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나의 추석 이야기]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둥둥 떠오릅니다”
추석입니다. 올해의 추석은 악명 높은 '팔월 맹질'이라서, 준비하기도 더 힘들고, 기력에 부칩니다. 얼마 전, 요즈음은 며느리들만 명절증후군을 앓는 게 아니라, 남편에 시어머니까지 명절증후군을 겪는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시어머니 뒤로 하나를 덧붙였습니다. 요즈음은 딸들도, 명절 증후군을 앓습니다. 온 집안에 스미는 기름 냄새부터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까지. 보통 신경으로는 환영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명절을 좋아했습니다. 인절미를 만드시는 할머니 무릎에 길게 누울 수 있던 때였지요. 제비새끼처럼 입만 아, 아 벌리고 있자면 할머니께서 못생긴 떡 조각을 밀어 넣어주시곤 하셨는데, 모양이 파치라도 맛까지 파치여야 한다는 법은 없었나봅니다. 통통과 뚱뚱의 중간쯤 되는 저의 몸매에는, 분명 그 당시 욕심 부리던 인절미가 한 몫을 담당했을 테니까요.
어린 마음에, 송편은 먹기가 싫었습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먹기가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갓 쪄낸 송편에선 참기름 냄새와 솔 향이 향기롭게 섞여 풍겼고, 속에 들은 고명의 고소함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제겐 참으로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지만, 몇 가지나 되는 반죽과 고명을 만들고, 하나하나 빚어가며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손이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습관이 되어서일까요? 저는 이제껏 제가 송편을 싫어한다고 생각 해 왔습니다.
올해엔 송편 색이 네 가지입니다. 본래 송편은 붉은빛, 푸른빛, 노란빛과 흰빛, 그리고 검은빛까지 다섯 가지 색으로 빚어내야 한다는데, 송편 빚는 데 선수이신 어머니께서 편찮으시거든요. 그래서 붉은빛, 푸른빛, 흰 빛 세 가지로만 빚어내었습니다. 그나마, 솜씨 좋기로 유명하신 우리 이모님께서 노란빛 한 가지를 보태주셔서 간신히 네 가지 색으로 구색을 맞출 수 있었지요.
사실 어린 시절의 참담한 실패 이래로 송편을 빚는 것은 처음입니다. 매 해 반죽과 고명은 거들어도 정작 빚을 때가 되면 설거지다 뭐다 하며 쏙 빠져나오곤 했으니까요. 아마 어머니가 편찮으시지 않았더라면,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약밥이 굳었는지 확인해보겠다며 푸닥거리기나 했을 테지요.
올해엔 송편을 먹었습니다. 이모님이 빚어주신 노란빛 단호박 송편에서는 깨 고명의 달콤한 맛이, 익반죽을 하다 손을 데인 흰 송편에서는 녹두의 담백한 맛이 났습니다. 육 년 만에 먹어보는 송편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차례 드시러 오시는 조상님도 서로 다투시며 드실 게 분명한 맛입니다.
차례 상을 차릴 일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번거로울 손님맞이도, 송편 빛깔과 만듦새를 칭찬받을 생각에 기운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둥근 접시에 곱게 돌려쌓으면 아버지께서 차례 상에 예쁘게 진설해 주시겠지요. 일이 수월하지야 않을 테지만, 뭐 어떻습니까. 편찮으신 어머니 몫까지, 제가 조금 더 바지런히 뛰면 될 것을요. 어차피 해야 할 고생이라면, 조금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말이 있었지요. 명절이 다가오면 짜증스런 생각부터 앞서곤 했는데, 이제야 왜 어른들께서 그렇게 말씀하셔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 일에 바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한 집에 사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해 본 일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나란히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몇 개월만의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몸은 분명 지치고 피곤한데, 마음은 어째서인지 둥둥 떠오릅니다. 명절 준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편찮으신 어머니의 입맛을 끌만한 음식을 이것저것 찾아봅니다. 쉬지 않았는데도 콧노래가 나옵니다. 매콤한 게 좋을까, 담백한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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