 도보 중 휴식장소와 숙박장소임)

세차게 비가 쏟아졌습니다.
한여름의 볕에 달구어지고, 바람이 그을려지 팔뚝에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마치 쇠의 담금질처럼, 팔뚝에 온몸에 부딪히는 빗발울이 이렇게 뜨거운줄 몰랐습니다.
걷는 사람들은 강정사람들 만이 아닙니다.
오늘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도 함께 걷습니다. 수녀님도 걷고, 아이들도 걷고,
칠순의 노인도 한결 같습니다.

▲ 세찬 비가 쏟아지는 속에도 '해군기지 반대!' 순례행렬은 계속됐다. ⓒ고유기 시민기자

비를 맞고 걸으며 내내 김태환 지사님을 생각했습니다.
어떤 마음일까. 강정주민들, 아니 이 절망하는 동시대의 제주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냥 반대하는 사람들 늘 하는 그런것 쯤으로 여기고 있을까. 아니면 고심하고 계신가. 이 여름이 지나면 해군기지 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갈지도 모르는데, 어떤 궁리로 대처하려 할까.

그러다가, 김태환 지사께 감히 옛 고전(논어 편)의 한 대목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디다.  건방지다 마시고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질문을 하자, 공자는 "정치란 경제, 군사,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이다"라고 답하였다. 자공이 묻기를, "만약 세 가지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군사를 버려라"하였고, 두 가지 중에서 버릴 것을 묻자 "경제를 버려라"고 하면서, "예로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는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필자는 위 고전의 장면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나라(정부)와 백성(주민)의 관계를 제대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오늘 날 주민의사보다 우위에 선 국책사업이란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안보사업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안보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국민들 스스로가 일어설 수 있도록, 국민 삶의 안녕과 화합을 보장하는 데서 출발되는 것은 아닐까요?

김태환 지사님, 다음의 글은 강정마을의 어느 초등학생 아이가 쓴 글, 즉 시입니다. 이것도 한 번 생각하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빠에게 힘을 주세요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물빛 은어가 바다에서 노래하는
아름다운 우리 마을

보릿고개 모진 가난에도
웃으며 웃으며 마을을 지켜 나가시던
우리네 할아버지들
그렇지요.

언제나 우리 마을은 하나였지요.
아랫집 윗집 사이에 돌담은 있어도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하늘보다 푸르게 피어났지요.

어려서 세상을 모른다고
어른들은 저에게 말을 해도
저의 귓가에 들리는 건
바람 소리만이 아니지요.

해군기지 해군기지......
제 귓가에는 요즘 이 소리만 들려오지요.
평화와 자유와 사랑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이름이라고
어른들이 가르쳐 주었잖아요.
돈보다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다고
그랬잖아요.

눈을 뜨면 바라보던 바다를 잃고 싶지 않아요.
군사 도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강아지 풀 억새꽃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지금처럼 그렇게 놀고 싶어요.

아빠가 꿈을 꾸며 자란 우리 마을에서
우리들이 평화롭게 웃으며 자라게 해 주는 건
어른들 책임이잖아요.
그래요. 어려서 잘은 몰라요.
알고 있는 건 아빠의 길은
언제나 옳은 길이었다고,

잠 못 드시면서도 마을은 지켜야 한다는
젖은 목소리를 들으면
저도 큰 목소리로 외친답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절대 반대합니다.”
“아빠에게 힘을 주세요”

혹시, 이 시를 읽고 슬프십니까? 아프십니까? 혹시 어느 어른이 대신 써줬다고 생각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요즘 아이들 세상 볼 줄 압니다.
'평화와 자유와 사랑은 우리가 지켜야할 소중한 이름'이라고 어른들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김태환 지사님은 제주의 최고의 어른이십니다. 혹시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위해 해군기지를 추진하십니까? 그런데, 어린 초등학생이 "어른들이 가르쳐 주었잖아요"하며 해군기지 때문에, 바로 그 일 때문에 속상하고 잠못드는 아빠 때문에 울먹이는데 이는 어찌된 일인지요? 혹시 돈 때문에 해군기지를 추진하십니까? "돈 보다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다고 그랬잖아요"라고 또 한 번 울먹이지 않습니까.

좀 세련되게, 그럼, 제주의 발전된 미래를 위해서입니까? 이미 해군기지가 경제에, 제주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증명된 것이 아닌가요? 바로 지사님이 보내신 공무원들이 바로 작년에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 동해, 평택, 부산의 경제현황, 그것도 객관적 데이터를 수집해 온 바 있지 않습니까? 어땠나요? 하나 같이 기지가 있는 지역은 공동화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인구가 줄고, 심지어 도심에, 혹은 항구에 해군기지가 차지하고 있어서 지역의 발전계획도 난망하게 되어 버린 것으로 나타났지 않았습니까? 8천억이 소요된다는 건설공사요? 그 공사에 제주 건설업체 몇 군데나 참여할 수 있을까요? 참여한다고 해도 돈 안되는 하청, 재하청 수준이라는거 건설업계에서도 안타깝지만 인정하는 거 아닙니까?

호주 시드니나 미국의 샌디애고 같은 민군복합항의 아름다운 항구를 꿈꾸시나요? 그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지사님이 스스로 '중대 결심' 선언하신 것 처럼, 크루즈 선석 하나도 줄까 말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설령, 크루즈항이 동시 접안하는 항구가 개발된다 칩시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타당한가요? 그것도 강정마을에. 그런 저런 가능성이 있어서 하시는 거라면 도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어떤 분석자료나 객관적 검증결과가 있는지 어디 보여주시죠. 8만평 이상의 바다매립으로 발생하는 손실따위에 대해서는 혹시 꼼꼼히 챙겨보신적 있나요?

혹시, 해군기지 건설하면 정부에서 다른 인센티브 약속해준 거 있습니까?
작년 국방부 장관이 700억 약속했다가 도민들한테 원성을 사고 말았던 일을 벌써 잊으셨나요? 자존심 상하지도 않으십니까?
해군에서는 기지 주변에 함상공원 지어주고 관광효과 내겠다고 하던데, 폐함정 갖다놓고 아이들이 와서 군함 타보고, 총 한 번 들어보고 하는 그런 공원 때문에 하시는 건 설마 아닐겁니다. 혹시, 카지노 해준답니까? 케이블카 해준답니까?
강정사람들은 십수억 지원되는 환경부 자연생태우수마을도 반납하였습니다. 강정사람들의 그 마음 오죽하겠습니까? 마을 자금이 없어서 마을회관 매각까지 고민하면서 마을을 지켜보겠다는 그 마음, 이해되십니까?

경제적 이유도 아니면, 국가의 부름 때문입니까? 저도 압니다. 정부나 군이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지사님께 줄곧 압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을. 도민들이 지켜드립니다. 당당하게 대처하십시오.
아니면, 경제적 이유니, 제주발전이니, 그도 저도 아닌, 혹시 지사께서 스스로 진짜 안보를 위해 제주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토론할 일입니다.
다만, 서두에서 감히 보여드린 논어편의 대목을 한 번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국가가 벌이는 사업에 반대하고 고통을 겪는다면 이것을 깊이 헤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제일의 덕목이 아닐런지요. 더구나 특별자치도지사 아닙니까?

▲ 김태환 지사님, 빗길속 강행군 이유를 헤아려주시길.. ⓒ고유기 시민기자

어떤 분들은 강정사람들이 해군기지 반대하는 것을 두고, 이기주의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정 사람들, 어디 자기 이익 때문에 반대운동에 이렇게 결사적으로 나서고 있습니까? 이익을 탐하는 사람의 행보라면 이런 고행까지 감수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강정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붙잡고 대화해 보십시오. 작년 강정마을주민들이 반대운동에 나설때 정부조차도 주민들이 이해관계 때문에 반대하는거라고 말해왔습니다. 저도 혹시나 했습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일례로, 강정 마을회장, 자기 밭이 없어서 남의 밭 빌어서 농사짓는 분입니다.

 강정 사람들의 마음 최소한 헤아린다면, 지사님이 나서서 강정사람들 비록 해군기지 반대하더라도 이기주의니 하는 그런 말은 삼가달라고 거꾸로 찬성측 분들을 타이르는게 지사님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한편, 이기주의 논리중에 하나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두고 "너희들은 국민이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민의 의사보다 중요한 국책사업이란 있을 수 있을까요? 주민은 국방의 주체가 아닌가요?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때 국난극복을 위해 일어섰던 사람들은 바로 국민들, 주민들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족이지만, 작년, 4월 13일 도청앞에서 주민들이 국방부장관 방문에 항의하며 연좌할 때 박영부 자치행정국장은 그 분들에게 "도민이 아니다"고 했던 기억, 두고 두고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정마을 주민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지사님이나 우리도 상상치 못하는 수준입니다.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다음 두 개의 사례를 보세요.

기지건설을 둘러싼 주민간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은 대략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을 어른 두 분의 진술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자신을 5대가 독자 집안의 자손이라고 소개한 한 분(77세)은 해군기지 문제가 자신의 조카와의 관계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스스로 겪었던 사례를 매우 한스러운 어조로 털어놓았다.
 작년, 기지건설 주민투표를 위한 마을총회과정에서 자신의 조카는 총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이를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을 향해 "샛아버지 모가지를 낫으로 잘라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풍 '나리'가 일어나 마을 전체가 피해를 입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군의 복구 작업이 형평성을 잃었다고 군 홍보관에 항의하러 갔을 때도 그 조카는 "당신은 나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는 말로 또 다시 적대시하는 태도를 드러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조카와는 과거 서울 살이 시절 5년 동안 자신이 데리고 보살펴주기도 했을만큼 애틋한 관계였다. 그는 그 이후 거처를 마을 밖 신시가지로 옮겨 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꿈에서조차 이 아픔을 겪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이 사건들은, 살기 위해 육지생활은 물론 중동까지 전전했던 평생의 뒤꼍에서 맞은 벼락같은 경험이었다.  비로소 평안한 노후를 맞을 시기에 찾아든 힘든 상처는 끝끝내 치유되지 않는 원통함으로 남을지 모른다.
 또 한 분의 진술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아프게 했는데, 말인 즉, 그는 자신의 아내로부터 고발을 당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아본 봐, 그의 아내가 남편을 고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찬성 측이 도내 언론의 기사를 문제 삼아 이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찬성 측에 속한 아내가 내민 고발장에 영문도 모른 채 서명한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그 일로 그는 아내와의 갈등을 내내 겪어야 했다. 
 
도보순례가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바로 내일이면 강정 사람들은 숨가쁜 일정의 마지막을 바로 지사님이 계신 도청 앞에서 보내게 될 것입니다. 아마 오후 3시쯤 될 겁니다.
그 때, 어디 가지시 마시고 마을 주민들에게 오셔서 지사님의 선택을 보여주십시오.
다른 일정이 있으실 줄 알지만, 지극히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주민들로부터 원망섞인 말들과 일부 흥분한 사람들로부터 안좋은 모습을 접할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제주 최고의 어른인 지사님의 큰 마음을 보여주실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아빠가 꿈을 꾸며 자란 우리 마을에서
우리들이 평화롭게 웃으며 자라게 해 주는 건
어른들 책임이잖아요."

"돈 보다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다고 그랬잖아요"

이 아이에게 진실된 마음이 어떤 건지 보여주시는 것이,
이 아이가 자랄 마을, 살아갈 제주에 대한 믿음을 주시는 겁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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