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광의 현재와 미래

과학기술의 진보로 의학 전문성이 심화되자 모든 질병을 단 한명의 의사가 도맡는 방식으로부터 신체 특정부분을 전담하는 개별치료 방식으로 변모하면서 의사가 환자의 가정을 개별 방문하는 왕진(往診)은 의사 및 환자 입장에서도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인구의 증가와 수명주기의 연장, 그리고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으로 촉발된 의료수요의 기대수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의료공급의 여건을 감안한 현대사회 병원시스템의 정착으로 환자가 의사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의료서비스를 공공재로 인식한 정부에서는 형평성의 논리를 강조한 결과 의료서비스의 질이 하락되는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가 발생하고, 시장논리로 인식한 정부정책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에서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는 부작용에 직면한 환자 중 일부가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라면 타국의 병원도 마다하지 않게 된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의료수요현상이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료서비스의 판매와 구매를 국제무역의 관점으로 접근한 UN산하 무역개발협의체(1998)에서는 국경을 이동하는 환자의 유형을 크게 5개 집단으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 유형은 자국에서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또는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서비스 구매를 위해 이동하는 집단이고 두 번째 유형은 요양에 적합한 의료시설과 기후조건이 구비된 타국으로 이동하는 집단, 그리고 온천과 광천에서의 휴식 또는 레저관광을 병행하는 집단이 세 번째 유형이다. 네 번째 유형은 가격경쟁력의 관점으로 이동하는 집단이고, 마지막으로 실버집단의 장기휴양지로서 저렴한 가격과 기후조건이 구비된 장소로 이동하는 유형이 다섯 번째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의료서비스시장을 국제무역의 관점으로 접근한 UN산하 무역개발협의체(1998)의 보고서에서는 의료관광(medical tourism)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5개 유형으로 분류된 환자집단 간 상이성보다는 중첩된 유사성이 높다. 2004년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의 조안 핸더슨(Henderson) 박사는 환자가 국경을 이동하여 일상거주지로 복귀하는 관광의 관점에서 의료서비스시장을 건강관광(health tourism)이라는 포괄적 용어로 규정한 후 3개의 유형으로 세분화하였다. 첫 번째 유형인 의료관광(medical tourism)에 적합한 부문으로는 의학적 치료와 건강검진이며 두 번째 유형인 미용수술(cosmetic surgery)로 분류되는 항목으로는 성형수술과 지방흡입술, 그리고 온천과 광천수를 이용하거나 또는 전통의학치료로 분류되는 유형을 스파 및 대안치료(spas and alternative therapies)로 명명하였다.
 
포괄적인 개념인 건강관광(health tourism)을 3개의 하위유형으로 분류한 기준은 의학적 치료의 목적이다. 즉, 의학적 치료의 주목적이 질병치료 또는 사전예방인 경우 의료관광이지만 미용성형수술이나 비만치료, 그리고 대안치료 대다수는 생존과 직결되지 않은 쾌락적(hedonic) 목적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료’관광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이러한 헨더슨(Henderson)의 유형구분방식은 2008년 8월 하순 제주형 의료관광상품의 유형으로 제시된 ‘건강검진(의학)’, ‘비만(의학/한방)’, ‘피부병(한방)’에도 적용가능하다. 한라병원에서 출시한 건강검진 상품은 ‘의료관광’으로 분류되고, 비만클리닉이 주도하는 비만치료 상품은 ‘미용수술’, 그리고 한의원이 주축인 피부병(한방) 치료상품은 ‘스파 및 대안치료’와 동일한 개념으로 분류가능하다.
 
의학적 치료의 목적으로 의료관광의 개념을 정의한 헨더슨(Henderson)의 연구를 적용하면 한라병원에서 출시한 건강검진 상품은 의료관광으로 분류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비만치료와 한방치료는 의료관광으로 볼 수 없다. ‘의료’와 ‘관광’이라는 별개의 영역이 결합된 의료관광의 목적이자 최우선 과제는 의학적 치료이지 관광은 선택의 여지에 달려 있는 부가적 행위이므로 비만치료와 한방치료 서비스 체험이 제주방문의 핵심동기라면 의료관광으로 분류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선택 가능한 관광활동의 일부분에 불과한 관계로 의료관광으로 분류할 수 없다. 그러나 교통비용과 숙박비용, 그리고 식음료비용을 제외하고 비만치료 또는 한방치료 서비스 체험에 투자된 경제적/시간적 비용지출 범위가 여타 관광체험비용보다 월등히 높은 관광상품이라면 헨더슨(Henderson)의 기준과는 별도로 의료관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종합해 보면 비만치료와 대안치료 상품의 구성요건에 따라 의료관광의 범주로 재편될 여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
 
질병의 조기발병 가능성을 진단하고자 하는 건강검진은 의학적 질병치료와 더불어 의료관광의 성립요건을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의학적 행위라는 점에서 제주한라병원에서 출시한 건강검진 프로그램은 명확한 의료관광상품이다. 또한 상품출시 직후 미미하지만 12명의 중국의료관광객을 유치한 한라병원의 의료관광상품을 실적이 보고되지 않은 비만 및 한방치료 의료관광상품과 비교해 보면 성장가능성이 잠재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한라병원에서는 뚜렷한 신체적 이상징후가 감지되기 이전 질병의 조기진단을 가능케 하는 대표적인 최첨단 의료기기인 양전자단층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시설이 도입되어 있지만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12명의 중국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채혈검사와 X-Ray 촬영만이 시행되었다. 평균 이용비용이 200~300만원으로 책정된 양전자단층촬영(PET)이 운용된다면 병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높은 파급효과가 기대되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채혈과 X-Ray 촬영으로 구성된 건강검진 의료상품으로는 고부가 가치 창출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사전예방의 차원에서 발병가능성을 조기에 진단하고자 하는 건강검진의 주요대상은 대체로 건강하다고 자각하는 정상인인 반면, 의학적 치료의 주요대상은 특정질병이 확인된 환자이다. 발병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X-Ray를 촬영하는 건강검진과는 달리 의학적 치료의 수단으로서 촬영한 X-Ray의 사진에는 사전 의도한 특정질병의 단면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제주형 의료관광상품과 관련된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12명의 중국의료관광객 중 사전답사의 목적으로 체험한 여행사 관계자 7~8명을 제외한 4~5명이 상품을 유료로 구매한 관광객으로 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제주를 재방문하여 한라병원에서 의학적 치료를 받을 예정인 것으로 기사화되었다. 채혈검사와 X-Ray 촬영만으로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가 발급된 점으로 미루어보면 사전예방 목적의 건강검진이라기보다는 신체적 자각증세가 뚜렷한 환자가 사후치료의 전단계로서 병명을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의료관광의 양대 축인 건강검진과 의학적 치료는 비교적 명확하게 분리된 영역이다. 관광목적지의 병원에서 실시한 건강검진의 결과 뚜렷한 병명이 진단되었다면 통상적으로 자국으로 복귀한 후 적절한 치료를 받거나 간혹 외국에서의 치료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건강검진을 실시한 병원을 재선택하지는 않는다. 중국에서의 건강검진 결과 의학적 치료를 요하는 질병이 진단되었다면 중국병원에서 발급한 진단서를 제주한라병원에 제출한 후 필요한 치료를 받는 것이 정상적 과정이지만 제주의 병원에서 건강검진 후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주를 재방문하는 방식은 사전 예방적 건강검진의 목적뿐만 아니라 의학적 치료목적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단순 건강검진으로 진단서 발급이 가능한 질병보유자라면 자국의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제주에서는 의학적 치료만 받으면 된다는 점에서 제주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숨겨진 이면이 존재할 수 있다. 30일의 체류가 가능한 무비자 상태로 제주를 방문한 중국의료관광객이 진단서를 발급받은 목적은 최대 4년까지 체류가 가능한 의료요양비자(medical visa)의 발급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장기요양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특성상 본인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장기체류를 허용하는 의료요양비자는 필요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불법체류를 양성화하는 악용의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입원한 환자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병원으로서는 환자의 상태와 위치를 모니터링해야 하지만 동반한 보호자의 행적을 모니터링 할 필요성도 없고 그러한 권한도 없으므로 보호자의 잠적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보호자뿐만 아니라 환자의 잠적도 용이한 상황이지만 잠적의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 15명이 제주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입국 거부된 3명을 제외한 12명이 제주형 의료관광의 첫 고객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구태여 제주에서 진단서를 발급받고자 하는 동기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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