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

▲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
우리에게 미국은 언제나 선진국이었고, 그래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미국에 있었고, 미국산은 무엇이라도 국산보다 좋다는 것을 의미했다.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미국산 소고기 때문에 이 선입견의 일부가 무너져 갈 때, 마이클 무어의 ‘식코’가 도착했다. 이 영화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웃다가도 웃어서는 안 될 장면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였다. 의료보험에 들고도 잘려나간 손가락 두 개 중에 하나는 접합수술을 받지 못하는 남자. 역시 의료보험에 들고도 지정병원이 아니라고 진료거부를 당하고 밤새 병원을 찾아다니다 아이를 잃은 엄마. 영화 속의 여러 이야기는 국산이 미국산보다 좋은 것이 소고기만이 아니란 걸 참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헌데 ‘영화는 영화’지만, ‘식코’를 영화로만 볼 수 없었던 이유, 영화를 보면서 슬픔과 울분이 솟은 이유는 그 형편없는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 발등의 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선 전부터 흘러나오던 ‘의료민영화’니 ‘당연지정제 폐지’니 하는 이야기들이 제주도에 오더니 '제주특별자치도 제 3단계 제도개선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제주도를 ‘의료개방, 선진화의 테스트 베드’로 설정하고, 내국인이 영리법인병원을 개설하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오갔으나, 다행이 ‘주식회사 병원’을 도입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는 견강부회식 논리가 간파당해, 도민들 중에는 영리법인병원 도입에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이 더 많았고,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제는 수면 아래로 잠시 내려갔을 뿐, 궁극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도지사는 도민들의 의사를 겸허히 수용한다면서도 ‘여건이 성숙되면’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정부도 소위 ‘의료민영화’의 의지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도입’ 반대 투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프면 죽어라’는 그들에게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여전히 주장해야 하며, 이 주장을 한층 더 끌어올려, ‘모든 이에게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대안에 동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침, 정말 때를 맞추어,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싸움에 힘을 실어줄 친구와 같은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지난여름 영리법인병원제도의 폐해를 알리는 일에 앞장 서 왔던 제주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실의 이상이, 박형근 교수가 동료의사, 보건학자들과 함께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라는 책을 냈다. 그들은 이 책에서 의료민영화의 문제점과 함께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진단한다.

우리나라 의료재정체계는 제도의 구조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과거에는 보장성 수준이 50%에도 훨씬 못 미치던 것이 2000년 건강보험제도의 통합 이후 보장성 수준이 크게 개선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럽 선진국들에서 보는 85% 이상의 보장성 수준에 비하면 한참 미달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의 구조적인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므로 공적 재원만 마련하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의료비 조달을 주로 개인과 가계의 책임으로 맡겨둘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책임 하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인용글의 말미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모두에게 건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의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럽형 의료제도 발전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단순히 유럽형을 쫓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한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온갖 수사와 능란한 언변에도 불구하고, 의료민영화로 가자는 사람들은 영화 ‘식코’의 길로 가자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 싱가포르의 경우를 보면 공공병원의 비중이 80%를 넘기 때문에 영리병원과 일부 민간보험이 영리적 활동을 하더라도 시장영역이 국한되어 있으므로 국가의료체계 전반의 안정성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유럽 선진국들은 의료제공체계와 의료재정체계 양쪽 모두에서 공공성이 압도적으로 강하므로, 영리법인병원과 민간의료보험이 법적으로 완전히 허용되어 있음에도 이들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영역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5% 이내로 아주 미미합니다. … ‘유럽 따라잡기’전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요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짧은 기간 내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가능해? 책에서 확인하시라. 게다가 가을, 독서의 계절 아닌가. 책을 읽고도 ‘모두가 건강할 수 있는 세상’이란 과실을 딸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실, 우리만 먹는 게 아니라 우리 자손들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은주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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